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곁에서 지켜본 듯 '만행' 묘사
실제로는 공개되지도 않은 '자백'이
근거의 전부…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러다간 의열사도 북한 넘겨줄 판
북한 어민 강제 북송 의혹을 둘러싼 전·현 정권 간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전 정권에서는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 예비역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의원에 이어 마침내 국가안보실장이었던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이 직접 나섰다. 현 정권에서도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직접 나서서 일일이 전 정권 주장에 반박을 이어가고 있다.
정의용 전 장관이 17일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배포한 자료를 보면 강제 북송한 북한 어민의 '만행'이 마치 정 전 장관이 바로 곁에서 지켜본 듯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쪽배'에서 어로 작업을 하고 있던 3명이 선장을 포함한 16명을 '하룻밤 새에 모두 살해'하고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데 이어 범행도구를 포함한 모든 증거물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핏자국을 바닷물로 씻어낸 뒤 페인트칠까지 새로 해서 증거를 완벽하게 인멸했다고 한다.
'증거가 완벽하게 인멸' 됐는데 정 전 장관은 어떻게 이들의 '흉악'한 범행 상황을 마치 눈앞에서 본 듯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바다로 던져서 없어졌다는 범행도구 '망치'와 '도끼'는 어떻게 특정했을까. 지독히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기는 것으로 악명 높은 혈흔을 하룻밤 새에 바닷물로 씻어서 지우는 것은 가능할까. 페인트는 어디에 준비돼 있었기에 페인트칠까지 새로 해서 증거를 인멸할 수 있었을까.
정의용 전 장관이 강제북송을 당한 북한 어민 3명이 16명을 살해하는 모습을 담은 CCTV를 본 것도 아닐 것이다. 3명을 데리고 '쪽배'로 나아가 현장검증을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윤건영 의원도, 김병주 의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치 눈앞에서 그려낸 듯 생생하게 묘사한 '범행'의 근거는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합동 신문 과정에서의 자백이 전부다. 정의용 전 장관 스스로도 "자백만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면서도, 이들의 '자백'을 철석같이 믿으면서 "파렴치하고 잔인한 흉악범"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들은 강제 북송된 뒤 김정은 집단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것인가.
북한 어민 강제 북송 의혹에 있어서 당시 청와대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어떠한 정보를 직간접적으로 전달받았는지는 앞으로 밝혀져야할 과제다. 직접적인 정보 거래가 없었다고 해도 북한 당국의 시각에 따라 가공될 정보를 '입수한 첩보' 근거로 삼아 월남한 북한 어민들을 신문하고, 입맛에 맞는 자백을 받아내고, 강제 북송의 형식으로 북한 당국에 인계해 목숨을 잃게끔 만들었다면 이것이 정당한지 엄중히 살펴야 한다.
우리 경계로 넘어와 우리가 신병을 확보하게 된 북한 주민 - 한반도 전역을 영토로 규정한 헌법 제3조에 따라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 - 을 북한의 시각에 의한 정보를 바탕으로 "흉악범"으로 재단해 북송하게 된다면, 앞으로 김정은을 처단하고 내려온 이는 내란목적살인죄, 금수산기념궁전을 폭파하고 내려온 이는 공익건조물파괴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라며 북한 당국에 넘겨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을까 겁이 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