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사건번호로 김학의 출금요청 논란
법무부 "중대 혐의자 출금 급박한 사정 고려"
법조계 "사실이면 명백한 법무부의 불법행위"
이용구·박상기·이종근 등 '윗선' 개입 의혹도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출국금지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법적 절차 위반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법무부는 "급박하고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법치주의 핵심 원리인 '적법절차 원칙'을 정부가 무시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지난 2019년 3월 2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태국 방콕행 비행기를 타려했으나, 탑승 직전 법무부의 긴급출국금지 조치로 제지됐다. 문제는 법무부가 출국금지 요건도 갖추지 않은 채 절차를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이규원 당시 담당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2013년 형제 65889호' 사건을 사유로 적었는데, 김 전 차관에 대한 성폭력 사건으로 이미 무혐의 처분이 난 상태였다. 긴급출금 조치 뒤 6시간 내 법무부에 제출해야 하는 승인요청서에는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 1호'라는 내사번호를 적었는데 김 전 차관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건이었으며 소속 기관장 직인도 없었다. 요건이 결여된 처분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법무부는 절차적 흠결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12일 "당시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고위 공무원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며 "(담당 검사는) 내사 및 내사번호 부여, 긴급 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 전 차관의 혐의와 별개로, 법무부의 행위가 사실이라면 명백한 '불법행위'로서 정당화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서울지중앙지검 검사 겸임 발령을 받는 법무부 검사는 어떠한 수사행위를 해도 된다는 논리인데, 그런 것은 없다"며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불법 출금이고 범죄행위라는 점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논란은 출국금지 과정에서 '윗선'이 개입된 게 아니냐는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김 전 차관 출금을 무리하게 추진한 배경에는 검찰개혁의 동력으로 삼기 위한 정권 실세들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관련해 "검찰과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라"고 지시한 바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의 출금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와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추진했다. 당시 법무부 과거사위 위원을 맡았던 이용구 현 법무부 차관이 출금 필요성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법무부 과거사위의 결정에 따라 이규원 검사가 대검에 출금 의견을 냈으나, 절차적 위법 등을 이유로 대검에서 거부당하자 결국 이 검사가 가짜 내사번호로 승인요청서를 만들어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과 정책보좌관이 관여한 정황이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김 전 차관 출금 조치 후 약 12시간 뒤 박 전 장관의 정책보좌관이 출입국본부를 직접 방문했는데, 사건 관련 '대응법' 등을 출입국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정책보좌관이 이종근 현 대검 형사부장이다. 이 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의 남편이기도 하다.
검사 출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불법을 지시한 자들이 검사장으로 승진하는 나라. 이것이 검찰개혁"이라며 "결국 이들은 처벌받지 않을 거다. 이들의 사건에 대한 수사는 공수처가 뺏어가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가짜공수처에 집착한 이유"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