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왕리 사건, 윤창호씨 사건 등 이슈화된 사건마다 벤츠·BMW 얽혀
수입차 업계 "브랜드명으로 불리는 수입차 특성 따른 착시효과"
"운전대 맡기기 싫다"…일부 차주의 그릇된 愛車심 탓도
지난 24일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벤츠 차량이 공사 현장을 덮쳐 60대 근로자가 숨지는 등 고급 수입차들의 음주운전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해당 수입차 브랜드로서는 아무 잘못 없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일에 엮이는 억울한 상황으로, 음주운전 예방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는 음주운전 사망 사고마다 고급 수입차가 언급되며 해당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24일 발생한 벤츠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 피해자는 현장에서 사망한 반면, 만취 상태였던 운전자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은 것으로 알려지며 사회적 지탄이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인천 북항터널에서 음주운전자가 마티즈를 들이받아 운전자를 사망케 한 사건도 가해 차량이 벤츠였고, 같은 해 9월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음주운전 역주행으로 치킨 배달을 하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한 집안 가장의 생명을 앗아간 ‘을왕리 사건’의 차량도 벤츠였다.
또 다른 고급 수입차 브랜드인 BMW 역시 음주운전 사망사고와 엮여 자주 언급된다. 지난해 11월 대구에서 만취 운전자가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를 들이받아 환경미화원 1명을 사망케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BMW는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 기준을 강화한 이른바 ‘윤창호법(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 2018년 윤창호씨 사건 당시 만취운전자가 타고 있던 차량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음주운전 빈도와 특정 브랜드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벤츠 운전자라고 음주운전을 자주 하고 현대차 운전자라고 음주운전을 안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운전 차종별 음주운전 사고 횟수를 통계를 낼 수는 없겠지만 상식적으로 특정 브랜드 차량 보유자만 음주운전을 많이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면서 “사건사고 보도시 국산차는 브랜드 대신 특정 차명이 언급되거나 아예 차에 대한 언급이 없는 반면, 수입차는 브랜드 자체가 언급되는 경우가 많아 그런(고급 수입차가 음주운전 사고가 많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차의 경우 그랜저, K5 등 브랜드명을 생략하고 차명으로만 언급돼 브랜드별 빈도가 낮아 보일 수 있는 반면, 수입차는 어떤 차명이건 ‘벤츠’, ‘BMW’ 등 브랜드명으로 뭉뚱그려 언급돼 전체 빈도가 높게 인식되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흔한 차종이면 크게 눈에 띄지 않으니 아예 차명이나 브랜드가 언급되지 않지만 수입차는 그 반대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사고 운전자가 남성이면 굳이 성별을 거론하지 않지만 여성이면 ‘만취녀’ 등으로 성별을 특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음주운전 사망사고마다 유독 벤츠나 BMW가 등장하는 것은 해당 브랜드 차량을 보유한 일부 운전자의 성향과도 연관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대리기사들 사이에서는 고급 수입차 차주들이 음주 후 대리운전을 이용하길 꺼리거나 이용하더라도 까다롭게 군다는 인식이 강하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일하는 대리기사 A씨는 “고급 수입차 콜은 많지도 않거니와, 혹시 대리를 하게 되더라도 바닥 매트 오염이나 운전 방식 등에 대해 상당히 예민하게 구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체적으로 남에게 운전대를 맡기길 싫어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말했다.
이는 차에 대한 강한 애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업계에서는 럭셔리 브랜드의 중형 및 준중형 차종 보유자들 사이에서 그런 경향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수입차 중에서도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와 같은 초호화 브랜드나,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등 럭셔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의 경우 별도의 운전기사를 두고 차주가 뒷좌석에 앉는 ‘쇼퍼드리븐’ 차종인 만큼 애초에 음주운전을 할 이유도 없고, 대리운전을 이용할 일도 없다.
하지만 벤츠 E클래스나 C클래스, BMW 5시리즈나 3시리즈와 같은 상대적으로(고급 수입차 치고는) 진입 장벽이 낮은 차종의 경우 운전자가 직접 모는 ‘오너드리븐’으로 사용돼 그만큼 차주의 애착도 강하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신의 소득수준 대비 다소 무리해서 고급차를 구매하는 이들은 차에 대한 애착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경우 남에게 운전대를 맡기기 싫어하는 성향이 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민폐 주차’, ‘무개념 주차’ 논란에서도 벤츠 차량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같은 성향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같은 수요를 고려해 대리운전 업계도 고급화 수요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이른바 ‘프리미엄 대리운전 서비스’라는 게 존재한다.
프리미엄 대리기사는 일정한 경력을 갖춘 베테랑 기사로,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장갑을 착용한 채 운전하며, 차주 탑승 전에 미리 앞쪽 동승석을 접어 뒷좌석 공간을 넓게 만들어놓는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용도 일반 대리운전 대비 월등히 비싸고, 그만큼 대리기사에게 돌아가는 몫도 많다. 대신 내부 규정에 따른 복장이나 서비스를 지키지 않거나 차주와 마찰이 있을 경우 곧바로 계약이 해지되는 방식이라 고객 응대에 철저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고급 수입차 수요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미엄 대리운전 업체에 속한 대리기사 B씨는 “개인 고급차 수요보다는 주로 법인용 의전수요가 많다”면서 “차가 비싸다고 높은 대리운전 비용을 감수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술 먹고 운전대를 잡은 음주운전 가해자들의 선택은 피해자는 물론 본인의 인생까지 망치는 결과를 낳았다. 나아가 해당 차를 판매한 브랜드와 같은 브랜드 차종을 구매한 다른 소비자들에게까지 억울한 오명을 덮어 씌웠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조사가 차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완전 자율주행이 아닌 바에는 음주운전 사고까지 예방해 줄 수는 없다”면서 “음주 상태에서 운전하는 차는 자신과 타인의 삶을 망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