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 등으로 잠재성장률 0%대 전망
당선인 4% 공약 구체적 실행방안 필요
신성장 촉진 위한 규제 개혁 필수
전문가 “여성·고령자 경제 참여 확대”
최근 우리나라 1인당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30∼2060년에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잠재 GDP는 한 나라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을 말한다. 잠재성장률은 이러한 잠재 GDP의 증가율을 의미한다.
OECD는 지난해 11월 2060년까지의 재정 전망 보고서에서 정책 대응 없이 현 상황이 유지된다고 가정한 ‘기본 시나리오(Baseline Scenario)’에서 한국의 2030~2060년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이 연간 0.8%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OECD는 잠재 GDP 성장률이 2000∼2007년 연간 3.8%에서 2007∼2020년 2.8%, 2020∼2030년 1.9%, 2030∼2060년 0.8% 등으로 계속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9월 실시한 한국은행이 조사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우리나라 지난해와 올해 잠재성장률이 2%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의 ‘코로나19를 감안한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 재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21∼2022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평균 2.0%로 나타났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이 상당폭 낮아진 데는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의 영향도 있지만,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대면서비스업 폐업, 고용 사정 악화, 서비스업 생산능력 저하 등이 주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잠재성장률 저하에 코로나19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한은 보고서와 조금 다르다. 코로나19 영향이 현재 잠재성장률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미래 잠재성장률 경우 ‘구조적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구조적 요인이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 내수 시장 위축, 규제·노동 개혁 지연 등이다. 이러한 부분들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잠재성장률 하락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결국 경제 활동 인구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일할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할 사람이 없으니 생산은 줄고 소비시장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임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게 치명적인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잠재성장률 목표치를 현 2%에서 4%로 2배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언급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생산성 저하, 민간 활력 둔화 등 만성적 저성장 구조로 가고 있는 한국 경제의 틀을 바꾸겠다는 의미다.
윤 당선인은 당선 직후인 지난 10일 “민간 중심의 경제로 전환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산층을 더욱 두껍게 할 것”이라며 “불필요한 규제를 해소하는 게, 민간 중심 경제로 전환하는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방법이다. 후보 시절 언급한 내용만으론 잠재성장률 4%대 성장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전문가들이 윤 당선인 공약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이유도 공약 달성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아직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성장률 4%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노동력은 줄었고, 자본의 절대량은 줄었거나 크게 늘지 않았다. 그다음은 생산성인데, 지금보다 얼마나 더 늘릴 수 있다는 답이나 실행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잠재성장률 4%는 쉽지 않은 숫자”라며 “향후 3년 정도 여유를 두고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봤을 때 1% 정도는 올라갈 수 있지만 이는 차기 정부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국회에서 모든 법안이 다 통과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 후보 공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규제를 과감히 풀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해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는 측면에서 보면 해볼 만하다”며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잠재성장률 4%는 쉽지는 않아도 가능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생산성 향상 등에 집중한다면 잠재성장률 4%라는 숫자는 실현 가능하다”며 “다만 4%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먼저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잠재성장률 제고 방안으로 인적 자본의 고도화와 여성·고령자 경제활동 참여 확대, 적극적인 이민자 유입 등을 제시했다. 더불어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외국 자본 투자 유치 노력 등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속적인 기술 혁신 및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해 연구개발(R&D) 투자 효율성 제고와 연구 인력 처우 개선 등이 필요할 것”이라며 “신성장 산업 등장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 개혁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적극 추진하는 사회적 문화의 정착도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