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하얗다' 김지석 감독 첫 장편 연출작
차기작 준비 중
데이빗 핀처, 미셸 공드리, 웨스 앤더슨, 마이클 베이, 안톤 후쿠아, 스파이크 존스 감독들의 공통점은 광고와 뮤직비디오 연출로 먼저 메가폰을 잡아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국내에서도 광고, 뮤직비디오 등의 커리어로 먼저 일을 시작한 후 영화계로 무대를 옮긴 경우가 존재한다.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 '고사: 피의 중간고사', '계춘할망'의 창 감독, '뷰티 인사이드'의 백종열 감독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화려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각 연출을 무기로 영화 팬들을 사로잡으며 충무로에 자리 잡았다.
광고에서 영화로 옮겨온 감독들은 대체로 영상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화려할 수 있으나 이야기 자체나 캐릭터의 완성도 등 다른 부분에서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이들 외에도 더 많은 광고 출신들이 영화계 출사표를 던졌지만 관객들의 잔상에 남지 못하거나 도전이 잇따라 보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주목할 만한 광고 출신 감독이 MZ 세대 감독들이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온 세상이 하얗다'의 김지석 감독은 바람의 나라, 롯데 렌터카, 빙그레, 에이블리 등 다수의 CF를 기획한 김지석 감독의 첫 번째 작품이다. '온 세상이 하얗다'는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죽기 위해 태백 까마귀 숲으로 떠나는 기이한 동행을 담은 로드 무비다. 그동안 광고 출신 감독들이 주무기를 내세워 볼거리를 다양하게 만들어냈다면, 김지석 감독은 광고 감독 출신임을 밝히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죽음에 대해 담백하게 담아냈다.
주연 배우 박가영도 영화 출연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읽는 과정에서 감독의 이력을 떠올리지 않는 정적인 분위기에 흥미를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감독은 강원도 태백의 풍광을 아름답게 담아냈지만 화려하지 않고 그저 자연이 주는 분위기를 그대로 전할 뿐이다. 시각적인 것보다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와 캐릭터들의 심경에 더 초점을 맞췄다.
이 작품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제20회 전북독립영화제 국내 경쟁-장편 부문에 진출하며 김지석 감독은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김지석 감독은 "'광고 감독답다'라는 말을 듣기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광고 감독의 흔적을 지우려 한 것은 아니고, 광고 감독으로 활동할 때부터 비주얼, 속도감, 편집 감각이 조금 더 있어야 한다는 많이 들었었다. 광고 감독들은 개성 있는 영상이 주목받는데 저는 그렇지 못하다고 쭉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내 취향은 이런 연출에 더 가까운 것 같다"라고 밝혔다.
김지석 감독이 이전의 커리어를 작품에서 지워냈다면, 이영음 감독은 데뷔작 '까만점'을 통해 광고보다 더 감각적인 화려한 비주얼을 선보였다. 이영음 감독은 LG그램의 글로벌 캠페인, 미샤, 나인위시스, SNP, 아이스프레이 등의 광고와 세븐틴 '마이마이'(MY MY), BDC '문 라이더'(Moon Rider), 다이아 '룩'(LOOK) 뮤직비디오 연출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이제 막 30대가 된 영화인이다.
영화 '까만점'은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다룬 영화로, 불법 촬영물에 유출된 피해자이자 세 친구인 주인공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담은 버디무비다. 내용만 보면 무겁게 전개될 것 같지만, 여대생들의 일상을 함께 녹이고 피해자 다움을 강조하지 않았다. 비비드 한 색감을 강조하고, 360도 화면이 돌아가며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 기존 영화에서 쉽게 쓰이지 않는 연출 방법이 자주 등장한다. '까만점'은 이영음 감독의 이전의 커리어가 밀도 높게 집결된 듯한 감상을 선사한다.
두 감독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던 이유는 탄탄한 연출 실력도 있지만 직접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 유효했다. 대중에게 좋은 평을 받은 두 감독은 모두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오랜만에 광고 감독 출신의 젊은 감독들의 등장은 충무로의 다양성에 단비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