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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지배구조 개편 큰 그림…모비스가 핵심 아닐 수도?


입력 2022.04.20 06:00 수정 2022.04.19 18:15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정 회장 "모범답안 없다…사업 변화 보면서 진행"

로봇 시장 본격 개막시 보스턴 다이내믹스 구조개편 키 될 수도

현대차‧기아 중고차 사업 진출에 따른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 상승 주목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 제네시스하우스에서 진행한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정답이나 모법 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개편과 관련, 그동안 시장에서 예상됐던 시나리오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지난 2018년 시도했다 철회했던 개편 작업이 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정 회장은 미국 방문 일정 중이었던 지난 13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진행한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올해 중 지배구조 개편을 다시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정답이나 모범답안은 없다’는 취지의 답변과 함께 향후 그룹의 사업구조 변화를 보면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업적으로 많이 변화하고 있고, 새로운 사업이 들어가고, 또 줄어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서 하는 게 저희 내부적으로 좋다고 판단을 하고 있다”면서 “그런 저희 페이스에 맞춰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큰 틀에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기아→현대모비스의 모-자회사 관계를 해소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식이 될 것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관건은 0.32%에 불과한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대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2018년 개편작업 당시에는 정 회장이 최대주주(당시 지분율 23.29%, 현재 19.99%)로 있는 현대글로비스와의 분할합병을 시도하다 시장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분할합병 방안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만큼, 지배구조 개편이 다시 시도된다면 정 회장이 가진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토에버 등 다른 계열사들의 지분을 활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취득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었다.


어떤 방법을 택하건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구조 외에 다른 형태를 생각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정답이나 모법 답안이 없다’는 정 회장의 언급은 향후 지배구조 개편이 시장의 정설을 벗어나는 방식, 즉 현대모비스가 지배구조개편의 핵심이 되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정 회장 20% 지분 가진 보스턴 다이내믹스, 장기적으로 그룹 중심 축 부상 가능성


‘사업적 변화’나 ‘신사업’이라는 언급 역시 의미심장하다. 현대차그룹은 지금 모빌리티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맞서 전면적인 사업적 변화에 나서고 있다.


정 회장은 그동안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의 50%는 자동차, 30%는 UAM,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는 구상을 밝혀왔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의 핵심 사업구조는 완성차 제조사인 현대차와 기아가 최전방에 서고, 현대모비스가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다른 사업 분야로 분산되거나, 궁극적으로는 중심축이 옮겨 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로보틱스 비전 발표를 위해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위로 등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기존 사업구조를 바탕으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의 지배구조를 만들었다가 향후 그룹의 핵심 사업이 완성차가 아닌 다른 분야로 옮겨간다면 곁가지가 몸통보다 더 커 버리는 기형적 구조가 될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이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 하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무리한 스케줄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정 회장의 말대로 그룹의 사업 구조 변화를 지켜보며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잡는 게 합리적이다.


장기적으로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공동 투자한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지배구조 개편의 열쇠가 될 수 있다.


4족보행로봇 스팟과 2족보행로봇 아틀라스 등 가장 선도적인 로보틱스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향후 물류 등 산업용 로봇 단계를 거쳐 개인용 로봇 시장 개막과 함께 대량생산체제에 돌입한다면 현대차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당시 정 회장은 20%의 지분을 확보했고,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등 현대차그룹이 총 80%를 보유했다. 나머지 20%는 기존 최대주주였던 소프트뱅크가 갖고 있다.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임을 감안하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지배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로봇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전제 하에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R&D(연구개발) 역량과 현대차의 양산능력을 접목하는 차원에서 두 회사를 합병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현대차에 대한 정 회장의 지분율이 높아지면, 현대차를 정점으로 하고 현대모비스→현대차의 출자 고리를 끊어낸 뒤 현대모비스를 기아의 자회사로 두는 방식도 가능해진다. 이 경우 현대건설(최대주주 현대차)과 현대제철(최대주주 기아) 등 다른 계열사들과의 지분 관계도 한층 간결하게 정리된다.


중고차 사업 확대로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 상승시 정 회장 운신 폭 넓어져


좀 더 가까운 미래로 시기를 한정하면 현대차와 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변수가 될 수 있다. 두 회사의 중고차 사업과 연계해 현대글로비스 기업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최근 중고차 사업방향을 공개하며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상생 차원에서 시정 점유율을 자체적으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2.5%, 2023년 3.6%, 2024년 5.1% 등으로, 기아는 올해 1.9%, 2023년 2.6%, 2024년 3.7%의 중고차 시장 점유율 제한을 준수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기아는 국내 신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닌 만큼 중고차 사업 진출 이후 트레이드 인(중고차 매입 연계 신차 보상판매) 등의 방식으로 막대한 규모의 중고차를 확보할 수 있다. 이들 중 5년 10만km 이내의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 성능검사와 수리를 거쳐 인증중고차로 판매하고 나머지 물량은 경매 등으로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하게 된다.


인증중고차 기준에 적합한 차량이더라도 중고차 시장 점유율 제한을 초과하는 물량은 경매로 기존 매매업계에 넘길 수밖에 없다.


서울 성동구 장안평 자동차매매시장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국내 최대 중고차 경매 업체는 다름 아닌 현대글로비스다. 경기도 분당과 시화, 경남 양산에 중고차 경매장을 운영하면서 지난해 중고차 경매장 출품 대수 11만7000대를 기록했다.


현대차‧기아로부터 매년 수십만 대의 중고차가 공급된다면 현대글로비스의 중고차 경매 사업도 대폭 확장된다. 중고차 경매 외에도 현대차‧기아의 트레이드 인 판매와 연계한 다양한 사업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상승할 경우 이 회사 지분 19.99%를 보유한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4년 전과 비교해 월등히 높아진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현대모비스와의 분할합병을 재추진할 수도 있고,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실탄’ 삼아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것도 한층 수월해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사업적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개편도 계열사별 사업 비중 변화에 맞춰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많은 시간이 주어질수록 더 안정된 지배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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