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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캐릭터탐구㉗] 남금필, 미워할 수 없는 느림보(아직 최선)


입력 2022.03.27 09:16 수정 2022.03.27 09:1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자발적 백수, 남금필 ⓒ이하 티빙 제공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연출 임태우, 극본 박희권·박은영)이 지난 25일 12부작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안다, 언제든 꺼내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OTT, 인터넷TV의 장점이다. 그래도 아쉽다. 한 주 한 주를 설레며 기다리던 재미 하나가 없어진 것이다.


실감 가족 3대. 할아버지 남동진(오른쪽), 아들 금필, 손주 상아(가운데) ⓒ

세상 구석구석에서 뽐내지 않고 티도 내지 않고 묵묵히 세상을 굴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요란하지 않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관점을 되돌아보게 했던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분명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데도(가정폭력과 트렌스젠더와 노동문제와 이혼과 1인 가구의 고독과 조건만남과 워라벨까지) 좋은 배우들의 살갑고 실감 나는 연기 덕에 심각하지 않게, 심지어 ‘아니, 어쩜 연기를 이렇게들 잘한대’ 감탄하며 깔깔 웃었던 드라마가 더 이상 새로운 에피소드를 내지 않는다.


주인공 남금필(박해준 분)을 비롯해 착하기만 한 인물도 없고, 나쁘기만 한 악인도 없고,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 대단한 성공도 없고, 극적 해피엔딩도 없다. 최고의 해피엔딩이 금필의 아버지 남경수(김갑수 분)와 107동 동대표 봉연자(박지영 분)가 인생 황혼에 맞이한 꿀 떨어지는 연애다. 등장인물 모두가 오늘도 어딘가에서 행복과 절망이 함께인 채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의 인생이 우리를 위로한다. 아직도 터널 속인 상황인 대로, 이제 좀 볕이 들기 시작한 대로,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 힘을 준다. 12부작의 마지막에서 남금필은 또 다른 남금필, 또 하나의 속마음과 대화를 하는데 거기에서 전체의 주제라 할 만한 말을 만날 수 있다.


원대한 희망 없이도 기운을 내는, 나는야 대기만성형 남금필 ⓒ

남금필 또 다른 마음의 현신(이하 현신): 이번에도 낙방이네. 언제까지 할 거야, 만화.

남금필(이하 금필): 나는 말이야, 원대한 희망을 ‘갖지’ 않기로 했어. 원대한 희망 없이도 기운을 내는 이런 나 같은 사람을, 그런 말들을 하지, 대기만성형이다.

현신: 대기만성하다 죽을 것 같아. 올해 나이가 ‘대체’ 몇 살이야.

금필: 도전하는 데 뭐 기약이 있겠어.

현신: 있어야 ‘되지’ 않을까.

금필: 왜?

현신: 넌 왜?

금필: 음…,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현신: 누굴?

금필: 나를. 으하하하하하.


작가와 연출은 우리에게 말한다. “원대한 희망 없이도 기운을 내라”고. 사실 정말 어려운 말이지만, 실천만 할 수 있다면 마음의 평화와 일상에 행복이 깃들 수 있는 인생 해답이다. 도전에 기한을 두지 말고 언제까지나 나를 대기만성형으로 믿어 주며, 기운 내서 살아볼 마음을 먹고 싶게 한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속일 수 없어서, 나의 부족함과 나의 비겁함을 세상 사람 다 몰라도 나는 알기에 자괴감과 자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데, 언제까지나 내게 실망하지 않을 묘수를 일러준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쓸쓸한 결론이다. 세상이 오죽 우리 편이 아니면, 하면 다 되는 세상이 아니면, 이런 제언을 할까. 그래도 어느 드라마보다 세상에 대해, 시청자에게 솔직한 결론 아닌가.


수명 300년 남금필, 알고보면 10대 소년 ⓒ

남금필은 제목처럼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아직 꿈꾸지 않아서 성공을 못 한 인물이 아니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해 나이 오십을 바라보면서도 아버지의 잔소리와 보살핌 속에 살고 딸에게 변변히 아빠 노릇도 못 하지만, 열심히 살아왔고 오늘도 웹툰 작가 데뷔를 꿈꾸며 열심히 살고 있다.


드라마는 이제 최선을 다하고, 이제 꿈을 꾸기만 하면 확 달라지는 인생을 보여주지 않는다. 치열하게 경험하고 진심으로 그리지만 계속 낙방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만화가 지망생의 꿈을 간직한 남금필을 보여준다. 원대한 희망 없이도 기운을 내서 오늘을 또 살아나가는, 도대체 큰 그릇으로 완성될 그 날이 언제인지 보이지 않는데도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는 남금필을 보여준다. 이렇게 거센 세파에 맷집 좋은 사람이 또 있을까.


남금필을 보면 거북이가 보인다. 비바람이 불든 눈보라가 치든 묵묵히 기어가는 거북이. 느려 보일지 몰라도 거북이로서는 게으름 피우는 속도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십도 안 된 남금필 말대로 그의 수명은 300년이어서, 100년 사는 인생에 비춰보면 이제 세상에 출사표를 내려 준비하는 10대 소년에 불과한지 모르겠다.


느리게 그러나 깊이 우리 곁을 파고드는 배우 박해준 ⓒ

그러니 마흔 넘도록 철들지 않은 모질이, 인생 느림보 취급은 거두자. 평생을 함께할 친구 임임찬(이승준 분)도 있고, 누군가 잘못을 지적하면 인정할 줄도 알고,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서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신해철 형의 명언도 아는 남금필이다.


성공의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행복을 수확할 줄 아는 남금필, 영원히 만화가 지망생이어도 행복할 줄 아는 남금필, 미워할 수 없을뿐더러 사랑할 수밖에 없는 로망 아닌가.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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