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캐릭터’라는 말이 있다. 말도 안 되게 뭐든 잘하고 많은 걸 갖춘 인물이다. 드라마 ‘클리닝 업’(연출 윤성식, 극본 최경미)의 주연 배우들은 ‘사기 캐릭터’이다.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거래로 시작해 불법 도청과 갖은 도둑질을 통한 주식 사기를 쳐서 사기 캐릭터가 아니다. 분명 주인공, 극중 등장인물이 아니라 주연 배우들이라고 했다. 배우들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모든 연기가 되든 ‘사기 캐릭터’라는 뜻이다.
배우 염정아, 김재화, 전소미. 배우는 연기를 잘할 때 제일 예뻐 보이고 제일 잘생겨 보이는 게 진리인가 보다. ‘미녀 삼총사’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세 배우는 물 오른 연기를 과시하고 있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며, 감성과 육신을 쏟아부어 어용미, 맹수자, 안인경이라는 베스티드 증권사 ‘미화원 3인방’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연기에도 태권도, 유도 등처럼 단 수가 있을까. 세 배우를 합하면 ‘연기 100단’이다. 숫자 100이기도 하지만, ‘白(온 백)’, 부족함 없이 온전한 연기를 펼쳤다. 혼자일 때도 좋지만 셋이 완전체로 결합하면 정말이지 보는 것만으로도 어깨춤이 덩실 나온다.
드라마를 시청하게 된 건 재미있다는 입소문 덕분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밤 10시에 시작했다가 멈출 수 없는 재미에 6회까지 달리느라 새벽이 됐다. 몰아 볼 때는 신이 났는데 그다음부턴 한 회, 한 회 토·일 밤 10시 30분 방영을 기다리느라 애가 탄다.
염-김-전 삼총사의 맛깔난 연기는 큰 기쁨을 주지만, 극 초반에는 ‘마음의 숙제’를 내기도 했다. 세상의 바닥을 청소하는 미화원, 저마다의 애환을 지닌 일상을 보며 분명 불법임을 알면서도 그들의 주식 사기 행각을 응원하는 나를 발견했다. 사회적 약자, 경제적 개미의 반전과 도약이면 어떤 방법과 수단이어도 되는 건 아닌데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설마, 안방극장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인데 결국엔 이 도덕과 불법의 문제를 해결할 거야’라는 믿음으로 숙제를 대신했다.
괜스레 애먼 삼총사의 연기를 탓했다. 너무 잘하니까 자꾸 응원하게 되잖아요! 맞다, 잘해도 너무 잘한다. 회사 옥상에 모여 히히, 호호 웃어대고 방방 뛰며 춤출 때면 장마당에서 만난 사당패의 공연마냥 신명이 난다. 각시탈, 부네탈, 이매탈을 쓰고 한 판 노는 세 배우다.
자신이 스타인 줄 모르고 연기 잘하는 줄도 모르고 언제나 신인처럼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자못 감동을 주는 배우 염정아는 그간 쌓아온 내공을 맘껏 발산하고 있다. 눈물 연기도 웃음 연기도, 억척 생활인 연기도 우아한 여인 연기도 한 회차 내에서 시시각각 어용미에 착 붙인다. 변기 하나를 닦아도 껌을 떼어도 진심 열심이다.
기대를 저버리는 적 없는 옹골찬 배우 김재화는 이번에야 비로소 ‘언제 나오나’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분량 아래 우리가 그의 연기를 갈증 없이 즐길 수 있다. 김재화의 주연 등극이 내 일인 것처럼 반가운 것은 공포에서 코미디, 어느 장르 어떤 캐릭터에 갖다 놓아도 맛깔나게 연기하는 실력파 배우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전소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기 잘하는 배우인 줄 몰랐다. 기대 이상인 것도 놀랍고, 염정아와 김재화라는 베테랑 배우들 곁에서 찰떡 조합을 이뤄내는 건 더 놀랍다. 준비된 자는 기회가 오면 빛을 발하는데, 예능에서의 배짱과 유머도 한몫하며 배우 전소미를 환하게 밝혔다. 인공 미인이 많은 요즘 자연미를 유지한 것도 배우로서의 장점을 보탠다.
미녀 삼총사 위주로 소개했지만 ‘클리닝 업’에는 좋은 배우들이 많다. 2대8 가르마에 다채로운 표정, 코믹연기라면 으뜸가는 김인권이 팽팽한 사기극에 이완 작용을 톡톡히 한다. 김재화와 한 쌍을 이루면 천하무적 코믹 커플이다.
염정아 곁의 이무생(이영신 역), 이 배우의 ‘낭만’은 미덕이 크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의 상처를 조용히 보듬든, ‘서른, 아홉’에서 ‘죽일 놈’ 짓을 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게 만들든, 여자 주인공과 짝을 이루는 순간 그 주변엔 서정적 낭만이 깃든다. 소위 불법 작전을 위해 만난 오동미임에도 낭만이 싹틀 거라는 기대를 이영신에게 걸게 되는 이유다.
염정아 곁에는 두 명의 남자가 더 있는데 사채업자 역의 윤경호, 전 남편 역의 김태우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 이어 다시 만난 염정아와 윤경호는 원수 같은 사이면서도 공생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오묘한 케미를 생성한다. 김태우는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냉정한 전 남편이자 따뜻한 아빠가 동시에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을 편안하게 소화했다.
향후가 주목되는 나인우,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장신영, 예쁘게 자란 갈소원, 좀 더 자주 보고 싶은 박지아, 얄미운 캐릭터를 맛있게 표현 중인 고인범과 윤진호 등 배역 크기 상관없이 좋은 배우들이 힘을 보태 드라마가 탄탄하다. 어느새 일주일이 갔다. 오늘 밤이면 다시 이 모든 배우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