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유가증권 1년 새 6조7천억↓
글로벌 금융권 불안에 불확실성↑
국내 생명보험사의 해외투자 규모가 1년 새 7조원 가까이 쪼그라들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작은 수준까지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 완화 덕에 잠시 투자가 잠시 활기를 띄는 듯 했지만,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다시 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자산운용 수익률을 둘러싼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생명보험업계의 주름살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17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국내 23개 생보사의 외화 유가증권 자산은 총 92조51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 줄었다. 액수로 따지면 6조7082억원 줄어든 것으로, 2018년 7월 말(91조6653억원) 이후 최소치다.
주요 생보사별로 보면 우선 한화생명의 외화 유가증권 보유량이 15조2307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6.4% 감소했다. 교보생명의 해당 금액도 15조2812억원으로 13.8% 줄었다. 3대 생보사 중에서는 삼성생명의 외화 유가증권 자산만 19조364억원으로 다소(0.8%) 늘었지만, 증가폭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생보업계의 글로벌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배경에는 대내외 금융시장을 뒤덮은 먹구름이 자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긴축 강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코로나19 연착륙 과정에서의 혼란 등 금융권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특히 보험사에 대한 해외투자 규제가 완화된 직후 이처럼 주변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5월 국회에서는 보험사가 운용할 수 있는 해외자산 비율을 이전보다 크게 늘릴 수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보험사의 해외자산 운용 비율을 총자산의 30%에서 50%로, 특별계정은 총자산의 20%에서 50%로 각각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힘입어 생보업계의 해외투자는 잠시나마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였다. 지난해 말 생보업계의 외화 유가증권 자산은 103조6140억원으로, 관련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인 같은 해 상반기 말보다 2.7%(2조8001억원)이나 늘어난 바 있다.
생보사들이 자산운용 전반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와중 해외투자마저 발목이 잡힌 현실은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실제로 올해 5월 말 생보업계의 평균 운용자산이익률은 3.2%로 지난해 말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했음에도 그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운용자산이익률은 보험사가 보유 자산을 현금이나 예금, 부동산 등에 투자해 올린 성과 지표로, 이 수치가 낮아질수록 자산운용 능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의 도입이 다가오면서 생보사로서는 투자 성적 개선이 시급한 입장이다. 내년부터 IFRS17이 시행되면 보험사의 부채 평가 기준이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되면서, 보험금 적립 부담은 한층 커지게 된다. 생보사들이 투자 수익률 끌어올리기에 골몰해 온 이유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 때 IFRS17에 대한 대응책으로 여겨졌던 해외투자가 예기치 못한 각종 악재에 직면하면서 생보사 자산운용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