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1조원 넘기면 적자 내더라도 코스피 상장 가능
“가격 격차 해소가 관건...기업 활동규제 합리화 해야”
한국 유망 기업들이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이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쿠팡의 성공적인 뉴욕증시 데뷔로 해외 엑시트가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해외 이탈을 막기 위해선 국내 증시 저평가 요인 해소와 함께 기업 규제 합리화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최근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일 경우 재무 상태와 상관없이 코스피 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을 개정해 시행중이다. 현행 시총 6000억원 및 자기자본 2000억원 상장요건은 각각 5000억원, 1500억원으로 낮아졌다. 적자를 내고 있더라도 코스피 시장 입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국내 유니콘 1호인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륙하면서 마켓컬리 등도 연내 미국 상장을 검토하고 나섰다. 이외에도 스마트스터디·크래프톤·야놀자·당근마켓 등의 뉴욕증시 상장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국 유망 기업들의 해외 직접 상장 움직임이 활발해진 가운데 거래소도 코스피 상장 문턱을 낮춘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선 상장 제도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토종 유니콘 기업들이 해외 시장으로 방향을 트는 것은 ‘제값’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쿠팡은 누적 적자만 4조원대로 국내 상장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잇따랐다. 하지만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해 100조원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차등의결권 장치가 없는 환경 역시 토종 유니콘의 국내 증시 입성을 가로막고 있다. 해외 유니콘 기업들은 보유지분이 적은 창업자가 안정적으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구조의 IPO를 선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쿠팡을 계기로 차등의결권과 관련한 국내 논의가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한국증시 저평가의 경우, 제도적 손질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쿠팡이 해외 직접 상장을 하게 되면 더 유리한 가격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성공사례를 보여 준 것”이라며 “한국증시와 뉴욕증시 간 밸류에이션 상에서 어느 정도의 격차가 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 연구위원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적인 측면으로, 미국증시와의 가격 격차는 제도적으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는 영역”이라며 “단기간 안에 개선하는 것은 어려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기업·친노조 관련 정책을 개선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들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연말 상법·공정거래법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과 해고자 실업자 등 노조가입 허용 등 노동조합 3법 등을 통과시켰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경영 안정을 위한 차등 의결권 도입과 함께 기업 경영환경 개선을 위해 반기업 친노조 규제 개혁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해외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상장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방적인 경영권 보호 차원이 아닌, 기업 활동의 규제 부분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쿠팡은 이사회 구성이나 지배 대주주 관점에서 미국 기업적인 성격이 강해, 최근의 해외 직상장 추진을 쿠팡 이슈로 바로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같은 논리로 우리 자본 시장도 해외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성 교수는 “그러기 위해선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부분은 계속 진행하며, 기업 활동 규제 부분은 좀 더 합리화 시켜주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