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막을 내린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하 ‘사랑과 전쟁’)에서 배우 최영완은 남편의 외도녀 따귀를 때리고 시누이와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언쟁을 벌이는 ‘센’ 모습을 보였다. 2년 전 가족 예능 ‘인생감정쇼 얼마예요?’에서 만난 최영완은 말수가 적고 배시시 웃는 귀여운 여자였다. 음식도 잘하고 회식 때면 분주히 움직이며 종업원을 자처했다. 아이처럼 키우는 강아지 코코와 함께하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꾸밈없는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
어떤 장르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든 같은 여자로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최영완이지만,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무엇을 열심히 한 결과가 자신을 치는 부메랑이 되는 일은 안타까운데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혼신을 다해 연기한 결과, 그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서인지 드라마에서 만나기 어려워 더욱 갈증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서울 대학로 극장 두레홀에서 ‘러브 앤 전쟁’이 상연 중이다. 일종의 ‘사랑과 전쟁’의 연극판으로 남편과 아내, 남편의 애인, 남편의 친구이자 아내의 애인, 이 상황에서 어부지리로 득을 보는 출장요리사 총 5인의 인물이 벌이는 소동 코미디극이다. 남편과 남편의 친구, 두 남자를 ‘요리해서’ 부가 수입을 톡톡히 챙기는 요리사 ‘순지’ 역할을 최영완이 맡았다.
두 쌍의 연인 사이를 누비며 스토리를 이어 붙이는 역할을 하고, 긴장의 강약을 조절하고, 온 몸을 던져 웃음을 만든다. 물 만난 고기처럼 에너지 생생한 연기,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귀여움과 얄미움이 사랑스럽다.
공연을 본 뒤 시절이 시절인지라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목소리에서 아픈 기색이 느껴졌다.
“아니에요, 지금은 많이 나았어요. 보러 오신 날, 실은 병원에 다녀와 한 공연이었어요. 매번 잘하고 싶지만, 하필 컨디션 최상이 아닌 날이어서 속상해요. 어디 앉아 계신지 보이지 않아서 오신 줄도 몰랐네요.”
필자도 몰랐다, 링거투혼이었다니.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최영완은 역시 연기할 때 살아나는, 천생 배우구나 다시금 느꼈다.
“부산방송 ‘웰컴 투 가오리’가 마지막이었으니까 3년 만의 연기네요. 우선 5월까지 공연하고, 그다음은 관객 여러분의 손에 달렸고요. 다행인 건 여러 지역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해요. 코로나-19로 관람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감사한 일이에요.”
“안 그래도 최근 ‘사랑과 전쟁’ 재조명하며 좋아라 해 주시는데, 타이밍 좋게 연극무대에서 연기하니까 드라마 봐 주셨던 팬분들이 전국 각지에서 코로나-19에도 보러 와 주시고 응원해 주시니까 진짜 ‘살맛’ 났어요.”
말 마디마디에서 고마움이 느껴지고 ‘살맛 났다’는 대목에선 진심의 힘이 솟았다. 이토록 좋은 연극, 그동안 왜 하지 않았던 걸까.
“일단 결혼함과 동시에 연극은 안 했던 터예요. 더구나 남편이 연출하는 작품은 안 하기로 결혼 전 약속했거든요, 같이 작업하는 일은 없을 거다! 생각지도 못하게 하게 돼서 그런가, 더욱 즐거웠어요. (남편 손남목과 연출자와 배우로 만났던) 옛날 생각도 나고 좋았네요.”
“(결혼 약속을 깨고 도전한) 연극은 12년 만이에요. ‘러브 앤 전쟁’ 첫 공연할 때 무척 긴장되고 설렜는데, 일단 대사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했어요. 앞이 깜깜해서 관객들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연기에만 몰두했어요. 커튼콜 인사하는데 한 분 한 분 얼굴이 보이는데 감격스럽더라고요. 눈 마주치는데, 마스크에 가려져 있지만 눈은 보이니까요, 뭉클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는 공연 중에도 관객분들 얼굴이 보였어요(웃음), 무대 위에서 놀 수 있었지요. 놀 수 있다 해도 아직도 무대에 서면 긴장이 돼요, 관객이 많든 적든 소중한 무대니까 떨리는 것 같아요.”
12년 만에 이뤄진 남편과의 작업은 어땠을까.
“남편이 연출하다 보니 눈에 띄게 민폐 끼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뭐든 열심히 했어요. 지적할 일 없게, 눈총받을 일 없게, 연기로서도 다른 배우들의 동료로서도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했거든요. 지금도 초심 잊지 않고 있고요.”
“그런데, (연출자인 남편이) 칭찬도 안 하고 채찍도 안 하더라고요. 다른 배우에게는 지적하기도 하고 ‘너무 잘했다’ 호평하면서도요. 섭섭하더라고요. 한 번은 이유를 물었더니 ‘너무 잘해서 그래’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럼 칭찬이라도 해 줘’라고 얘기했더니, (웃음) 너무 표나게 사람들 앞에서 칭찬해 주더라고요.”
“순지는 귀여운 캐릭터예요. 솔직히 귀여운 척하는 게 힘들어요. 상큼, 발랄, 통통 튀어야 하는데 연습할 때 남편 앞에서 귀여운 척하는 게 창피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무대에선 관객분들 믿고, 하고 있어요”
후기들을 찾아보면 “TV로만 보던 ‘사랑과 전쟁’ 배우들이 열연하는 최고의 연극”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실감 나네요” 등 호평이 자자하다. 소동극이다 보니 마치 ‘합’을 맞춰 격투하듯 쿵-짝이 잘 맞고 호흡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베테랑 배우들답게 착착 손발을 맞춘다. 최영완에게 배우들 호연의 비결을 물었다.
“방송할 때부터 친했던 사람들이라 연습 때부터 편했어요. 그 안에선 제가 막내인데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이 제일 열심히 해요. 계속해 온 공연인데도 시작 두 시간 전에 와서 대사 맞추고 무대 올라가요. ‘한 번이라도 더하자’라고 하시면서요. 후배 배우로서 제가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배우들이 이렇게 재미있어 해주고 열심히 해 주니 공연이 순조롭게 잘되는 것 같아요.”
“방송연기도 배고픔이 있지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과 행복이 있어요. 배우분들이 그 기회를 준 연출자에게 감사하더라고요. 저도 한 명의 출연자로서 같은 마음이고요. 배우분들이 ‘손 대표 작품은 언제든 할 의향이 있다’고 제게 얘기해 주시는데,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전화기 너머에서 신이 나서 답하고 있다 해도, 아픈 사람 붙들고 말을 시켜야 하는 고약한 직업이 기자다. 끝으로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넘어지는 장면 등 몸을 써야 하는 연기가 많던데, 다치지는 않나요?
“다쳐서, 너무 아파서 뒤로 앉지 못한 적도 있고요. 옷 벗기는 장면이 있는데, 벨크로(일명 찍이)로 돼 있고, 그걸 동시에 잡아당겨요. 누구나 팔뚝 피부는 약한데 옷과 함께 뜯겨 멍들어 있고 찰과상이 생기기도 해요. 신기한 건 공연 중에는 아픈 줄도 모르고 하다가 끝나고 일상복 입을 때 쓰라려서 알게 되곤 해요. 슬랩스틱처럼 넘어지는 장면도 있잖아요, 요령껏 하는데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통증이 남네요. 그래도 연기하니까 즐거워요.”
‘묻지 않은 것’을 묻는 게 늘 그렇듯 필자의 마지막 질문이다.
“유튜브(최영완TV) 하면서, ‘제 올해 목표는 일일드라마 할 거예요, 주말도 아니고 미니도 아니고,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꼭 일일드라마 할 거예요’라고 계획을 말한 적이 있어요. 너무 놀랍고도 감사하게도 어쩌면 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놉시스와 대본은 봤는데 확정은 아니에요. 역할 작지도 않은 것 같고, 후보로 검토해 주고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안 된다 해도 저를 생각해 주는 분이 계시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 응원해 주시면, 기적이 일어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