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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정상회담 해달라고 매달리는 처지가 됐나


입력 2021.07.19 09:00 수정 2021.07.19 07:35        데스크 (desk@dailian.co.kr)

제왕 행세, 나라 안에서나 통하지

호기를 부렸으면 끝장을 보든가

쿼드의 주변국 신세 된 대한민국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앞뒤 재고 던진 화두가 아니라 돌격대 정신으로 내지른 주먹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그렇게 시작됐다. 일본은 나쁘다. 북한보다 훨씬 더한 우리의 적이다. 공격할수록 국민의 지지 열기는 높아진다. 아마 그런 계산이었을 것이다. 국내적 효과는 제대로 짐작했는데 외교는 초급 수준의 상식조차 없었음에 틀림없다.


국내에서는 정권을 쥔 자가 왕이다. 민주주의 운운하지만 대통령들의 행태를 보면 저마다 왕 노릇에 취했었다. 문재인 정권의 인식과 정서는 그 중에서도 심한 편이다.


제왕 행세, 나라 안에서나 통하지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감사원장,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들이 야권 대선 주자로 나서자 정부 여당 쪽에서 나온다는 말이 ‘배신자’이고 ‘쿠데타’이다.


“옛날 신하들은 배소(配所)에서 조차 아침저녁으로 북향사배를 하며 충성을 맹세했는데, 감히 정권에 맞서다니!”


아마도 이런 심사이겠는데, 소위 민주화운동 세력의 정신적 타락의 전형을 이 일단의 권력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왕 행세가 통했다. 그냥 통한 게 아니라 기대 이상의 국민적 호응이 있었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라는 사회 분위기였으니, 일찍이 어느 군주도 누려보지 못한 절대적 신뢰와 지지였던 셈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까지 그 권위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면서도 문 대통령과 정부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표출했다.


그는 취임 첫해부터 ‘한·일위안부합의’의 사실상 폐기를 선언했고 정부는 이듬해 이 합의 결과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 와중에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 수출규제로 보복하고 나섰다.


누가 보기에도 그것은 외교적 미숙이 빚은 불필요한 충돌이었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정은 감정이고, 외교는 외교다. 문 대통령은 이 단순한 셈법도 굳이 외면했다.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일본에 대한 국민의 적개심을 자극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일본이 2019년 7월 4일부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데 대해 문 대통령은 그달 12일 전남도청에서 “전남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독전(督戰)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바로 다음날 ‘죽창가’로 추임새를 넣었다).


호기를 부렸으면 끝장을 보든가


일본에 대해 켜켜이 쌓인 원한은 국민 모두가 함께 느끼는 민족감정이다. 그걸 혼자만의 정의감·민족애로 떠안은 듯이 요란을 떤 것은, 대통령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었다. 지지자들의 환호와 박수가 판단을 그르치게 했을까? 문 대통령은 한일 지소미아(GSMIA: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로 까지 상황을 밀어붙였다. 소득은 없이 안보부담만 키워 놓은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호기를 부릴 양이었으면 끝까지 상대를 압도할 대책이라도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끝내 일본에 대해 대화와 협상을 사정하는 처지로 떨어졌다. 체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기에 딱할 정도다. 23일 열리는 도쿄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게 청와대의 희망이고 일본에 대한 요구인 듯 한데 글쎄….


“그 자리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문제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문제 등을 논의하자. 이와 함께 역사문제도 장기과제로서 의제에 올리자.”


아마 이런 주문일 텐데 일본 측의 반응이 영 시원찮은 모양이다. 격식 갖춘 정상회담은 아직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쪽에도 맺힌 게 많다는 뜻이겠다. 외교 전략의 측면에서도 쉽게 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함직하다. 그렇다면 이게 뭔가. 무슨 생각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처럼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는 것인가. 오늘(19일) 중으로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기다리는 소식은 올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웃픈 코미디가 되어 가고 있다.


쿼드의 주변국 신세 된 대한민국


허풍쟁이 도널드 트럼프보다는, 정치경력이 반세기에 이르는, 노련한 조 바이든을 상대하기가 훨씬 버거울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체제에서 한국은 주변국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 문 대통과 그의 정부에 대한 신뢰와 기대도 훨씬 낮아진 분위기다. 쿼드가 우리를 변방으로 밀어버리면 중국은 우리를 아예 속국 취급을 할 수가 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드(THAAD: 종말고고도요격체계) 관련 발언에 “천하의 대세를 따르라”는 협박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도 다르지 않다. 한없이 만만해졌다는 뜻이다.


일본을 미워하는 것은 쉽다. 문재인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반일(反日)을 외치는 사람은 수없이 등장할 것이다. 말로는 뭘 못하겠는가. 그렇지만 국가경영을 책임진 사람이라면 말에 앞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일본이 싫다고 그 나라를 태평양 한가운데로 밀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두 나라는 영구히 이웃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적대반목하기보다는, 숙제는 숙제대로 풀어가면서 상생 공영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안일 터이다. 외교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덤불만 뒤지다가 세월 다 보내고 말았다. 이제 9개월 20일 남은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건 문 대통령과 그 정권 사람들의 문제라 하고, 도대체 국민은 무슨 죄인가. 왜 함께 일본‧중국에 만만히 보여야 하게 됐는지 생각할수록 한심하기만 하다.


ⓒ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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