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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입력 2020.09.09 06:00 수정 2020.09.08 09:54        데스크 (desk@dailian.co.kr)

윤석열 검찰총장 진퇴와 검찰개혁은 별개

윤총장 빠지고 추진되는 개혁 공감 힘들어

검찰개혁 주창자에 의해 검찰개혁 물건너가

지난 8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입구에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를 지켜보며 깨어있는 눈으로 감시·감독한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조형물 '서 있는 눈'에 대검찰청이 투영되어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8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입구에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를 지켜보며 깨어있는 눈으로 감시·감독한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조형물 '서 있는 눈'에 대검찰청이 투영되어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검찰개혁이 우리사회의 화두로 등장했고, 문재인 정부 또한 정책공약의 최우선으로 채택했다.


대통령 공약 1호가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 없는 수사기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고 검찰 인사의 중립성·독립성과 검찰의 외부 견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검찰개혁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의 눈치 보기로 인한 공정하지 못한 수사를 든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은 별개의 개념이 될 수 없어 검찰총장의 임기제 보장, 검사의 자격 조건과 신분보장 등의 장치를 마련해 왔다. 검찰 권력의 분산을 위해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입법화 해 경찰에게 직접 수사의 대부분을 담당하면서 일부 수사종결권까지 부여하도록 했고, 비록 대상은 제한되지만 또 하나의 직접수사와 기소를 함께 담당하는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를 운용하기로 돼 있다.


주요 선진국에선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모두 갖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비교법적인 접근과 그동안 검찰이 기소독점권을 남용해 공정하게 운용해 오지 못했다는 비판적 여론이 수사기관의 권력을 재편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상 검찰이 해 온 혁혁한 공로는 부인할 수 없다. 권력에 저항하며 굵직굵직한 수사를 해 왔으며, 정치가 불안정하고 국가 체제에 대한 흔들림이 있을 때 개개인의 검사는 독립 관청이라는 법상 지위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국가나 사회를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어떠한 권력도 스스로 겸손과 절제를 배우며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외부 충격으로 치유돼 왔다. 우리 검찰도 너무 큰 권력을 가졌으나 스스로 정비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검찰개혁을 완수해 달라며 야당의 비난을 무릅쓰고 임명했다. 청와대에 함께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 총장에게 서로 협력해 검찰개혁을 완수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임명한 윤 총장에게 뚜렷한 비리가 없음에도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라는 생소한 제도를 동원하거나, 때로는 법무부 검찰개혁위원회의 발표를 통해, 때로는 법무부장관의 인사권을 통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엄격히 말해 윤 총장의 진퇴와 검찰개혁은 별개다. 그럼에도 법무부장관으로 인해 이 문제가 결코 분리해서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치 권력이 윤 총장을 축출한다면 오히려 검찰 권력이 비호 받아야 한다는 역행의 상처를 남기게 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이 빠지고 추진되는 검찰개혁이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외부 압력에도 불구하고 윤 총장만큼 검찰내부에서 신망과 지지를 얻는 총장이 드물었다. 살아온 길이 강직하다. ‘다소 타협점과 거시적 시각이 부족하지 않냐’라고 우려하는 자들조차 그의 원칙적 태도에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윤 총장이 야당 대권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냉정히 보자. 검찰개혁이 왜 필요하며, 하지 않으면 안 될 절대 절명의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의 사태가 바람직하게 흘러가고 있는가. 검찰개혁을 주창하는 자들에 의해 검찰개혁이 물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 권력과 검찰 관계와 같은 거대한 시각보다는, 내가 고소한 사건의 처리나 내가 고소당해 조사받는 현재 사건에 더 관심이 크다. 국민의 대다수는 조사를 받든 조사를 제기하든 불만이 쌓여 있다. 검찰에서 조사받아 본 사람 입장에선, 내가 한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단지 시간적으로 먼저 고소했다는 점 때문에 자신이 고소인보다 더 나쁜 놈이 돼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이가 많다.


한편 고소인 입장에서는 내가 정말 억울한데도 내 말은 듣지 않고 개인적으로 수집하기 어려운 증거를 갖고 오라고 채근하다가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은 채 결국 무혐의처분 해 버린다. 그러다보니 무전유죄니 법조비리니 하는 자조적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고소·고발 사건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우리다. 어떤 이는 우리 민족성을 탓하거나 사기범이 많은 현실을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다양한 분쟁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해 모든 분규가 수사기관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구조적 잘못에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각 기관이나 회사 등에 감사·감독·윤리 부서가 없는 곳이 없지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낙하산으로 부임되거나, 회전식으로 잠시 있다 가게 하거나,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등 모양만 그럴싸하게 돼 있지 내용이 빈약하다보니 종국적으로 각종 비리는 수사기관에 모여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입법의 최종 권한자인 국회마저도 자신들의 입법과정에서의 문제를 여야가 머리를 맞대어 풀거나 제도적으로 합의가 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생각은 않고 수사기관에 의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고소·고발 사건의 홍수 속에 검찰로서는 사건을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형사부나 공판부의 검사를 우대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고소·고발 사건을 사회적으로 분산 해결할 실질적 장치를 정비하고, 검찰 내에도 국민이 승복할 수 있는 개선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형사부 사건의 경우 종결 즈음에 청문법정을 개최해 검사 앞에서 쌍방이 공방을 벌이게 해 조서화하거나 검사의 의견을 부기하는 제도 등의 도입을 고려해 볼 만하다.


검찰의 관심 사건인 경우 갖가지 과학적 증거수집 방법을 동원하거나 열의를 다해 수사를 하는 것을 언론에서 허다히 볼 수 있음에도, 유독 나와 관련된 고소, 피고소 사건에 대해서는 들은 척도 안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눈에서부터 검찰개혁은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

글/서영득 법무법인 정론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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