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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볼 빨간 동식이형’이 유도천재였다고? (ft.영상링크-당몰야)


입력 2022.05.14 10:44 수정 2022.05.14 10:44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 데일리안

이번에 알아볼 전설의 레전드는요. ‘비운의 유도 천재’로 이름을 알렸던 윤동식입니다.


현재 ‘뭉쳐야 찬다 시즌2’에서 활약 중인 윤동식은 축구 예능에 앞서 열린 ‘뭉쳐야 쏜다’에서 먼저 농구 선수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예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그는 허당미와 큰 웃음을 주는 순수함으로 ‘볼 빨간 동식이형’으로 불리며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섭니다.


농구의 ‘농’자도 몰랐지만 상대를 끈질기게 쫓아가 괴롭히는 파이터 기질을 발휘하며 악착 같은 수비력을 선보였던 윤동식은 번외로 열렸던 축구 경기에서 오히려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발휘하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농구할 때와는 달리 에이스 본능을 드러낸 그는 향후 안정환 감독과 이동국 코치가 이끄는 ‘뭉쳐야 한다 시즌2 어쩌다벤져스 팀’에 전격 합류하게 됩니다.


농구 팀 ‘상암불낙스’ 소속으로 먼저 활약하게 됐지만 축구가 더 하고 싶었던 그는 개그맨 정형돈에게 은밀히 전화를 걸어 ‘뭉처야 찬다’ 섭외를 부탁하기도 했다죠.


이제 우리 나이로 50이 넘은 그는 체력과 기술 등에서 젊은 후배 선수들에게 밀리며 어쩌다벤져스에서 많은 출전 시간을 얻지는 못하고 있지만 경기 막판 조커로 활약하며 존재감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기본적인 축구 룰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축구 실력에 의구심을 더했지만 안정환과 이동국의 집중 조련 속에 점차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고, 감격의 데뷔골까지 성공시키며 감동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윤동식. ⓒ JTBC

축구를 할 때는 해맑은 표정으로 허당미를 발산하고 있는 윤동식이 운동선수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사실 유도가 먼저였습니다.


그는 올드팬이라면 다 아는 1990년대 실력이 출중했던 유도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1993년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국제 대회를 휩쓸며 무려 47연승 행진을 내달렸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엎어치기의 달인’이었던 전기영도 당시 윤동식과 상대 전적은 9승 11패로 밀렸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당시에는 남자 78kg 결승에서 일본의 호리코시를 상대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당시 홈에서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던 일본은 유도에서 ‘전 체급 우승’이라는 야심을 품었지만 윤동식에 의해 일찌감치 목표 달성이 좌절됩니다.


출중한 실력을 갖췄던 윤동식은 가장 불운했던 유도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47연승을 달릴 정도로 적수가 없었지만 그는 국내 유도계의 파벌로 인해 올림픽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못했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1997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음에도 올림픽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유도 명문인 용인대가 아닌 한양대 출신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윤동식은 대표팀 선발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었죠.


특히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대표 선발전에서는 조인철과 판정시비를 빚는 우여곡절 끝에 패했는데 당시 윤동식은 판정에 승복하지 못하면서 한동안 유도 매트를 떠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현역시절 윤동식. ⓒ 연합뉴스

파벌의 최대 피해자였지만 윤동식은 방송에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 ‘배구 월드스타’ 김세진과 함께 자신을 한양대의 3대 운동선수로 꼽는 등 출신 학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김세진은 당시 윤동식에 대해 “인기가 정말 많았고 잘 생겼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동식은 아직까지 미혼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예능에서 볼 수 있었던 윤동식의 농구나 축구 실력이 수준급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악착 같이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근성을 보여줬는데 이는 현역 시절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윤동식의 올림픽 무대 도전은 계속됐습니다. 그는 한 체급 올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도전했지만 팀 후배 유성연의 벽에 가로막혀 또 한 번 꿈이 좌절됩니다.


당시 유도 선수로서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도전했던 윤동식은 연장전에서 체력이 떨어지며 통한의 한판승을 내주게 됩니다. 하지만 윤동식은 패배에도 후배 유성연을 위해 훈련 파트너를 자처하며 금메달을 돕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시드니올림픽 출전 좌절 이후 2001년 유도에서 은퇴한 윤동식은 미련이 남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노렸지만 그마저도 좌절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윤동식. ⓒ 로드FC

유도인으로서 끝내 올림픽 출전 꿈을 이루지 못한 윤동식은 2005년 3월 돌연 종합격투기 진출을 선언하고 Pride와 계약을 맺습니다.


종합격투기 진출 초반 성적은 처참했습니다. 데뷔전 상대였던 사쿠라바 가즈시에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1회 38초 만에 KO패를 당한 윤동식은 데뷔전 패배를 시작으로 프라이드무대에서 내리 4연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윤동식은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007년 6월 3일 미국 LA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열린 K-1 다이너마이트 미국대회에서 ‘검은 돌풍’ 멜빈 마누프를 암바로 제압하며 4전5기 끝에, 종합격투기 데뷔 3년 만에 감격의 첫 승을 기록합니다.


이후 로드FC에서 격투기 활동을 이어간 그는 지난해 농구예능 ‘뭉쳐야 쏜다’에서 고정으로 출연하며 존재감을 알렸고, 그가 걸어온 유도와 격투기의 길도 새삼 주목을 받게 됩니다.


특히 예능에서는 유도와 격투기에서 보여준 강인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부끄럼 많은 수줍은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현역 시절에는 ‘비운의 유도 스타’라는 꼬리표를 때지 못한 그가 예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유튜브 당몰야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3iernDcqr4I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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