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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르노삼성 무너지면 민주노총이 생계 책임질까


입력 2020.09.07 07:00 수정 2020.09.05 20:25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시 경쟁력 악화로 물량배정 힘들어져

일감 없는 공장은 존재 이유 사라져…일자리 지키는 게 최우선

르노삼성자동차노동조합과 금속노조, 민주노총이 2019년 2월 28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노조 파업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투쟁 결의 내용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르노삼성자동차노동조합과 금속노조, 민주노총이 2019년 2월 28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노조 파업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투쟁 결의 내용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르노삼성자동차는 한때 노사 관계의 모범 사례로 꼽혀왔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소속된 다른 완성차 업체 노조와 달리 르노삼성 노조는 기업노조 체제로, 사측과의 갈등도 심하지 않았고, 회사가 어려울 때는 사측에 협력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있었다.


2011년과 2012년 회사가 연 2000억원에 달하는 심각한 적자의 늪에 빠졌을 때 노사의 힘을 합친 회생 노력으로 이듬해 곧바로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무분규로 임금·단체협약 타결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11월 조합원 선거를 통해 출범한 현 집행부가 르노삼성 노조를 이끌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교섭 테이블에서 무리한 요구를 내놓기 시작했고, 파업은 일상사가 됐다. 강성 집행부의 등장으로 ‘상생’ 노선이 ‘투쟁’ 노선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현 집행부를 대표하는 박종규 노조위원장은 지난 2011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르노삼성지회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지회장을 지난 인물이다. 그동안 금속노조 르노삼성지회 가입 조합원을 늘려 교섭권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다가 무산되자 박 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인원이 기업노조인 르노삼성 노조에 가입해 결국 지도부를 장악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2년 전 선거 당시 기업노조의 산별노조 체제 전환, 즉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결국 임기 만료를 앞두고 공약 이행에 나섰다. 르노삼성 노조는 오는 9일부터 이틀간 체제 전환(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 찬반투표를 치른다.


이번 투표는 박 위원장을 비롯한 현 집행부의 재신임을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도 갖는다. 투표 참여 조합원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통과되는 안건인 만큼 박 위원장을 지지하는 조합원 수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역할을 할 수 있다.


안건이 부결되더라도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는다면, 11월로 예정된 조합원 선거에서 박 위원장의 재선이 유력해지고, 그는 계속해서 조합원들을 설득해 가며 금속노조 가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현 집행부는 산별 체제로 전환하면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 나아가 민주노총의 힘을 빌어 사측을 상대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물론 어떤 협상에서건 세력이 커질수록 유리한 건 맞는 말이다. 다만 르노삼성 노동조합원들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르노삼성 노조가 금속노조 르노삼성지부, 혹은 지회가 되고, 지금보다 더 강경한 투쟁 노선을 걷는다면 상대해야 할 회사, 나아가 일할 회사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말해 르노삼성은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미쓰비시로 구성된 얼라이언스가 보유한 전세계 여러 공장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들 공장은 얼라이언스 수뇌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일감, 즉 생산물량을 배정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르노삼성의 국내 판매실적은 지난해 8만6859대에 불과했다. 2018년에는 9만대를 살짝 넘겼다. 올해는 XM3 판매 호조로 지난해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 그래봐야 연간 10만대를 넘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부산공장의 연간 생산능력 24만대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나마도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나머지는 수출물량에 의존해야 한다. 르노삼성 자체적으로 해외 영업을 해 수출하는 게 아니라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로부터 배정받는 물량이다. 르노삼성이 고임금으로 생산비용이 높고, 툭하면 파업으로 생산차질을 빚는 공장으로 낙인찍힌다면 다른 공장을 제쳐두고 르노삼성에 물량을 배정할 이유가 없다.


이미 르노삼성은 지난해 2월 XM3유럽 수출 물량 확정을 코 앞에 두고도 노조의 게릴라성 파업 여파로 좌절한 전례가 있다.


설비를 돌릴 일감이 없는 공장은 존재할 이유가 없고, 할 일이 없는 근로자는 공장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2년 전 한국GM 군산공장의 운명이 그랬다.


르노삼성이 소규모 내수시장만 타깃으로 한 기업으로 전락한다면 4000여명의 근로자들 중 상당수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구조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계속 막대한 인건비를 지출해가며 적자만 낸다면 르노는 한국 생산기지를 포기하고 철수할 수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옥쇄파업을 유도해 르노의 한국 철수를 앞당기는 일? 철수를 막아달라고 청와대 앞에서 드러누워 떼쓰는 일? 청와대에 떼를 써봐야 소용없다. 드러눕더라도 프랑스 대통령궁 앞에서 누워야 한다.


집행부의 주장처럼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이 큰 폭의 임금인상과 복지 확대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로 인해 직장을 잃더라도 생계를 대신 책임져 줄 수도 없다.


민주노총은 2년 전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당시 회사를 떠나게 된 금속노조 한국GM지부 근로자들을 위해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심지어 한국GM지부조차 군산공장 근로자들의 무급휴직 기간 동안 생계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측이 나서 생계비를 지급하고 결국 예정된 기한보다 서둘러 복직시켰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국내외 경제를 더 큰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자신과 가족을 위한 선택이 어떤 것일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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