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터 경제까지…잠룡 강점 풍성
입법·행정·사법 '준비된 지도자' 즐비
"풍성한 야권주자군 유례 없는 현상
전체를 '섀도 캐비닛' 보이게끔 해야"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대권 도전 선언이 잇따르면서 범야권의 대권주자군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야당의 대권주자군이 이 정도로 풍성한 것은 유례 없는 일로, 이 기회를 정권교체가 가능한 수권 세력임을 과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주에 두 명의 국민의힘 현역 의원이 새로 대권주자군에 합류했다. 지난 13일 4선 중진 박진 의원이 대권 도전을 선언한데 이어, 15일에는 3선 김태호 의원이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박진 의원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우리 정치권에 드물고 귀한 '외교통'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시절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도 교분을 쌓았다. 박 의원은 대권 도전 선언 직후 기자들과 문답을 가질 때, 바이든 대통령이 대권 도전을 권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태호 의원은 경남도의원·거창군수·경남도지사를 거쳐 중앙정치권에서도 3선의 경력을 쌓은 의정·행정의 전문가이며, 8전 7승의 '선거의 귀재'이기도 하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후 가장 젊은 나이에 총리로 지명됐을 정도로 일찌감치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국가지도자 후보군으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지난 5월 한미 백신스와프 의원외교를 위해 워싱턴을 함께 방문했을 때 '외교의 신' 박진 의원의 진면목을 봤다. 기억력·판단력·해박한 지식·능숙한 언어·작은 선물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매너…"라며 "박진 의원의 출마 선언은 국민의힘 현역 의원의 집권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울러 김태호 의원의 대권 도전 선언에 관해서도 "경남지사 시절 GRDP(역내총생산) 전국 1위를 이끈 재선 경남지사"라며 "김종필 이후 최연소 총리후보자"라고 추어올렸다.
이처럼 정치권의 귀한 '외교통'에 이어 대권의 캐스팅보트인 부산·울산·경남(PK) 출신 차세대 정치지도자까지 범야권 대권주자군에 가세함에 따라, 야권의 잠룡 인재 풀은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는 분석이다.
범야권 대권주자군을 살펴보면 대선 본선 유경험자만 두 명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적자'를 자처하는 5선 중진 홍준표 의원과, KDI 출신 경제전문가이자 개혁보수의 깃발을 높이 들어온 유승민 전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선례처럼 대선 재수를 거쳐 대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안상수 전 인천광역시장도 대선후보 경선에 2012년·2017년에 이어 세 번째로 도전하고 있다. 안 전 시장은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실물경제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자랑하고 있으며, 인천시장 시절 '송도의 기적'을 일궈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가 최고지도자 후보로서 입법·행정·사법의 경륜을 논한다면 현직 광역단체장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사법시험 수석 합격의 법조인 출신으로 준사법기관인 검찰에 몸담았으며, 이후 3선 의원을 하며 최고위원 두 차례에 핵심 당직인 사무총장을 지냈다. 2014년부터는 제주도지사로서 도정을 맡고 있다. 범여권에도 현직 단체장인 대권주자가 있지만 국회의원 경력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중앙정치에서의 경륜은 원 지사와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황교안 전 대표는 여야 대권주자 중에서 유일하게 대통령권한대행을 지내며 국가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준비'만 한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해봤다. 범여권에 국무총리를 지낸 대권주자는 있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총리와 대통령권한대행의 무게감은 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국민의힘 3선 하태경 의원은 1968년생으로 대권주자 중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2030·MZ세대 열풍이 불기 전부터 젊은 유권자들, '이대남'과의 소통을 중시해왔으며, 이를 개인적인 의정 활동에 한정짓지 않고 요즘것들연구소 활동으로 확대 발전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해왔다.
이처럼 국민의힘 당내에 포진한 대권주자들과 함께 당밖에는 중도 확장성이 넓은 것으로 평가받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범야권 대권주자 중 유일한 호남 출신인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이 있다.
문재인정권의 '내로남불'과 대비되는 행적으로 정의와 공정·상식의 표상이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까지 더하면 어느 한 명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각자의 영역에서 특장점을 갖고 범야권의 수권 역량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이와 관련해 "우리 당에 훌륭한 대권주자들이 많이 있다"며 "우리 국민의힘 당원이라면 국가의 미래를 위한 깊은 고민 속에서 대선에 도전하는 모든 후보들을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도 "지금 우리 당에서 나온 분들이 민주당 후보들보다 다 나은 것 같다"며 "경륜과 경험과 리더십이 있는 분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그 중에서 국민들이 선택하면 된다. 슈퍼에 가서도 물건이 많은데 가서 사는 게, 다양한 것들 중에서 좋은 것을 고르는 게 좋지 않느냐"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여당은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현재권력'이 단임제에 묶여 다시 출마할 수 없고, 집권 세력이라는 장점이 있다보니 인재 영입이 쉬워 대권주자군이 풍성해지는 경향을 갖는다. 반면 야당은 1인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 정권탈환을 위한 원내외 대정부투쟁을 벌이는 만큼 상대적으로 대권주자군이 풍성하지 못한 게 그간의 모습이었다.
1997년 대선의 경우 여당인 신한국당에는 이른바 '9룡'이라는 풍성한 잠룡군이 있었으나, 야권은 일찌감치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교통정리'가 됐다. 2002년 대선은 반대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치열한 대선후보 경선을 거친 뒤에도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 후보단일화가 뒤따랐으나, 야당인 한나라당은 진작부터 대선후보는 이회창 전 총재였다.
지금과 같이 여권보다 야권의 대권주자군이 양적·질적으로 풍성하고 다채로운 것은 정당사에 이례적인 일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야권은 경선을 거쳐 대선후보가 1인으로 압축되는 과정에서 이같은 다채로움을 잃어가는 정치를 할 게 아니라, 대권주자군이 풍성한 지금 이들 각자의 특장점을 살려 수권 능력을 어필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 핵심 관계자는 "야권의 대권주자군이 이처럼 다채롭고 다양하고 많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국민의힘 이준석 체제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기회를 정권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야권의 수권 능력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수많은 후보군 중 특정 1인과 이재명 지사 또는 다른 여당 후보의 인물 대결로 프레임을 잡기보다는 지금의 대권주자군 전체를 일종의 '섀도 캐비닛'으로 비쳐지게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