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쥬스' 7월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개막
걸스카웃 외 앙상블로 무대 올라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 걸스카웃 옷을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나눠 묶은 소녀가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휘젓는다. 그 넓은 대극장 무대를 누비면서도 어색함은 조금도 없고, 무대는 물론 관객석까지 꽉 채우는 흡인력을 보여준다. 지난 6일 개막한 뮤지컬 ‘비틀쥬스’의 2막은 이 소녀, 뮤지컬 배우 이자영이 연다.
이제 막 데뷔 3주년을 맞은 이자영은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고, 이 꿈을 위해 한 곳만 보고 달려왔다. 배우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신이 무대에 섰을 때 느끼는 희열이 지금 그를 무대에 서게 했다. 3년 동안 여러 작품에 출연해왔고, 현재 ‘비틀쥬스’ 무대에 서면서 이자영은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했다.
-뮤지컬 ‘비틀쥬스’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뮤지컬 ‘비틀쥬스’는 음악, 안무, 비주얼적인 요소 등 모든 것들이 제 취향으로 가득 차있는 작품이에요. 심지어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초연으로 한국에서 공연이 올라간다니 하고 싶다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지만 관객으로서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랬던 작품인 만큼 직접 참여하게 됐을 때는 이게 꿈인가 싶고, 마냥 행복했죠. 첫 연습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기억이나네요.
-오디션은 어땠나요?
‘비틀쥬스’ 오디션은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된 기간을 포함해 제가 참가했던 오디션 중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됐어요. 그래도 그 긴 기간 동안 저보다 더 마음 써주시고 응원해주신 주변 분들이 계셨고, 같이 참가 중이던 선·후배·동료 배우분들과 함께 그 고충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 응원하기도 하면서 너무 외롭지 않게 견뎌 낼 수 있었어요.
-긴 오디션 끝에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잖아요. 이자영 배우만의 필살기가 있나요?
뭔가 부끄럽지만 아직은 완성된 필살기가 없는 것 같아요. 하하. 그래서 꾸준히 계속 연습하는 게 답이라는 걸 오디션에 참여할 때 마다 매번 느껴요. 물론 오디션이란 게 운도 어느 정도 따라주어야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준비 된 실력이니까요. 언젠간 당당히 ‘제 필살기는 이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죠(웃음).
-‘비틀쥬스’는 연습량이 엄청나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연습 기간이 길었던 만큼 연습량도 확실히 많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양과 시간을 떠나서 저희 연습실은 항상 집중력, 열정, 멋진 장면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고 있는 현장이었어요. 연습실을 떠나던 날의 마지막 런스루 순간까지도 보는 사람, 하는 사람 할 거 없이 모두가 즐기고, 웃고, 울고, 환호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건강하고 멋진 현장에서 좋은 분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고 감사해요.
개인적으로는 앙상블로서의 경험이 많이 없다보니 군무장면에서 저희 ‘갓상블’ 언니, 오빠, 동생들처럼 멀리 있다가도 귀신같이 본인의 자리를 찾아가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다들 너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어쩜 그리 한 사람처럼 동시에 척척 움직이실까요? 물론 저도 이젠 열심히 연습해서 제 자리만큼은 쏙쏙 찾아내고 있답니다. 하하.
-연습이 힘든 만큼, 함께 하는 제작진, 배우들과 서로 의지하고 더 끈끈해 진 것 같네요.
사실이에요. 하하. 하지만 이 끈끈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는 연습이 힘들어서라기 보단,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이 공연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비틀쥬스’라는 공연 자체가 ‘죽음’이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참 아이러니하게 밝고 유쾌한 기운을 정말 많이 담고 있잖아요. 이 긍정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행복한 기운을 많이 공유할 수 있게 해 줬던 것 같아요.
-긴 연습, 리허설 끝에 드디어 지난 6일 처음 관객들을 만나셨죠. 첫 날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요?
처음 경험해 보는 설렘이었어요. 그동안 첫 공연을 올릴 땐 보통 기대보단 긴장이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 날은 관객분들에게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대감이 가득 했어요. 신기하게도 저 뿐만 아니라 소대에서 같이 대기 중이던 많은 배우분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사랑하는 이 공연을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극중 어떤 역을 맡고 있나요?
저는 가장 대표적으로는 걸스카웃 스카이 역을 맡고 있고요, 1막에선 앙상블로서 조문객, 합창단 등으로도 등장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 롤이 몇 가지 더 있는데 이 부분은 관객분들께 더 큰 신기함을 선사해드리기 위해 아직까지는 비밀로 유지하는 중입니다(웃음).
-걸스카웃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하셨는지도 궁금해요.
걸스카웃 스카이 캐릭터는 이미 대본, 악보 상으로도 너무 재밌는 캐릭터였어요. 처음엔 제가 이 캐릭터를 어떻게 무대로 끌고 와야 ‘비틀쥬스’의 매력을 업시키는데 도움이 될까 고민이 많이 됐었어요. 오리지널 팀에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였던 만큼 부담감도 있었죠. 그때 맷 디카를로 연출님께서 스카이라는 캐릭터에 상상했던 모습이 저 자체와 굉장히 비슷하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희망찬 모습을 끌어내주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 얘기가 저한테 굉장히 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같은 게 생겼거든요. 이때부터 스카이를 연기하는 게 훨씬 재밌어지면서 씬을 즐길 수 있게 됐던 것 같아요.
연습에 들어가기 전부터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시트콤 등 유머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어떤 포인트가 웃음을 유발해내고 있는 걸까 고민해봤어요. 전부터 코미디 프로그램을 많이 즐겨보긴 했지만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보니까 제가 모르고 있던 웃음 요소들이 훨씬 많이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심지어 미국작품에는 가정방문 쿠키판매를 하는 걸스카웃이 꽤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그런 작품들을 많이 찾아보면서 이 작품에 걸스카웃이 왜, 어떤 상징으로 등장하는지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더구나 2막의 포문을 여는 포지션이잖아요. 부담도 클 것 같아요.
처음 2막 런을 돌 때는 진짜 너무 떨려서 실제 스카이처럼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을 잘 못 쉬겠더라고요. 몇 주간은 계속 2막이라는 얘기만 들리면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연습을 계속 진행할수록 이 긴장감이 설렘으로 바뀌면서, 2막의 문을 여는 그 순간이 너무 재밌어졌어요. 지금은 인터미션이 끝나는 순간이 기다려져요!
-워낙 역동적인 작품이다 보니, 공연 도중에도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제가 걸스카웃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백팩을 바닥에 떨어트리는 장면이 있는데요, 여기서 노래 한 소절 안에 시선은 정면에 두고 가방을 한손으로 빠르게 벗어서 멋있게 탁! 떨어트려야 장면이 더 재밌어지거든요. 근데 이 가방이 무겁기도 하고 높은 위치에서 떨어트리는 만큼 정확한 위치에 정확하게 세워서 떨어뜨리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연습실에서 챌린지처럼 많은 분들이 도전도 해보시고 어떻게 하면 잘 될까 함께 고민도 해주셨는데 여전히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하도 이걸 연습하고 있으니까, 걸스카웃 장면에서 제가 가방 세우기에 성공하면 지금도 소대에 계신 분들이 환호를 보내주셔요(웃음).
-작은 체구임에도 관객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 배우’라고 할 정도로 시선을 뺏는 배우라는 평이 있어요 .
그런 평이 있었군요! 좋은 평은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언제나 너무 감사하고 힘이납니다. 감사해요. 하하.
-데뷔한지 3년밖에 되지 않은 배우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더라고요(웃음). 데뷔 무대는 2018년 ‘보물섬’이었죠?
네 맞아요. 사실 ‘보물섬’ 무대에 오를 때는 공연 전과 중간에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뭔가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죠. 그런데 커튼콜을 하면서 순간 ‘어? 내가 이제 뮤지컬 배우가 된건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기분이 되게 이상했던 기억이 나요. 오랜 시간 막연히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됐다고 생각하니 왠지 얼떨떨하더라고요.
-뮤지컬 관객들에게 어떤 배우로 인식되고 싶으세요?
예전에는 마냥 잘하는 배우로 인식되고 싶었다면 공연을 하면 할수록 관객분들에게 좋은 기억을 주었던 배우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연기하는 모습이, 제가 출연하는 극이 관객분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간직됐으면 좋겠어요.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극장을 찾아주셨을 테니까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좋은 기억도 많이 담아가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최종 목표도 들려주세요.
저는 배우로서 이미지가 뚜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예전에는 이런 평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비슷한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주변에서 배우로서 명확한 이미지를 하나라도 갖고 있는 게 무기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저 또한 그런 점을 제 장점으로 받아드릴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이젠 제가 가진 이미지를 잘 지키고 유지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역할에도 많이 도전해보면서 새로운 이미지들을 하나씩 추가해가고 싶어요. 제 안에 다양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고 믿거든요! 꼭 올해가 아니더라도 연차를 쌓아가면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는 배우가 될 수 있길 바라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