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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서두는 정부가 야속한 철강업계 [김민희의 해설(解說)]


입력 2021.10.11 07:00 수정 2021.10.11 06:50        김민희 기자 (kmh@dailian.co.kr)

2050 탄소중립 향한 정부의 급진적 목표 설정…생산력 저하 등 부작용 초래 우려

기술개발 비용부담 크고 인프라 구축 어려워…산업경쟁력·일자리 영향 감안해야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포스코

2050년 탄소 중립을 향한 정부의 급진적인 목표 설정으로 철강업계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혁신 기술개발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부담은 물론, 관련 인프라 구축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무리한 감축 요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을 향한 철강업계의 기술개발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데, 정부는 ‘뛰어가라’고 채근하는 꼴이다.


정부와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 8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을 내놨다. 이번 상향안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 감축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기존 26.3%에서 감축 목표치가 크게 조정됐다. 목표연도까지 연평균 감축률은 한국이 4.17%로 주요국(EU 1.98%, 미국 2.81%, 영국 2.81%, 일본 3.56%)들 중 가장 높다.


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결정을 두고 ‘무리한 목표 설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이 2019년 철강산업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는 1억2000만t으로 산업 전체 배출량의 19.2%를 차지할 만큼 높은 데다, 탄소 중립을 위한 기술 개발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단기 감축 방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고로→전기로 전환’과 ‘고로에 투입되는 철스크랩 양을 증가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전기로 제강을 통해 고로 제강과 같은 고순도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기술개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신용평가에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대비 고로 설비 연식이 짧고 500만t급 대형 규모 위주로 이루어진 국내 철강업계의 경우 전기로 대체에 대한 부담이 더 클 수 있으며, 철 스크랩의 자급화도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수소환원제철 공정.ⓒ포스코

결국 중장기 방안으로 꼽히는 것이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생산방식을 고로에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 유동환원로에 수소를 투입하면 탄소배출 제로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나 해당 기술은 아직 개발 초기 단계다. 국내 철강 대표 기업 포스코는 기술 상용화 시점을 2050년으로 잡고 있으며, 매몰 및 설비투자에 40조원이라는 막대한 비용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은 ‘그린 수소’를 전제로 한다. 유동환원로에 투입되는 수소도, 설비를 구동하는 전기의 생산도 모두 탄소 배출이 없어야 한다.


즉 제철소의 모든 전력이 필수적으로 외부에서 공급돼야 하므로 전기 소모량 증가가 불가피해진다. 문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기 공급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설비 구동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가 대안으로 꼽히지만 공급량이 충분치 않을뿐더러 가격도 비싸다. 포스코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태양광 발전단가는 kWh당 163원으로, 중동보다 10배 비싼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언급된 단기·중장기 방안을 아무리 살펴봐도 아직 NDC 상향을 논할 단계는 아닌 듯 하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 중립에는 기업과 국민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목표안이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구체적 비용 설정과 지원 방안을 함께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NDC 상향을 통해 대외적 명분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정부의 역할은 산업경쟁력·일자리라는 실리를 챙기는 일이다. 밖에다 자랑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 실리를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NDC 상향은 불가피하지만, 기업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이행 가능한 수준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의 체면 때문에 국가 경제를 망친 정부로 국민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김민희 기자 (km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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