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드릴십 매각은 FPSO→VLCC로 이어지는 선순환 신호탄
유가 100달러 전망 나오며 해양플랜트 호황 재현 기대
탄소중립 이슈가 오일메이저 발목…"지나친 낙관론 경계" 시각도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보이면서 조선업계에서도 ‘오일머니’ 유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미인도 드릴십들의 향배가 오일메이저들의 투자 개시를 알려주는 일종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상광구개발→생산·저장·하역→운반으로 이어지는 원유생산 프로세스 상에서 드릴십이 첨병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제유가가 우상향을 거듭하는 가운데 내년 말 배럴당 100달러선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이에 대응하는 석유업체들의 해양플랜트 발주도 확대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70달러대에 안착한 국제유가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월가 투자자 관심이 친환경 에너지에 쏠릴수록 오히려 유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특히 “일부 선물 투자자는 내년 말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올 초 50달러에도 못 미쳤던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2월 60달러를 넘어서는 등 오름세를 거듭하다 최근 70달러대로 유지되고 있다. 세계 경기 회복 추세가 뚜렷해지는 데다 하반기 원유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가 상승세를 부추겼다.
고유가에 대한 믿음은 석유업체들의 투자 확대로 이어진다. 그동안 채산성이 낮아 해양플랜트 발주를 멈추고, 심지어 발주했던 설비까지 취소했던 석유업체들이 다시 발주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이어졌던 해양플랜트 침체기는 유가전망이 불확실한 데 따른 것이었다”면서 “우상향이 확실하다는 믿음이 있다면, 나아가 유가 100달러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해양플랜트 발주가 이어질 것이고, 건조 경험이 풍부한 한국 조선소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미인도 드릴십에 조선업계가 주목하는 이유
업계에서는 석유업체들의 태세 전환을 가늠하는 척도로 드릴십 계약을 꼽고 있다. 새로운 해상광구를 개발하려면 먼저 드릴십을 투입해 시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는 발주에서 완공까지 적어도 3년은 소요되는 만큼 이미 건조를 완료했음에도 계약이 취소된 미인도 드릴십에 관심이 쏠린다. 건조 기간 없이 바로 인도받아 해상광구 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석유업체들에게는 매력적이다.
현재 미인도 드릴십을 5기나 보유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으로서는 그동안 실적 악화의 원인이 됐던 악재를 털고 현금화할 기회를 맞은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기존 운영 중인 드릴십 가동률이 100%에 이르진 못하고 있지만 가동률이 올라가면 완공된 드릴십에 눈을 돌리는 선주들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실제 삼성중공업은 다수의 선주들과 드릴십 매각 혹은 용선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중공업 드릴십 5기가 장부가 12억달러로 너무도 값싸게 잡혀 있다”면서 “이들에 대한 매각 협의가 진행 중이어서 언제든 갑자기 매각되는 이벤트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인도 드릴십 매각은 비단 삼성중공업에만 호재가 아니다. 드릴십 투입 이후에는 원유를 생산하고 저장해뒀다 하역까지 할 수 있는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가 필요하고 여기서 생산된 원유를 운반하는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도 필요해진다.
삼성중공업의 미인도 드릴십 매각이 조선산업으로의 오일머니 유입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 되는 셈이다.
예전 같지 않은 오일메이저 …"해양플랜트 호황 낙관 못해" 신중론도
다만 해양플랜트 시장에 대한 섣부른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고유가 시대에 해양플랜트를 대거 발주했다가 유가 폭락으로 타격을 입은 경험이 있는 오일메이저들이 과거보다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본격화하는 등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이슈가 대두되며 석유개발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엑손모빌이나 셰브론, 로열더치셸 등 오일메이저들에 집중됐던 투자가 그린에너지로 옮겨가는 추세가 장기적으로 해양플랜트 산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주가 이뤄진 해양플랜트들은 기존 진행되던 프로젝트였고, 최근의 고유가 추세를 타고 새로 추진되는 것들은 아니다”면서 “해양플랜트 시장이 바닥을 친 것은 맞지만 다시 호황으로 접어들 것으로 낙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