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돈바스에 군대 안 보내"
우크라, 국가비상사태 선포키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반군 세력에 '독립국' 지위를 부여하고 파병 명령까지 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및 서방국가와의 협상 의지를 피력했다. 러시아가 사실상 돈바스 일대를 자국 관할로 포섭하자마자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23일(현지시각) AFP통신 등 외신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의회가 해외 파병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당장 (돈바스 지역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반군 세력 요청이 있을 경우 상호 원조 조약에 따라 '평화 유지' 목적의 파병이 가능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조국수호의 날' 기념 연설에선 "우리는 항상 직접적이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복잡한 국제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열려 있다"고도 했다.
민스크 협정에 담긴 돈바스 지역 반군 세력에 대한 '특별 지위' 부여가 마무리됐으니 이를 전제로 협상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푸틴 대통령이 "민스크 협정이 사라졌다"고 밝힌 것 역시 같은 맥락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지난 2015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중재하에 돈바스 지역 분쟁을 억제하기 위한 민스크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후 양국은 프랑스·독일과 함께 4자 협의체인 '노르망디 포맷'을 꾸려 지난 2019년 '슈타인마이어 공식(steinmeier formula)'을 도출하기도 했다. 민스크 협정 이행을 위한 구체적 행동 로드맵까지 마련한 셈이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강한 반발 등으로 실질적 이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로 관련 협의에 참여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반군 세력에 자치권 빌미를 줘 영토 보전을 포기했다'는 국내 비판에 시달려왔다.
이에 푸틴 대통령이 반군 세력에 대한 '독립국' 지위 부여로 승부수를 던진 뒤 서방국가들의 '인정'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은 "국익과 안보는 협상이 불가능하다"며 각종 전략무기를 열거하기도 했다. 서방국가들이 동유럽 지역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는 상황에서 군사역량을 과시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군대와 함대를 계속 개발·개선해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며 "러시아는 이미 다른 나라에는 없는 첨단무기들을 실전배치했다. 극초음속 무기 등 첨단 무기체계를 지속 개발하고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 사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를 확실히 지켜줄, 평등하고 분리될 수 없는 안보 체제 구축에 관한 러시아의 호소는 답이 없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 △나토 동진(東進) 금지 △러시아 국경 인접 지역에서의 공격 무기 배치 금지 △유럽 내 군사 인프라의 1997년 이전 수준 복귀 등을 '3가지 핵심적 요구'로 내세워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향해선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 인정 △나토 가입 포기 △부분적 비무장화 등의 3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관련 협상이 이뤄진다면 추가적 군사행동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실질적 전쟁 대비에 나서며 결사항전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지역을 제외한 전역에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키로 했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이날 3만 6000명 규모의 예비군 소집에 나섰으며, 의회는 민간인 총기 소지와 자기방어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외교 당국은 러시아 체류 자국민에게 즉각 러시아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러시아 위협에 따라 예비군을 소집하고 신설 국토방위여단을 훈련에 동원한다"며 "모든 민간인을 총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일상을 이어가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