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괜찮게 시작했다가 중간에 꽤 재미있어 놓고 마무리가 영 어처구니없어 찝찝한 뒷맛으로 극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게 영화면서 결론이 미약하거나 함량 미달의 매무새로 어떻게든 끝내는 데 급급한 영화들이 숱하게 많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 제작 ㈜스튜디오게니우스우정,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은 그 반대다. 점점 재미있다, 끝까지 행복하다. 기승전결로 본다면 이야기가 펼쳐지기 위한 포석들이 놓여지는 ‘기’에는 한국과 북·미·중·일 한반도 평화를 놓고 각축을 벌이는 열강들의 입장과 이익을 풀어 주는 초반의 진입장벽이 약간 있다. 점점 심각해져 가는 한반도 정세와 각국의 대결 속에 긴장감을 키워가는 ‘승’까지 보다 보면 이 장르 이대로, 진지한 드라마로 끝나는 것인가? 질문이 뇌리를 스치기도 한다. 실망은 금물이다. 영화는 속도감을 내기 시작한다, ‘전’이라는 이름 그대로 날개를 활짝 편 전개를 펼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팽팽한 긴장감을 잠시 누그러뜨릴 유머도 끼어든다. 그리고 ‘결’에 이르러서는 임진왜란 이상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심해전이 펼쳐지고 짜릿한 쾌감 속에 행복한 결론에 이른다.
하나씩 보자. 이야기보따리만 다양한 게 아니라 완벽주의마저 지닌 양우석 감독이 초반의 진입장벽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모두가 아는 것도 아니고, 안다 해도 ‘강철비2’가 깔아놓는 이야기의 바탕을 관객에게 알리는 단계 또한 면밀하게 준비했다. 일단 상황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국제정세 학자에 버금가게 꿰뚫고 있기에 가능한 간단한 설명인 데다 그래픽 등 시각적 요소를 통해 알기 쉽게 판을 깐다. ‘강철비2’호의 함장인 양우석만 따라가면 된다.
‘승’ 단계를 보노라면, 영화 ‘공작’ 이후 ‘총성 없는 액션’이 유행인가 싶게 진지하지만 두 가지 미덕이 있다. 우선 짧고, 한 번 꾹 눌러놓기에 바로 만날 ‘전’ 부분이 더 재미있고 긴장감 있게 다가온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이맥스일 수도 없거니와 ‘폭풍전야’의 고요함은 필수적이다. 영 진지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관왕의 기염을 토할 때, 통역사 샤론 최가 우리에게 안길 톡톡한 재미를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양우석 감독은 ‘기막힌 통역 코미디’를 이 단계에 준비해 두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까 봐, 관객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재미있게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구체적 줄거리를 적지 않으려니 쉽지 않다. 그만큼 ‘강철비2’에는 대외비(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비밀)가 많고, 그 비밀은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한다.
특히 ‘전’ 이후의 상황은 철저한 대외비다. 다만 명확한 것은 숨죽였던 ‘강철비2’의 소위 포텐(내재된 힘)이 터진다. 숨 가쁘게 엎치락뒤치락 권세의 주인이 바뀌고, 1차 화력전이 일어나고,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혼돈의 세상에서 나는 누구를 믿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결국 자신이 중요시하는 핵심적 가치관에서 해답이 나오는 아비규환이 펼쳐진다. 양우석 감독은 아비규환의 엔진을 작동시키기 위해 유머로 시동을 건다. 좁은 공간에 한국과 북한, 미국의 정상이 갇혔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숨 막히는 일이 터지는데. 화면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지만 그래서 관객은 더 크게 웃는다. 정우성, 유연석, 앵거스 맥페이든, 이 세 남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개그와 만담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데.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 및 위정자들이 보여온 모습의 축소판이어서 풍자와 해학, 골계미가 백미다.
‘결’은 정말이지 숨 쉴 틈이 없다. 영화 ‘명량’의 수면 위 해전을 심해로 옮겼는데 짜릿하다. 쫓고 쫓기고, 피하고 응전하고…전개되는 전법만으로도 충분히 땀이 나지만, 아무리 가상이라고 하나 우리 민족의 안위가 걸린 해전이다 보니 “안 돼!” “피해” “막아” 긴장감이 백배다. 심해 장면의 해상도가 높은 것도 박진감을 높인다. 배우 신정근의 진면목을 양우석 감독이 재발견케 하는 미덕도 있다.
‘와, 오랜만에 끝까지 재미있네’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면 조금만 더 극장에 머무르길 추천한다. 냉엄한 현실로 시작해, 정말이지 꼭 광화문에서 이런 그림이 현실로 펼쳐지면 좋겠다 싶은 행복한 판타지가 엔드-크레딧과 함께 준비돼 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 그 질문을 우리 귀로 듣는 대한민국의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 ‘강철비2’호는 이 질문을 세상에 말하기 위해 항해했고, 순항했다. 주인공은 그대로인데 역할이 뒤바뀐 ‘강철비’ 2편이 만들어져야 했던 이유를 양우석 감독은 증명했다. 관객의 확인은 오는 29일부터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