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복 기대에도 0%대 기준금리 1년 넘게 지속
역대급 유동성 확장세에도 내수 부진 심화 '악순환'
한국은행이 또 다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제로금리 기조가 1년 넘게 이어지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경기 회복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내수와 실물경기는 활력을 되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기준금리는 반등 포인트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장기화하는 저금리 국면 속에서 불어난 자금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고,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 열풍만 가속화시키면서 악순환의 골만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1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연 0.50%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부터 이어진 일곱 번째 동결 결정이다.
한은이 당분간 기준금리에 손을 대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연초부터 굳어지는 이유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그 만큼 크기 때문에다. 경기는 전반적인 회복이 점쳐지지만 내수 부분의 침체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섣불리 기준금리 인상을 논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회복세가 안착했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만큼, 지금 단계에서는 정책 기조의 전환을 고려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한은이 예측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0%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다음 달 발표할 수정 경제전망에서 지금보다 높은 3.3~3.4%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품수출 증가율이 7.1%, 설비투자 증가율이 5.3%까지 높아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은은 민간소비 증가율이 2.0%에 그칠 것으로 내보고 있다. 기존 전망치인 3.1%보다 1.1%p나 떨어뜨린 수치다. 코로나19로 장기화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이 수출 호조에 따른 성장률 회복 효과를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 부양을 위한 한은의 제로금리 정책은 분명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원계열·평잔 기준 광의 통화량(M2)은 3197조6718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9.8%나 증가하며,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돌파했다. M2는 현금을 비롯해 요구불예금과 머니마켓펀드,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과 금융채 등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 금융상품들을 포함한 것으로,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하지만 이렇게 시중에 풀린 돈은 개미 투자자들의 빚투 분위기만 고조시키고 있다. 반면 기업은 자금난에 허덕이며 풍요 속 빈곤이 심화하는 형국이다.
한은의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가계의 지난해 거주자발행주식 및 출자지분과 해외주식 취득액은 각각 63조2000억원과 20조1000억원으로 모두 통계 편제 이후 최대를 나타냈다. 이 과정에서 대출은 크게 늘었다. 가계의 금융기관 차입은 173조5000억원으로 84조3000억원 급증했다.
기업들은 외부로부터의 자금 조달을 크게 확대했다. 같은 기간 비금융법인기업의 순자금 조달 규모는 88조3000억원으로 27조2000억원 늘었다. 특히 금융기관 차입액이 159조8000억원으로 54조7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장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경기 여건만 보면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논의해야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의 빚 부담을 감안하면 선뜻 손을 대기 힘든 딜레마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는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제는 시장의 유동성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리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