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초심, 2021년이 더 기대되는 배우 조우진
오랜만에 편하고 신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개봉한다. 왕릉 도굴을 소재로 뒤통수에 뒤통수를 치는 도굴꾼과 재벌의 이야기다. 배우 조우진은 영화 ‘도굴’(감독 박정배, 제작 ㈜싸이런픽쳐스, 배급 CJ엔터테인먼트)에서 존스 박사 역할을 맡았다. 맞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해리슨 포드가 연기했던 인디아나 존스의 ‘존스’이다.
조우진이 만들어낸 존스 박사는 원본이라 할 인디아나 존스 박사보다 훨씬 유쾌하고 훨씬 순수하다. 이 캐릭터로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를 새로 만들어도 되겠다 싶을 만큼 잘 소화했다. 때로는 소위 ‘아재미’ ‘잔망미’라고 표현되는 오두방정 촐싹거림으로 웃음을 주고, 때로는 박사라는 호칭에 걸맞게 지적 매력 발산한다. “여러분들은 내일을 사시죠, 저는 오늘만 삽니다” 등등, 명언 제조기이기도 하다.
존스 박사는 벽화 도굴의 ‘일인자’지만, 착하게 살려고 인사동에서 리어카 세워놓고 기념품을 판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외국인 손님 뜸한데,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 분)가 나타나 고구려벽화 뜯으러 가자고 꼬드긴다. 손사래를 치던 존스 박사, 강동구가 제안하는 금액에 바로 리어카 철수다. 돈에 움직이는 인물 같지만, 실은 ‘도굴’에서 가장 인간미 넘치는 인물이다. 왕릉 지하가 무너져 범람하는 물에 휩쓸려 동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젖먹이 아기 같이 우는데,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소장하고 싶게 앙증맞고 귀엽다. 어느 배우에게서도 본 적 없는 울음 표정에 극장 안에는 웃음이 빵 터진다.
“치밀한 계산의 결과는 아니에요. 동구는 한 반의 반장, 나는 오락부장. 신혜선 배우가 연기한 세희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 내가 관심 있는데 알고 보니 반장과 사귀고 있고. 그 정도의 설정에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재미있는 캐릭터, 웃음 주는 캐릭터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만 더욱 신경 쓴 건 보기 편한 캐릭터, 보기 편한 연기였어요. ‘잔망미’ ‘아재미’ 키워드 삼아 캐릭터 대본 파고들긴 했으나 관객께서 일단 보기 편해야 귀엽게 볼 것 같았어요. 몇몇 애드리브 말고는 시나리오에 담겨 있는 대사와 동작, 저는 양념만 조금 쳤을 뿐이에요.”
2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배우 조우진이 한 말이다. 얘기 나누다 보니 ‘겸양’의 말이었다. 캐릭터 구축에 마음을 썼고, 장면 장면에 대한 아이디어를 박정배 감독에게 계속해서 제안했다. “찍고 버려도 좋고, 아예 편집해도 좋다. 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신경 쓰지 말고 영화에 도움이 되면 채택하면 그뿐”이라는 전제 아래.
“일단 도전의식은 있었어요. 저보다 밝고 저보다 말이 빠르고 저보다 태세전환이 빠른 인물, 맡아오지 않은 캐릭터를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연기 평가에 대한 잣대를 저 스스로 준다면 시나리오에 빚져 있다, 시나리오에 존스 박사에 대한 많은 게 담겨 있어요. 아이디어 내거나 할 때도 감독님께 말씀드렸어요, ‘저는 포기 빠릅니다. 조우진이 이거 잘해 줬는데 잘라서 미안해, 이런 생각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맥스(최대치)로 할 뿐이고, 선택은 감독이 하시는 거죠. 어, 애드리브 없어져 버렸다, 아쉬워하지 않아요. 매 장면, 매일, 감독님께 선물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냈을 뿐이에요. 처음 (연출)하는 감독님에게 압박감은 있을 것이고 선물 드린다는 마음, 감독의 숨통을 틔워드릴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다만, 모자 쓰는 부분에 대해선 애드리브가 여럿 있었어요. 일테면 모자 쓰는 타이밍.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면 저한테는 그게 제일 인상적이었는데, 언제 벗고 언제 다시 쓰느냐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어차피 대놓고 존스 박사로 시작한 것이고 강동구 빼고는 등장인물들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캐릭터 설명을 하고 시작하는 구조라서 모자 애드리브 해도 되겠다 싶었지요. 같이 일하자는 제안 받고, 금액 보고, 바로 태세전환, 그때 처음엔 보이지 않던 모자를 ‘스윽’ 쓰고 나타나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해당 장면 관련 다양한 테이크가 있었습니다만 감독님이 그(조우진이 낸 아이디어) 장면을 영화에 쓰셨더라고요.”
“모자, ‘인디아나 존스’에 극적으로 벗겨졌다 다시 쓰는 거, 늘 있지 않았나요? 모자 떠내려가다 줍고, 날라가다가 다시 잡아 쓰고 가는 식으로. 마지막 개봉한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들이 모자를 보며 ‘이제 내가 물려받아 쓰나’ 하는데, 아들이 행진하는데 존스가 나타나 탁 뺏어서 쓰고 가잖아요.”
“영화 마지막, 동굴이 무너지면 동구와 제가 따로 다른 곳에서 만난다는 설정인데 ‘존스 박사가 동구 뒤에 쓱 서 있으면 어쩌겠냐’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좋다고 하셨고, 제훈 씨도 ‘그럼 자기가 존스 모자를 씌워 주겠다’ 아이디어를 냈고. 그런 극적 장면들이 배우들과 감독님이 현장에서 생각해 넣은 것들이 있어요.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던 현장이었습니다.”
현장 얘기를 하니 조우진의 표정이 밝아진다. ‘도굴’ 속 존스가 인터뷰 장소에 온 듯 빠른 속도로 요목조목 재미나게 설명도 잘한다. 예전부터 들어온 얘기를 토대로 하면, 조우진은 영화 전체 ‘산’을 우선시하는 배우다. 그다음 ‘나무’, 캐릭터의 세세한 표현을 연구하고 준비하고 제안한다. 선배 배우 유해진이 떠오르는 배우로서의 태도이고 활약이다. 그래서, 닮은 두 배우가 함께한 ‘봉오통전투’에서의 호흡이 찰떡이었나, 조우진의 얘기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가 빙그레 지어졌다.
“몰랐는데 제가 현장에서 인상을 쓰고 있더라고요. 메이킹 필름을 보며 ‘왜 저리 인상 쓰고 있나’ 했는데, 이번엔 자주 웃으며 현장에 있었더라고요(웃음). 그런 모습이 존스 박사 캐릭터를 유연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됐어요. 확실히 이번엔 조금도 오버(과장)한 부분이 있어요. 관객분들이 나를 웃으면서 바라봐야 나도 그 기운 받아 밝게 표현되지 않을까 하여, 내적 발악을 했습니다(웃음). ‘빅(큰) 재미’ ‘큰 웃음’은 못 드려도 편안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인물이기를 바랍니다.”
이것도 겸양이다. ‘~하여’ ‘~하였으나’ ‘~하였습니다만은’ 등과 같이 문어체로, 선비처럼 얘기하는 말투 그대로 겸손이 몸에 배었다. 영화 ‘도굴’을 보면 코미디 연기의 달인 임원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더 편안하게 큰 웃음 준다. 정말 재미있고 잔망스럽게 존스 박사를 연기했다.
무엇보다 조우진은 자신이 이번 ‘도굴’에서 선배이자 주연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촬영 후 동료 배우나 감독, 제작자나 프로듀서와 식사를 하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조우진은 제작 스태프 팀별로 만나 밥을 샀다. 조우진은 “아우, 아니에요, 사실 전체 팀을 다 사진 못했어요. (촬영종료와 식사) 시간이 안 맞은 때도 있고, 송구하게도 제가 다른 영화를 찍고 있기도 해서 마음과는 다르게 모든 팀과 회식하진 못했어요. 하려고 노력했다, 그 정도입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주연의 자리에 최선을 다했다. 주연이라는 건 개인의 연기 잘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중심이 되는 것을 넘어, 호조의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한 것이다.
“저 개인에게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맘만 먹으면 피라미드 가서 이집트도 확 뜯어 오지('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잔' 식으로 장소와 대상이 뒤바뀐)’. 가벼운 농담, 미소 지으며 할 수 있는 말, 이런 말을 존스 박사를 통해 할 수 있다니…재미있었습니다. 외국 캐릭터다 보니 관객께서 벽을 느낄 수 있는데 친근한 대사가 무너뜨려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배우 조우진은 바로 내일, 11월 4일 ‘도굴’을 관객 앞에 선보인다. 이후에도 공유, 박보감과 주연으로 함께한 ‘서복’이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배우 설경구, 이선균, 유재명과 공동 주연한 ‘킹메이커’가 개봉 시기를 보고 있고 김태리, 류준열, 김우빈과 함께 ‘도둑들’ ‘암살’의 최동훈 감독 신작 ‘외계인’을 촬영 중이다. 아직 더 상승할 에너지가 충분한 배우지만 대세 대열에 합류, 열혈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냥 ‘고맙다’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주변을 보면, 배역 크기를 떠나서 이 영화가 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분들도 많고, 곧장 IPTV로 가면 어쩌지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고, 찍을 영화 줄어들면 어쩌나 출연할 영화 없어지면 어쩌나 불안감 호소하는 분들 많아요. 지금 저의 상황, 예, 행복에 겨운 상황입니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미안하고, 하늘이 내린 기회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열심히 임하겠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7~8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상상할 수 없는 하루, 축복처럼 느껴지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영화도 찍고 홍보하고. 영화 ‘외계인’ 참여하고 있는데, ‘아니, 내가 지금 이 배우들이랑 한 현장에 있는 거야?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하곤 합니다. 부담감, 다양한 작품이 주는 피로감, 애초에 잊었습니다. ‘이 현장에 이 사람들이 한꺼번에?’ 실감이 안 납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배우로서 초심을 잊지 않은 조우진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조우진은 끝으로 영화 ‘도굴’의 매력 포인트를 묻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남겼다. 인터뷰 첫 질문의 답에도, 마지막 질문의 답에도 중심은 ‘관객’이었다.
“위로 드리려 만든 영화는 아닌데 위로가 됐으면 해요. 많은 분이 칭찬하고 응원해 주고 계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편안하게 웃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