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노출 백신 접종자 2300명 육박
관리 허술했던 질병관리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상온 노출이 의심되는 정부 조달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이 2295명으로 늘었다. 애초 질병관리청은 문제의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가 지난달 25일부터 현장조사가 이뤄지면서 접종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그중에서도 질병청이 지난달 21일 백신 접종 중단을 고지했으나 의료기관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22일 무료접종 대상자에게 접종한 사례가 458명(19.9%)으로 집계됐다. 접종 후 발열·오한·두통·메스꺼움 등 이상반응을 보인 사람은 12명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그동안 정부의 백신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낱낱이 알게 됐다. 그동안 매년 독감 백신을 맞아온 국민들은 국가 접종 만큼은 안전하고 유효하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번 상온노출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믿음도 무너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상온에 노출됐던 백신 500만 도즈에 대한 검사 중 무균검사를 제외한 나머지 검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질병청은 식약처 검사 결과에 따라 백신 사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해당 백신의 접종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가 된 백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국가예방접종(NIP)을 거부하고 유료 독감백신을 접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을 정도로 문제가 된 백신에 대한,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것이다.
만약 상온에 노출된 백신을 전량 폐기하기로 결정할 경우에도 혼란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00만 도즈 분량의 백신 수량을 민간에서 조달해 채우거나 무료접종 대상을 축소해야 하는데 두 가지 방법 다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백신에 '이상없음'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오고 접종 재개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미심쩍은 백신을 누구나 안심하고 접종할 수 있게 하려면 이미 접종한 2300여명의 데이터를 정밀 분석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백신 유통 과정에서 드러난 부실한 관리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질병청은 일선 의료 현장에서 백신 관리를 허술하게 했다거나 유통업체의 실수였다고 핑계 대지 말고 이제라도 제대로 된 지침을 마련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5개국과 3관 1476명으로 덩치가 커지고 위상도 높아진 질병청의 첫 번째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