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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탐구⑭] 눈물과 울음의 차이, ‘오! 문희’ 이희준

  • [데일리안] 입력 2020.09.15 13:40
  • 수정 2020.09.15 18:09
  •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는 연기다” 나문희, 박지영, 이진주, 전배수 그리고 최원영

‘오! 문희’라는 톱니를 돌려 빛을 만든 ‘에너지원’ 이희준

철도 씹어 삼키는 소화력, 선역-주연에서도 가능함을 입증

배우 이희준. 배우 이희준. '오! 문희' 스틸컷 ⓒCGV 아트하우스 제공

깎아 놓은 듯 흠결 없이 생긴 미모보다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진 안면이 훨씬 ‘배우 얼굴’로 보인다. 개인적 편견이다. 확연히 차이 나는 짝눈, 조금 길쭉한 코, 사각진 턱, 약간의 사시가 표현과 표정을 풍성하게 한다. 이희준에게는 입술의 상처가 그렇다. 입대 일주일 전 교통사고로 생긴 깊은 상처, ‘연기를 너무 잘해 상관없다’ 정도가 아니라 같은 연기에도 짙은 현실감을 드리운다.


지난 2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2.5단계의 삼엄함을 뚫고 개봉한 영화 ‘오! 문희’(감독 정세교, 제작 ㈜빅스톤픽쳐스, 배급 CGV 아트하우스)에서 상처가 빛을 발했다. 웃으면 더 해맑고 울면 더 서럽다. 천연덕스러운 충청도 사투리까지 더하니 아내 없이 딸아이 혼자 키우며 치매 어머니 모시고 사는 착한 가장, 직장에선 대물손해평가 일만큼은 물불 안 가리고 하는 보험사 황두원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상대를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에너지, 곽상천. 영화 상대를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에너지, 곽상천.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쇼박스

사실 ‘오! 문희’는 배우 이희준을 보러 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어느 밤 어느 술자리에서 이희준을 만났는데. 몸에 살집이 보였다. 배역 때문에 찌운 살인지 물으니 ‘남산의 부장들’ 실존인물 차지철이 투영된 곽상천 역을 위해 찌운 살인데, 바로 아담한 영화를 찍게 됐는데 어울릴 것 같아 좀 두고 있다고 답했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사실 찌우는 건 쉬워도 빼는 건 어려워요. 확 찌웠다가 확 빼는 거 잘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마침 천천히 빼도 되는 핑곗거리가 생긴 거죠. 근데 이게 묘해요, 뭔가 힘이 붙는 느낌이 있어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졌다.


“나문희 선생님 아들로 나오는 영화예요. 선생님이 다하시고 저는 옆에서 숟가락 하나 얹었어요. 정말 뭐가 대단하시냐 하면, 연기 잘하시는 거야 그냥 곁에서 보는 것으로 살아 계신 교과서죠, 나는 저 나이가 됐을 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게 뻔한 연기가 하나도 없어요, ‘야, 이게 가능한 일이구나’ 놀라고 또 놀라죠. 아, 뭐가 대단하시냐면,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연기에 임하는 자세랄까 태도랄까 그게 신인 같으세요. 촬영을 앞두고 체력 조절부터 자신에 대한 관리, 촬영 직전까지 대사를 또 맞추고 또 맞추고 횟수를 셀 수 없이, ‘아, 이래서 이 연세까지 연기하시는구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나문희 선배님이랑 연기하면 그게 대학 나오는 거예요, 진짜.”


타인을 칭찬하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인성이 보인다, 늘 지닌 생각인데, 그날 밤 침 닦아가며 선배 연기자를 극찬하는 이희준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절감했다. 그리고 그 영화가 어서 보고 싶어졌다.


'오보살' 오문희 여사와 그의 아들 황두원 ⓒ이하 CGV 아트하우스 제공

드디어 봤는데, 기대 이상이다. 역시 영화는 제작비가 아니라 연기력이 승부처다. 숟가락 얹었다던 이희준이 펄펄 날아다닌다. 뻔한 연기가 없다던 이희준 말이 딱 맞아떨어지게 배우 나문희는 허투루 치매 연기를 하지 않는다. ‘존경’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열연이다.


박지영 배우야 20년 전 드라마 ‘꼭지’에서 원빈의 연상 누님으로 자연스러운 멜로 호흡을 보일 때부터 보통 연기력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로 넘어와서도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의 아내 역을 해도 ‘소공녀’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잠깐 나와도 흡사 랩 같은 대사로 존재감 확실하고, ‘외계인이다’ ‘범죄의 여왕’ 주연을 맡겨도 척척 해내는 베테랑이지만 이번 ‘오! 문희’에서도 일을 냈다. 이종사촌 동생 황두원과 이모 오문희 여사가 양 끝에 앉은 ‘시소’의 가운데 앉아 중심을 잡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 ‘정의’의 역할을 충직하게만 하면 재미가 없는데 맛깔나다. 대사도 맛나고 몸짓도 재미있다. 조금만 더하면 과장, 덜하면 보이지 않을 배역인데 딱 맞춘 농도조절로 미용실 하는 송 원장도 살리고 영화의 코미디도 살렸다.


진짜 가족같은 나문희, 이진주, 이희준(왼쪽부터) ⓒ진짜 가족같은 나문희, 이진주, 이희준(왼쪽부터) ⓒ

‘오! 문희’에는 칭찬할 배우가 너무 많다. 황두원의 딸 보미를 연기한 어린이배우 이진주는 교통사고로 누워 있는 게 아쉬울 만큼 자꾸 보고 싶은 표정과 말투를 지녔다. 타고난 탤런트이기도 하지만 어디서 배웠나 싶게 연기를 차지게 잘한다. 할머니 오문희 여사와의 호흡이 정겹다. 나문희 배우가 곁을 내준 덕이기도 하지만 그 곁을 제 것으로 잘 지켰다.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에서 용산경찰서 최윤수 팀장 역으로 출연 중인 전배수 배우는 황두원의 상사 한 부장으로 나오는데. 이보다 슬프게 이를 닦을 수가 없고 튀기는 거품으로 이보다 큰 웃음을 줄 수가 없다. 가장 충청도 사람 같은 연기를 가능하게 한 건 연극무대에서 다져진 내공이다. 독립영화나 단편에서 많이 본 김예은 배우의 상업영화 속 배역이 커가는 것도 반갑고, 물 댄 논에서 이희준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최원영의 호연도 눈여겨봐야 한다. 아, 판금박 역의 김선경, 바스락 부서질 것 같은 건조한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배우 연기만 좋은 게 아니라 가족 드라마와 코미디를 한 몸으로 붙인, 장면의 넘김부터 스토리 전개까지 물샐틈없이 연출한 정세교 감독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영화 ‘명량’의 조감독이었던 정세교 감독의 극영화 연출 데뷔작을 ‘명량’의 감독 김한민이 제작했다.


'오! 문희' 촬영현장 ⓒ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사설이 길다. 이희준 배우로 돌아와서, ‘오! 문희’라는 영화를 끌고 가는 건 이희준이다. 나문희 배우와 투톱 영화인데, 오문희 여사를 스토리라는 리어카에 태워 앞에서 끄는 게 이희준이다. 다음에 무얼 해야 할지 판단하고, 인물들의 동선에 관한 결정이 황두원에게서 나온다. 영화의 톱니를 돌려 이희준이 만든 ‘에너지’는 출연 배우들을 비추는 빛이 된다.


간혹 남만 비추다 주연 역할을 놓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희준은 자신도 빛냈다. 불도저 같이 일하고, 여자 꾈 때도 발군이지만 실상 별 볼 일 없는 사내 황두원이 딸의 뺑소니 사고 앞에 점차 셜록 홈즈가 되고, ‘레드 썬’ 최면술사도 되고, 아이언맨처럼 유쾌함을 잃지 않는 ‘생활 영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찰떡같이 소화했다. 어떤 역할을 맡기든 철도 씹어 삼킬 것 같은 소화력이 조연뿐 아니라 주연의 자리에서도 가능한 배우임을, 용광로 같은 뜨거운 에너지가 인간미 없이 몰아치는 악역 말고 선역에서도 작동함을 입증했다.


황두원의 회한, 이희준의 눈물. 울음은 영화로… ⓒ황두원의 회한, 이희준의 눈물. 울음은 영화로… ⓒ

배우 이희준의 모든 연기가 좋았지만 두 장면을 얘기하고 싶다. 최원영이 연기하는 강 형사가 근무하는 경찰서에서 사발면 한 번 흩뿌리는데 ‘와, 더럽게 재미있다’. 영화 ‘오! 문희’는 진정한 코미디는 비극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데 먼저 말한 전배수 배우의 치약 거품이 그렇고, 이희준의 사발면 분사가 그렇고, 그 외에도 스크린은 비극인데 나는 포복절도하는 상황들을 만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은 이희준이 운전하고, 나문희가 보조석에 있는데 그 사이로 딸 보미가 사고 전 모습으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쑥 끼어들 때다. 꿈인가 생시인가 잠시 어리둥절, 이내 이희준의 얼굴이 울음바다가 된다.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고, 오열하는 게 아니고, 그냥 얼굴이 울음 그 자체가 된다. 뭐라 형언하기 어렵고, 직접 보기를 청하고 싶은 명연기다. 그냥 울컥 울음이 목을 타고 넘어와 눈으로 코로 볼로 쏟아진다, 운전하는 몸도 운다.


스크린 밖 배우 이희준. 스크린 밖 배우 이희준. '오! 문희' 대본 리딩 현장 ⓒ

이희준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직장의 신’ ‘유나의 거리’도 좋았고, 영화 ‘해무’ ‘마약왕’ ‘미성년’ ‘남산의 부장들’도 모두 좋았지만, ‘오! 문희’가 최고다. 주연이어서가 아니라 이희준이 가장 잘하는 연기, 진심으로 그 인물이 되어 에너지를 발산하는 연기를 흠뻑 즐길 수 있어서다. 대한민국 최고 연기력이라 일컬어지는 배우 황정민과 같은 계열의 방식을 취하면서도 또 다른 색깔을 보여 주고 있는 배우 이희준의 내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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