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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석의 저주’를 부르는 사람들


입력 2020.04.13 09:00 수정 2020.04.13 08:13        데스크 (desk@dailian.co.kr)

‘다수당의 횡포’가 주는 편리함

그 다음 순서는 개헌 혹은 제헌?

자유민주주의 복원 계기되길

국회의사당이 짙은 안개속에 빠져 있는 모습.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의사당이 짙은 안개속에 빠져 있는 모습.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이 그랬던 것처럼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욕심내고 있다.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지난 10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범여권 180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민주당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여당’이 아니라 ‘범여권’이라고 했으니 새누리당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0석’을 내세운 배경은 같다.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허들을 치워버리고 싶다는 욕심의 표현이다. 새누리당도 그래서 이 숫자에 입맛을 다셨다. 유 이사장이 다시 이 숫자를 예언한 까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의석만 확보하면 여당 혹은 범여권 정당은 야당의 태클을 쉽게 건너뛸 수 있다. “반의회주의적 발상이든 뭐든 상관없다. 어쨌든 우리에겐 마법의 180석이 필요하다.” 이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


‘다수당의 횡포’가 주는 편리함


새누리당 김무성 당시 대표의 그 희망이 저주가 되었던 것을 기억하는 더불어민주당 측은 짐짓 아니라고 세차게 도리질을 한다. 이 당의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이 11일 페이스북 에 “느닷없이 180석 논란이 생겼다. 우리 쪽과 가깝다고 알려진 논객이 (공격의) 빌미를 줘 버렸다”고 썼다. 경박한 입질이 동티를 낼까 두렵다는 뜻이겠다.


문재인 정권에서 유 이사장이 어떤 위상을 가진 인사인지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여당 전략기획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우리 쪽과 가깝다고 알려진 논객’이라는 표현으로 멀찌감치 밀쳐버렸다. “우리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가까이 하고 있는 사람이지도 않다. 남들이 그렇다고 말해 그렇게 알려진 사람일 뿐이다.” 그런 의미로 들린다. 선거 막판에 ‘180석의 저주’가 되살아날까봐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단독 과반의석, 범여 180석 이상’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을 터이다.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유 이사장의 말처럼 비례대표까지 합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년 민주당과 군소정당들의 입법거래가 선례를 남겼다. 잘만하면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을 120석 안쪽에 묶어둘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군소정당들이 미끼에 매우 약하니까 ‘범여권’ 형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올 법하지 않은가.


그런데 180석을 희망한다는 그 자체가 반의회주의적 발상이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상임위 단계(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에서나 본회의 상정 때나 재적의원(상임위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여야 합의 없이 여당이 일방적으로 안건을 처리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해 버린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이른바 ‘협치’의 제도화인 셈이다.


그 다음 순서는 개헌 혹은 제헌?


그런데 유권자의 몰표를 얻어 180석을 넘길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 ‘협치’의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과거 ‘다수당의 횡포’에 대해 격렬히 비난하고 저항했던 민주당도 어느새 ‘다수의 횡포’가 주는 편리함에 젖어들었는가. 그 욕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게 작년의 입법 담합, 물물거래(법안과 법안을 바꿔먹었다는 뜻에서)였다. 운용 과정이 좀 복잡하긴 했지만 범여권 의석 5분의 3 이상이 갖는 힘의 크기를 스스로 확인하고 상대에게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아마 민주당은 그 달콤한 사탕 맛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유 이사장이 나름대로 계산해 본 결과 범여권이라면 그 정도의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고 봤다는 것인데, 기대가 현실을 훨씬 앞질러간 계산이라는 것을 우선 지적해 둬야 하겠다. 어쨌든 그가 굳이 이런 수치를 내놓고 그게 이뤄지기를 바라는 데는 까닭이 없을 수 없다.


우선 공수처 설치가 순조로워진다. 야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면 한사코 막으려 하겠지만 범여권이 5분의 2를 차지하면 거칠 것이 없어진다.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과 그 측근 및 주변 실세라는 사람들의 어떠한 혐의든 가져가서 깨끗이 세탁해줄 수 있다. 동시에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의 동조자 혹은 조력자들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도 가능하다. 정권 실세라는 사람들에겐 해방의 날이자 복수의 날이 되는 것이다.


이만큼 시급하지는 않지만 다른 과제도 많다. 판‧검사와 경찰, 나아가 입법부 사법부 전체를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이 그 중에서도 중요한 과업이다. 이쪽이 정리되고 나면 이제 집권세력이 원하는 나라를 건설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자신들의 정치 이념‧신조가 그대로 반영된 개헌안을 제시할 게 뻔하다. 어쩌면 전혀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념적 사명감에 넘쳐 ‘신공화국을 위한 제헌’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는 있지만 ‘전혀 근거 없는’ 공상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복원 계기되길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야당이 그렇게 참패를 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엄청난 공천 몸살을 앓고도 민주당에 단지 1석을 졌을 뿐이다. 17대 총선 때는 폐가(廢家) 지경에 이르렀던 한나라당이 121석을 얻으며 기사회생했었다. 유권자는 균형감각을 발휘한다. 지금의 야당은 이미 호된 국민의 징벌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4‧15총선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및 심판의 기회다. 오히려 야당에 유리한 국면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승리를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총선의 결과가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축복된 민주제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많이 훼손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민주법치체제가 복원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 마음으로 집권세력에 상기시키고 싶은 것은 권력의 극성기를 조심하라는 역사의 교훈이다. 권력은 언제나 허기져 있다. 더 많은 것을 삼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고삐를 쥔 사람들이 주의를 게을리 하면 한순간에 통제를 벗어나 버린다. 고삐 풀린 권력은 야수의 본성을 드러낸다. 그 야수는 국민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고 종국에 가서는 주인까지 덮쳐버리고 만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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