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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감독탐구⑪] 사랑에 관한 쉽지 않은 질문,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입력 2020.11.14 00:00 수정 2020.11.26 08:2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화이트' 스틸컷 ⓒ스폰지 제공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시대에 대한 고찰을 영상미학으로 펼쳐냈던 감독이다. 매우 철학적이면서도 화면이 아름답고 음악이 훌륭하고 새로운 접근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영화적 재미가 출중하다.


#20세기 감독의 영원한 사랑 이야기


폴란드 태생으로 유럽을 무대로 활동한 유명 감독들 가운데서도 색채와 사유가 남다른 그지만, 이데올로기 대립이 팽배했던 시대에 태어나 그것이 허물어져 가는 시기에 생을 마감한 20세기 감독이다 보니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세 가지 색: 블루’ ‘세 가지 색: 화이트’ ‘세 가지 색: 레드’와 같은 명작은 21세기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리 곁에 있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 1990년대엔 스러져가는 공산주의와 득세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프레임으로 읽거나 유럽 통합의 출현을 바라보는 설렘과 불안으로 해석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뜻이 깊고 상징이 풍부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명작은 시대를 초월해 존재 의미를 스스로 지닌다. 굳이 이데올로기의 틀로 해석하지 않아도 바로 오늘, 21세기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영화적 재미와 만족을 흠뻑 맛보게 한다.


다양한 질문 중에서도 특히나 사랑,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자 희망이고 영원한 화두인 사랑에 관한 깊은 탐구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에 담겨있다. 이제 와 사랑의 틀로 해석해도 괜찮은 게 아니라, 영화 태생 시부터 사랑을 통해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다.


영화 '블루' 스틸컷 ⓒ백두대간 제공

# 자유, 평화, 박애의 시작


그 어떤 작품을 통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계로 들어간다 해도 동질적 체험이 될 만큼 매우 구조적이고 잘 지어진 집 같은 영화들이지만.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세계관을 선명히 들여다보려는 편의성 차원에서 ‘세 가지 색’ 시리즈 세 작품을 통해 이야기해 보자.


익히 알려진 것처럼 영화 제목의 블루, 화이트, 레드는 프랑스 국기의 색이다. 영화 공개도 국기의 왼쪽부터 시작한 색의 배열 그대로 블루, 화이트, 레드 순으로 했다. 영화의 주제도 프랑스 국기가 상징하는 그대로 자유, 평등, 박애에 관한 사유다. 영화에는 유럽 통합에 포함된 12개 대표 도시가 직간접적으로 언급되고 배경이 되는데 블루 편은 프랑스, 화이트 편은 프랑스와 폴란드, 레드 편은 스위스와 영국의 도시들이 주 배경이 된다.


자유를 상징하는 '블루' ⓒ백두대간 제공

#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상실과 치유


먼저 ‘세 가지 색: 블루’의 주인공은 유명 작곡가 남편과 다섯 살 어여쁜 딸을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은 줄리(줄리엣 비노쉬 분)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일순간에 잃은 슬픔, 나만 살아남은 고독은 줄리에게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숨 쉴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지만, 다행히 되돌이킨다. 살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이와 남편의 흔적을 볼 자신이 없어서 모든 재산의 매각을 변호사에게 부탁하고 파리로 떠나 ‘익명’으로 살고자 한다. 딸은 지울 수 없고 가슴에 새기려 딸의 방에 있던 파란 샹들리에만 들고서 정든 집을 떠난다.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마시던 줄리는 TV를 보게 되는데, 프로그램 말미 남편이 다른 여성(샌드린, 플로렌스 퍼넬 분)과 있는 사진들이 나온다.


남편 뒤에 숨어서 없는 존재처럼 살았지만 실은 남편과 함께 작곡했고, 아니 교향곡들을 제대로 완성했지만 모든 영광을 남편에게 돌리며 살아온 줄리에게 남편의 외도는 쓰디쓴 배신감을 안긴다. 이 대목에서 키에슬로프스키의 기막힌 역설이 등장하는데, 줄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나를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남편의 죽음, ‘사랑의 상실’이 사라진 것이다. 남편과의 사랑을 잃고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바로 그 남편과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렇다면 잃은 것도 없는 셈이다. 상실로 상실이 지워진다.


눈에 보이는 음악, '블루' ⓒ백두대간 제공

줄리 곁에는 오래전부터 올리비에(베누아 레전트 분)가 있었다. 남편의 보조 작곡가이자 모든 사생활을 알고 있던 올리비에지만, 그저 줄리를 바라보고 짝사랑할 뿐 다가서지 않았다. 가족을 잃고 괴로워하는 줄리를 위해 올리비에는 미완성 유작이 된, 유럽통합기념음악회에서 연주하기로 돼 있던 곡을 완성하려 한다. 그 작업은 남편에 가려있던 작곡가 줄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줄리에게 할 일을 주는 결과가 된다. 올리비에의 인내심 있는 사랑이 힘을 발휘, 줄리를 절망의 늪에서 걸어 나오게 한다. 사랑이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세 가지 색: 블루’에는 잊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 많다. 거친 돌담을 맨주먹으로 훑으며 걷는 줄리, 어떤 표현보다 인간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한참을 돌담에 주먹을 짓이기던 줄리는 고통의 한계에 다다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떼어 입술로 가져가 문다. 침으로 상처를 달래듯 결국은 스스로 치유하게 될 것임을 짐작케 한다, 한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올리비에의 미숙한 작곡을 남편에게 했듯 완성해 주는 장면도 임팩트가 크다. 악보를 손가락으로 읽으면 교향곡이 들리는데, “타악기 빼고”라는 줄리의 말에 맞춰 방금 들었던 오케스트라 합주에서 타악기가 빠진 연주가 들린다. “트럼펫도 빼고” “피아노 피아니시모” 줄리의 말에 즉각 반응해 바뀌는 교향곡과 합창이 공간을 메우는데, 정말 아름답다.


평등을 상징하는 영화 '화이트' 포스터 ⓒ스폰지 제공

#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평등의 모색


‘세 가지 색: 화이트’는 사랑에 있어 필수라 할 평등에 관해 얘기한다. 유럽연합, EU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국가 간 평등이 중요하지만 사랑은 더하다. 폴란드인 이발사 카롤(즈비그니브 자마코브스키 분)은 프랑스인 모델 도미니크(줄리 델피 분)와 결혼해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성적 만족을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혼당하고 재산마저 다 빼앗겨 무일푼 노숙자 신세가 된다. 길에서 만난 폴란드인 니콜라이(자누스 가조스 분)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온 카롤은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 성공한 무역사업가가 된다. 카롤의 모든 행동의 목표는 잊을 수 없는 전처 도미니크였다. 카롤은 신문에 부고를 내고, 모든 재산을 남긴다는 유언을 빌미로 도미니크를 폴란드에 오게 한다.


카롤은 자신의 장례식에서 우는 도미니크를 본다. 장례식에 참석한 뒤 호텔로 돌아온 도미니크의 침대에 카롤이 누워 있다. 극적 상황을 통해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이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여기서 또 키에슬로프스키의 반전이 등장한다. 카롤은 사라지고 도미니크는 살인범으로 몰린다. 카롤이 프랑스어를 못하는 채로 타국 법정에서 곤혹을 치렀듯, 폴란드어를 못하는 도미니크는 타국의 냉정한 수사와 재판 상황 속에서 감옥에 갇힌다. 똑같은 절망을 경험한 두 사람, 역지사지를 제대로 한 두 사람은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를 받아들인다. 어찌 보면 서로를 바닥으로 끌어 내린 매우 비관적 ‘평등’이지만, 그만큼 사랑하는 사이에서조차 평등이 어렵다는 것을 웅변하는 듯하고, 오늘 서로를 해하던 두 사람의 내일이 진정 다르기 위해선 그만큼의 고통이 따른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영화 '레드' 스틸컷 ⓒ아티피셜 아이 제공

# 똑같을 뻔한 인생행로를 바꾸는 사랑


‘세 가지 색: 레드’에는 박애라는 주제답게 차에 치인 개에게도, 남의 사생활을 엿듣는 퇴직 판사에게도, 재활용 병을 버리려는 길가 노파에게도 심지어 의심병이 심각한 것도 모자라 사랑을 확인해 주지 않는 남자친구에게도 ‘마음의 손길’을 늦추지 않는 ‘자애로운’ 발렌틴(이렌느 야곱 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발렌틴은 자신의 차에 치인 개를 표식에 쓰인 주소로 데려가지만, 주인인 초로의 퇴직 판사(장-루이 트린티냥)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개를 치료해 회복시킨 뒤 다시 데려간 발렌틴, 노인이 이웃의 전화를 도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정의감에 이를 이웃에게 알려주려 한달음에 달려가지만, 그 가족을 책임질 수 없는 한 함부로 끼어들 수 없음을 느끼고 돌아선다. 잠깐 사이 없어진 개를 쫓던 발렌틴은 노판사의 집에서 개를 찾는다. 세상에 냉소적이고 불법 도청을 일상으로 삼는 노판사와의 재회. 사람은 본래 선하다고 믿는 발렌틴은 자신과 너무 다른 생각을 지닌 노판사와의 깊이 있는 대화에 흥미를 느끼고, 그에게서 사랑의 상처를 느낀다.


실제로 노판사는 젊은 시절 연인에게서 배신당한 뒤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고독한 인생을 살아왔다. 영화에는 또 한 명의 법관이 등장하는데 이제 막 사법고시에 합격한 젊은이 어거스트이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카메라는 처음부터, 자꾸만 발렌틴과 이웃에 사는 어거스트를 한데 모은다. 지고지순한 어거스트에게는 애인이 있는데, 금발부터 성격까지 노판사의 젊은 시절 연인과 닮았다. 어거스트는 노판사가 그랬듯 다른 남자와 성교를 나누는 애인을 목격한다. 마치 패러럴 라이프처럼, 두 법관은 시간의 차를 두고 평행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노판사가 얘기하듯, 발렌틴처럼 얘기가 통하는 순수한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어거스트 역시 노판사처럼 고독한 노년을 보낼 것처럼 앞선 연민이 엄습한다.


발렌틴도 어거스트도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도버 해협을 건너려 한다. 그때 1400여 명이 탄 페리가 침몰한다. 꿈은 꿈으로 끝나나 싶은 찰나 7명이 극적으로 구조되는데, 여기에 어거스트와 함께 발렌틴이 나란히 카메라에 잡힌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카메라가 드디어 두 젊은이의 사랑을 예감케 한다. 박애는 사랑일 때 가장 아름답다.


우애와 박애를 상징하는, '레드' ⓒ아티피셜 아이 제공

# 연관과 반복,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글 초반,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고, 이는 영화들을 통해 투영돼 있다고 말했다. 우선 ‘세 가지 색’ 시리즈에서 보면, 레드 편에서 노판사와 어거스트는 똑 닮은 인생행로를 겪고 있다. 전혀 남이고 다른 시대를 살지만 그렇게 연결돼 있다. 그렇다고 어거스트의 미래가 노판사는 아니다. 어거스트는 죽다 살아난 페리에서 발렌틴을 만났다, 사랑은 어거스트의 삶의 행로를 바꿀 것이다.


두 법관의 평행한 삶이나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또 다른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처럼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베로니카와 베로니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똑같이 생겼지만 남인, 그러나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는 두 여성의 이야기처럼 깊이 연관된 것은 아니라 해도. ‘세 가지 색’ 시리즈에는 우리가 얼마나 연결된 삶을 살고 있는지가 곳곳에 표현돼 있고 꽤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된다.


‘블루’ 편에서 줄리가 남편의 애인 샌드린을 만나러 법정에 들어서는데, 이때 열리고 있는 게 ‘화이트’ 편의 카롤과 도미니크의 이혼 재판이다. “프랑스에는 평등권이 없습니까”라고 묻는 카롤의 모습이 나오고, 도미니크의 변호사로 샌드린이 앉아 있다. 그 뒤 공개된 ‘화이트’ 편을 보면, 마찬가지로 카롤과 도미니크의 이혼 재판이 한창일 때 뒤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다 저지를 당해 돌아나가는 줄리의 모습이 흐리게 보이는데, 심각한 상황을 이완시키는 웃음이 폭 터진다. ‘레드’ 편에서 침몰한 페리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들이 뉴스 화면에 등장하는데 발렌틴과 어거스트와 더불어 카롤과 도미니크, 줄리와 올리비에까지 시리즈 전편의 주인공들을 자막 소개와 함께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밖에도 시리즈 세 편 모두에 나오는 재활용 수거함에 공병을 버리는 노파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도 나온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건너 아파트를 엿보던 스무살 청년, 기억력이 좋고 외국어 공부에 열심이던 도메크(올라프 루바첸코 분)는 노판사가 젊은 시절 그러했듯 연상의 여인을 사랑한다.


모든 빛이 합해지면 '화이트' ⓒ스폰지 제공

# 우연과 운명, 사랑을 만나면 동의어가 된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우연적 ‘연관’과 ‘반복’이지만 사랑을 타고 우리 삶에 들어올 때 그것은 운명이 된다. 우연과 운명의 경계를 단정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카메라는 그 특별한 순간을 포착, 우리에게 축복 같은 색깔과 소리로 선물한다.


어떤 부분들에 파랑-하양-빨강의 색이 어떤 모티브로 쓰였는지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마치 콘서트에 간 듯 우리 귀를 사로잡는 음악을 잠시 눈을 감고 감상하는 것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시리즈를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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