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취임 후 첫 경제단체 행사 참석…최 회장에 힘 실어줘
최태원 회장, ESG 경영·규제에 대한 유연한 태도 등 정부와 코드 맞아
정부·정치권과 스킨십 강화 기대…규제 관련 재계 대변 역할은 '미지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리에 오르며 경제단체로서 갖는 대한상의의 위상이 크게 강화되는 모습이다. 그간 경제단체 주최 행사에 참석한 전례가 없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상공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게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31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상위회관에서 열린 ‘제48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최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고 상공인과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상공의 날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직 대통령들이 관례적으로 참석했던 대한상의 주관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비롯, 경제단체 관련 행사에 참석한 전례가 없었다.
경제인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경제계 신년인사회는 청와대 주관 행사를 별도로 진행했고, 대한상의에도 과거 세 차례 방문했지만 정부 정책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2019년 9월 일본 수출규제 발생 당시소재·부품 수급대응지원센터 방문을 시작으로 지난해 1월 정부 신년 합동 인사회, 2월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 12월 ‘2021년 경제정책 방향 보고’ 등이 문 대통령이 과거 대한상의를 방문한 목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상공의 날 기념식 참석은 의미가 크다. 대한상의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재계에서는 문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에는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선제적으로 전파해 온 최태원 회장의 상의 회장 취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념식 행사 전 최 회장을 별도로 만나 “4대 그룹 회장의 대한상의 취임은 처음이라 뜻깊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최 회장이 이끄는 SK그룹에 대해서도 “불화수소 국산화를 통한 소재 자립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으로 환란(患亂) 극복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감사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환담 장소에 배석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에게 “경제를 회복해서 도약하고 선도국가로 가기 위해 경제계나 정부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소통하고, 그런 과정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규제혁신 문제도 소통을 활발히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대한상의를 통해 수집되는 기업들 의견을 정부는 최우선적으로,정례적으로 협의해서 함께 해법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대한상의를 이끌어갈 최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이나 정부 입장에서 최태원 회장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최 회장은 실질적으로 4대그룹의 젊은 오너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하고 있고, 그가 이끄는 SK그룹은 수소와 바이오, 반도체 등 정부 경제정책과 연관된 사업들을 영위하고 있다.
최 회장의 성향이나 경영 철학도 문 대통령이나 정부에겐 기업인들 중 합리적인 대화 파트너로 인식될 만한 부분이 많다. 최 회장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기업 참여나 ESG 경영 전파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기업인이다.
특히 정부와의 관계에서 최대 쟁점이 될 수 있는 기업규제에 대한 시각에서도 최 회장은 유연한 태도를 보여 왔다. 무조건 규제 반대를 외치는 게 아니라 기업들의 선제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최 회장의 시각이다.
최 회장은 취임 첫 날인 지난 29일 중구 상의회관에서 진행된 타운홀 미팅 이후 열린 대한상의 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규제가 자꾸 생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저변에 있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그 이유가 재고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소화돼야 하는데 그 활동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규제하지 말라고 막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올바르게 보이지도 않는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왜 자꾸 기업이 규제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소통을 통해 그 문제에 관해 오해가 있었다면 풀고, 문제인 게 맞다면 반영해서 저희(기업들의) 행동을 고쳐야 한다”면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진보 정권의 성향이 짙은 정책 방향성과 지지층의 요구에 맞춰 계속해서 기업 규제를 늘리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규제에 강력 반발하며 목소리를 내 오던 전임 박용만 회장보다는 보다 유연한 스타일의 최태원 회장이 더 코드가 맞을 수 있다.
이날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대한상의의 위상을 한껏 띄워줬다. 그는 “대한상의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경제단체이자 전국단위 조직을 갖춘 대표경제단체”라고 언급하면서 “민관 협업 강화,우리 기업의 생존을 위한 지속가능경영·탄소중립 등새로운 아젠다 선도,사회적 공익가치 확산등신임최 회장 취임을 계기로 새로운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대한상의의 위상이 강화되고, 정부나 정치권과의 스킨십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다만 최 회장이 기업규제 등에 대한 인식에서 다소 포용적인 스탠스를 취하면서 상의 회원사들을 비롯한 재계 전체와 같은 입장을 공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