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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해?] 거친 누아르와 정우가 만났을 때…더 타오른 '뜨거운 피'


입력 2022.03.23 11:32 수정 2022.03.23 11:32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23일 개봉

김언수 작가의 소설 '뜨거운 피'가 메가폰을 처음 잡은 소설가 천명관 감독의 손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부산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 희수(정우 분)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밑바닥 건달들의 생존 싸움을 그린다'라는 줄거리 한 줄은, 우리가 지금까지 본 누아르 영화의 치열한 영역 전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뜨거운 피'는 이 예측을 아쉽게도 피해가진 않는다. 다만 소설 속에 쓰인 표현이나 은유적이고 시적인 대사들이 거친 남자들의 숨결 사이에서 흩어지는 것이 매력적이다. 욕이나 거친 사투리들이 난무하지만 그 안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인상적인 대사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장편 소설 '고래', '고령화 가족' 등으로 문단에서 사랑받고 있는 천명관 작가는 첫 장편 연출이라는 데뷔의 우려를, 자신의 장기를 살린 섬세한 작업 방식으로 답했다.


구암에서 만리징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손영감은 뒷방 노인네처럼 굴지만 사실 구암을 오랜 시간 평정한 인물이다. 희수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구암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손영감 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을 둘러보니 손에 잡히는 것도, 이뤄낸 것도 없는 일상들 뿐이다. 마침 친하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성인오락실 사업을 동업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희수는 그렇게 손영감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오랜 시간 정을 쌓아온 인숙과 살림을 차린다. 인숙에게는 희수를 잘 따르는 20대 아들 아미(이홍내 분)도 있어, 단란한 가족을 이뤘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희수의 이 안락한 행복과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구암을 장악하고 싶어 하는 영도파의 실세이자 희수의 절친 철진(지승현 분)이 등장하고부터 구암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된다.


영화는 누아르 장르의 남자 주인공이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모습이나, 정의를 위한 복수 등의 전개를 따라가지 않는다.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 생활밀착형 건달들이다. 이들에게 구암을 지키려는 대의는 없다. 그저 내가 먹고살아야 하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벼랑 끝에서 버티는 마음들이다. 투박하지만 소박한 것들 투성이다.


'뜨거운 피'는 정우의 원톱 영화로 희수의 초점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희수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사투리를 쓰는 거친 남성이라는 점에서 그의 전작 '바람' '응답하라 1988' 캐릭터를 자가복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정우는 잘하는 연기를 더욱 깊고 진하게 우려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잘하는 연기를 더 잘 해낸 배우에게 던질 돌은 없다.


이외에도 최무성, 이홍내, 지승현 등 희수의 주변 인물들을 연기한 많은 배우들이 연기들이 일품이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연기로 거슬림을 주는 배우가 없다.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차별점을 찾으려 한 천명관 감독과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관람할 가치가 있다. 23일 개봉. 러닝타임 120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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