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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까지 부른 중고차 사기…정부는 왜 방치하나


입력 2021.05.12 14:00 수정 2021.05.12 14:14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폐쇄적인 중고차 시장 구조로 불법적 거래 관행 이어져

'전면 개방' 소비자 요구에도 중기부 2년째 결론 못 내

6개 교통·자동차 전문시민단체 대표들이 중고차시장 전면개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자료사진)ⓒ교통연대

중고차 업계의 불법 거래 관행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중고차 사기로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른 피해자까지 나왔다. 소비자들은 폐쇄적인 중고차 시장 구조로 인해 불법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중고차 업계의 눈치를 보느라 1년 넘게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 11일 허위 매물을 미끼로 중고차를 강매한 중고차 딜러 A씨(24) 등 4명을 구속하고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 일당은 온라인에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중고차 허위 매물을 올려놓고 이를 보고 구매하기 위해 찾아온 구매자를 속인 뒤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차를 강매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에 올린 매물을 보고 찾아온 구매자와 계약을 체결한 뒤 해당 차량에 급발진 등 하자가 있다며 계약 철회를 유도하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차량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 뒤 구매자가 계약 철회를 요구하면 약관을 이유로 출고비용 환불은 물론 대출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며 다른 차를 구입하라고 압박하고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살 것을 강요했다.


이들은 문신을 보여주며 위압감을 조성한 뒤 돈이 없다고 하자 8시간 동안 차량에 감금하고 강제로 대출까지 받게 했다.


중고차 사기로 큰 충격을 받은 60대 A씨는 지난 2월 차를 산지 20여일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A씨는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중고차 매매 집단에 속아 자동차를 강매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는 이같은 ‘허위 매물 사기’ 뿐 아니라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11일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 피해는 금융사에 보상을 요구하기 어려우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했다.


중고차 매매시장의 불투명성과 자동차 담보대출의 취약성을 악용한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가 지속 발생해 그 유형과 유의사항을 안내한 것이다.


주요 유형으로는 렌트카 사업의 수익금 또는 중고차 수출의 이익금을 제공하겠다며 명의 대여와 차량 인도를 요구하거나 저리의 대환대출이나 취업 또는 현금융통이 가능하다며 중고차 대출계약을 요구하는 등이다.


금감원은 “중고차 대출 명의를 대여해달라는 제안은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금융사와 중고차 대출 계약을 진행할 경우 본인 명의로 체결된 모든 대출계약의 원리금 상환의무는 ‘본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중고차 시장에 불법행위와 사기가 만연한 것은 중고차 시장의 폐쇄성에 따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완성차 업계의 진출이 제한됐었다.


기존 매매업계만 중고차 매매업을 할 수 있는 폐쇄적인 시장구조로 인해 허위 매물, 대출 금융 등을 이용한 사기가 만연하고, 그 과정에서 감금, 협박, 강매, 명의대여 등 범죄 행위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단체들은 소비자의 선택권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 정화가 시급하며, 이를 위해 중고차 시장의 전면 개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지난 2019년 2월 일몰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사업 진출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에서 이를 막기 위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에 또다시 중고차 업종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면서 시장 개방이 늦어지고 있다.


중고차 업종이 이에 포함될 경우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사기 피해의 제물이 돼야 하지만,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1년 넘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 포함하는 건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바 있고 중고차 시장의 개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커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결정이 미뤄지면서 선거 정국을 고려한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등 6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교통연대’는 지난달 12일 중고차 시장 개방 논의를 소비자 관점에서 풀어가고, 기존의 후진적인 중고차 시장의 거래 관행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중고차시장 전면 개방을 촉구하는 ‘범시민 온라인 서명 운동’을 개시했다.


온라인 서명 운동은 시작한지 28일 만인 지난 9일, 참여자 수가 10만명을 넘을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참여자들은 서명 운동 참여와 함께 기존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만과 실제 피해 사례를 함께 남겼다.


자동차시민연합 임기상 대표는 “한 달도 안 돼 10만 명이 넘는 소비자가 참여한 것은 중고차 시장의 변화를 바라는 불만의 표출”이라며 “중고차 시장의 혼란과 소비자 피해 방지 차원에서 정부의 조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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