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만드는 SF는 어떨까 궁금… 최항용 감독의 단편영화를 보고 나서 확신했다.”
“고요한데 수면 아래에서 소용돌이 치는 드라마…자극적인 걸 원하면 안 맞을 수도 있다.”
배우 배두나가 ‘고요의 바다’를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국내 첫 SF 드라마라는 부담감도, 우주복 연기의 어려움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 경험이 자신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 특수 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SF 드라마로, 배두나도 처음에는 ‘이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항용 감독과 ‘고요의 바다’만의 매력을 믿었기에 선뜻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한국의 예산으로 만드는 SF는 어떨지, 또 가능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의 바탕이 된 최항용 감독의 단편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이 작품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배우의 얼굴과 심리를 따라가는 작품이니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최 감독을 보며 천재 우주생물학자 지안의 모습을 떠올렸고, 이에 그를 참고해 캐릭터를 구축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안의 성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장면까지. 초반부터 캐릭터에 깊게 몰입하며 감정을 섬세하게 쌓아갔다.
“감독님을 보면서 ‘지안이 저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굉장히 말이 없고 얼굴이 하얗다. 한 번도 자외선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 같더라. 지안은 사교성은 없지만 공부 쪽으로 머리는 잘 돌아가는 은둔형 외톨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의 성격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또 언니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여겼다. 이번에는 초반 한 씬이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지아닝 최 국장에게 골드카드를 받는 장면인데, 그 골드카드를 마주하는 순간 캐릭터에 몰입이 됐다. 그 장면에 큰 충격과 상처를 받고 지안의 태도, 인간을 바라보는 눈빛 등에 도움을 받았다.”
무거운 우주복을 입고 촬영하는 것도 물론 어려웠다. 그럼에도 지안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방점을 찍고 집중했다. 캐릭터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고요의 바다’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우주복이다. 기본적으로 무게감이 있었다. 승모근이 발달하는 것 같더라.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 양궁도 해보고, 격투기도 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수월했다. 오히려 가장 어려웠던 건 마음이었다. 내 감정으로 시청자들을 따라오게 해야 했고, 그래서 그걸 놓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배두나는 이러한 어려움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 농담하고, 서로 배려하며 힘든 과정을 극복했고, 그래서 ‘좋은 기억’만 남았다며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는 우주복까지 입어보는구나’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배우로 감사한 게 여러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거다. 다른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 장점이 가장 큰 것 같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재밌었다. 너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다 웃고, 행복해하고 있다. 신나게만 찍지는 않았겠지만, 서로 웃겨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이었다.”
다만 공개 후에 ‘고요의 바다’를 향한 호불호가 이어졌고, 평가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법도 했다. 공개 직후 ‘고요의 바다’ 전개가 다소 길고, 지루하다는 일부의 혹평이 있었던 것. 그러나 배두나는 이번 작품이 고요하고, 여백이 있었기에 더욱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며 ‘고요의 바다’만의 매력을 강조했다.
“나는 미니시리즈나 50부작 주말드라마를 많이 해본 세대기 때문에 그러한 작품들이 주는 재미도 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고요의 바다’는 짧게 축약됐다고 생각했다. 여백 또한 감독님의 단편을 보며 이해했다. 비주얼적으로 채울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여백이 주는 무언가를 좋아하기도 한다. 1회에서 안 좋은 평이 있다면, 자극적인 걸로 시선을 잡고 가는 작품들이 많지 않나.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공식을 따라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배우의 눈을 따라갈 수도 있는 작품이다. 고요한데 수면 아래에서 소용돌이를 치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자극적인 걸 원하시면 안 맞으실 순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생소할 순 있어도, 늘 새로운 작품을 이어갈 생각이다. 다양한 경험들이 곧 연기 활동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배두나는 지금처럼 바쁘게, 그렇지만 즐겁게 활동을 이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느 순간 내가 몸을 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이 부딪히고, 경험을 하는 것이 나의 전투력이 될 거라는 생각이 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경험을 하려고 한다. 해외에 나가서 작품을 찍고, 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작품을 하고. 이런 과정들이 너무 재밌다. 해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국내 작품만의 재미도 있다. 그런 게 나 자신에게 힐링이 된다. 나가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또 재밌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바빴던 것 같다. 지금도 장르를 가리거나 내가 선호하는 역할, 또 주, 조연에 대한 기준을 두지 않는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저예산도 해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