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련 작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집필
'스타트업', 배수지·남주혁 활용한 성장드라마 기대했지만
김선호, '스타트업' 통해 대세로
MBC '테마게임'과 시트콤 '논스톱'을 거쳐 '칼잡이 오수정'과 '드림하이'로 드라마 작가로 입문한 박혜련 작가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페이지 터너', '당신이 잠든 사이에'까지 연달아 성공하며 드라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왔다.
그런 박혜련 작가가 3년 만에 복귀를 알린 작품이 지난 6일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은 한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춘들의 시작(START)과 성장(UP)을 그리겠다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박혜련 작가의 필력과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스타트업의 세계, 청춘스타 배수지 남주혁의 출연까지, 드라마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삼박자가 모두 갖춰졌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청춘들의 성장보다는 서달미(배수지 분), 남도산(남주혁 분)의 멜로에 기운 드라마였다.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조명하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20대들의 희노애락은 비중이 적었다. 곧 서달미와 남도산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해피엔딩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 밀려났다.
비중이 커진 멜로라도 서달미, 남도산의 섬세한 감정선을 건드리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촘촘히 담았다면 아쉬움이 덜했겠지만, 두 사람의 서사에는 빈 곳이 많았다. 오히려 한지평이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중반부에 삼각관계가 형성되자 한지평을 응원하는 시청자가 늘어나기까지 했다.
한지평은 고아에서 투자전문가가 된 전사와 외강내유의 성격까지 남도산보다 입체적으로 표현됐다. 달미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한지평에게 설정해놓고, 결국 남도산이 달미의 옆자리에 있게되는 결말은 시청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주인공 남도산은 이 시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너드'(한 분야에 깊이 몰두해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설정했을 뿐, 지평에 비해 전사도, 매력도 깊이 다뤄지지 못했다.
서달미와 남도산이 의기투합한 삼산텍이 뒷자리로 물러나니 자연스럽게 인재(강한나 분), 철산(유수빈 분), 용산(김도완 분), 사하(스테파니 리)도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특히 인재는 돈 있는 새아버지를 택하고, 동생 달미의 사연과 아이디어를 훔쳐 성공하길 바라는 인물이었지만, 후반부에는 달미를 응원하는 역할로 노선을 변경했다. 조금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지만, 해피엔딩을 위한 장치적인 변화로 밖에 비쳐지지 못했다.
삼산텍이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어플 '눈길'로 청년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가 했지만 끝까지 끌고가지 못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까지 히트 시킨 박혜련 작가의 장점은 주인공들의 직업과 특수한 능력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부재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장혜성(이보영 분)은 진실보다 승리가 중요한 이기적인 변호사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수하를 만나며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법조인으로 가져가야 할 태도를 보여줬다. 또 법정 장면에서는 형사재판과 참여재판의 차이점을 시청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대사로 준비하는가 하면, 범인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법의 맹점도 보여주며 법정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피노키오'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재채기를 하는 사회부 기자 최인하를 통해 정의로운 기자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피노키오'는 사건 전개 속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내며 스릴러와 로맨스 균형있게 가져감과 동시에 기자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반영했다는 평을 들었다. 박 작가는 대본 작업을 위해 실제 방송기자들을 만나고 취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방송사 내 에피소드, 기자들의 일상 등을 꼼꼼히 취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정재찬은 허점 많은 검사, 홍주는 누군가에게 닥칠 사건을 꿈으로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회부 기자로 등장해 보험금을 노리고 동생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사건, 길고양이에게 청산가리를 먹인 사건, 제자에게 갑질하는 대학교수의 적나라한 민낯이 담긴 사건 등을 해결해나갔다. 이를 통해 언론과 검찰 사이의 관계,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언론, 사회의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검사의 태도를 제시했다.
'스타트업'은 판타지를 배제하고, 청년 사업가들을 내밀하게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설정으로 앞선 드라마보다 현실적인 성장 드라마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하지만 청춘의 성장은 없고 사랑의 결과만 남은 서달미, 남도산의 '스타트럽'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