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세수 추계 능력 부족 인정
민·관 전문가 중심 제도 개선 밝혀
세수 추계 위원회 민간 전문가 임명
전문가 “정보 자체, 투명 공개 필요”
초과 세수 예측 오류로 체면을 구긴 기획재정부가 결국 민간 손을 빌려 자존심 회복에 나서기로 했다. 공무원들이 정보를 사실상 독점하는 현재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 전문가와 함께 연구·분석해 세수 추계 정확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인데, 전문가들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급선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세수 추계 오류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기재부 기자실을 방문해 “기재부가 과거에 (세수 추계) 오차를 냈던 부분까지 제가 그 짐을 안고 기재부를 끌고 가게 됐다”며 “그래서 세수 추계가 정확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국민, 언론, 국회에서 비판이 있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집단으로 지혜와 전문성을 모아도 (세수 추계) 결과가 100% 맞는다는 보장은 없어 사후적으로는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오차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동안 기재부 세제실 등 내부 공무원을 중심으로 운영해 온 세수 추계 방식을 개편해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하는 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 부총리는 “세수를 추계하는 일종의 위원회가 지금까지는 세제실장 중심, 기재부 내부 중심이었는데 이제 민간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하려 한다”며 “조세재정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세청 등 여러 전문기관과 (세수 추계를) 함께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국회 예산정책처도 추계를 하고 늘 (세수를) 보는 분들이 있어서 거기 전문가도 같이 조율해 주면 좋겠다”면서 “다만 국회가 정부 작업에 선뜻 참여해줄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순 없지만 그런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 부총리가 이런 계획을 내놓은 데는 정부가 세수 추계 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지 두 달여 만에 같은 문제가 재발하면서 ‘재정 쿠데타’, ‘기재부 무능론’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지난 2월 ‘세수 오차 원인분석 및 세제 업무 개선방안’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기재부는 현행 추계시스템이 ▲추계모형의 한계 ▲의사결정 프로세스 문제 ▲이상징후 대응체계 미흡 ▲사후평가·피드백 부족 등의 한계를 노출했다며 세수 추계 공식(메커니즘)을 ▲모형설계 ▲추계절차 ▲세수 점검 ▲사후평가 등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직과 제도를 모두 바꾼 지 두 달여 만에 다시 53조원이 넘는 세수 오차가 다시 발생했다. 이처럼 기재부는 지난 1년 사이 100조원이 넘는 재정 추계 오류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체면을 구겨 왔다.
민간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추 부총리 계획에 대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연이은 세수 추계 실패에 대해 관련 자료를 기재부가 사실상 독점하면서 내부 공무원들의 분석과 판단에만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 왔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현재 가장 문제는 세수 추계를 전문성이 떨어지는 직업공무원들이 한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정보를 독점하며 민간보다 앞서간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투명하게 공개하고 전문가를 참여시켜 데이터를 축적하고 공개 검증하는 방식으로 오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기재부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위원으로 참여 중인 한 전문가는 “이번 추 부총리 발언은 기재부가 스스로 독선과 아집을 내려놓겠다는 의지인 만큼 높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실 정부가 세수 추계 문제를 국가 기밀 다루듯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위원 참여에서 더 나아가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해 세수 추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분석·예측해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하다”며 “그동안 정보 독점으로 (세수 추계 오류) 문제가 반복된 만큼 앞으로는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려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전문가 참여와 함께 현 세수 추계 전망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세수 전망에 오차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규모가 크게 자주 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세입 전망을 예산안에 포함하지 않는 미국 방식으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출신 전직 관료는 “세계적으로 대내외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앞으로도 세수 전망의 오차 범위가 더 커질 수 있다”며 “정부 경제 전망을 1년에 두 번 나눠서 발표하듯이 세입 전망도 1년에 여러 차례 하는 방안을 고민해볼만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