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런 사람과 토론…정말 같잖다"
李 "검찰 없는 죄 만들어 감옥 갈듯"
尹-李, 서로의 인생역정 전혀 달라
극과 극의 인식 차이 속 '전면전'
"이런 사람하고 토론을 해야겠느냐. 정말 같잖다"는 말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경북선대위 출범식 연설 발언이다. "이번에 지면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 갈 것 같다"는 말은 이재명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올해 1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연설에서의 발언이다.
극과 극의 인식 차이를 보이는 두 사람이 '대선 연장전'에 또 돌입했다. 3·9 대선, 6·1 지방선거에 이어 3라운드째다. 발단은 8·28 전당대회를 통한 이재명 대표의 선출이고, 전개는 8일 있었던 검찰의 이 대표 기소다. 상대가 '죄가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던 윤석열 대통령과, 본인은 '죄가 없다'는 확신이 분명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로서 전면전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화성에서 온 사람'과 '금성에서 온 사람'처럼 자라난 환경과 사회생활·인생역정이 전혀 달라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한 여건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나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로는 도중에 1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검사의 한길을 걸었다. 변호사도 '범죄자를 변호하는 게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뒀다고 하니 천생 검사다. 30년 가까이 범죄 혐의자를 수사하고 기소해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데 전념했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소년공으로 일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장학금과 생활비를 받는 재학 중에 반드시 사법시험에 합격해야만 하는 형편이었고, 실제로 1986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두 차례 낙선 끝에 2010년 성남시장 당선, 2014년 재선,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에 이어 지난해에는 집권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등 단기간에 극적인 사회적 위상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공공의료원 주민발의조례가 성남시의회에서 심의보류된 것에 물리력으로 반발하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수 차례의 전과를 쌓았다. 검찰에 대해 감정이 좋을 수가 없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을 바라보는 속내는 지난 2020년 2월 24일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올라온 '새벽감성 SNS'에서 읽을 수 있다. 당시 이 대표는 항소심에서 경기도지사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300만 원 벌금형을 받고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올린 SNS에서 이 대표는 "지사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정치적 사형'은 두렵지 않다"면서도 "인생의 황혼녘에서 '경제적 사형'이 두렵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전재산을 다 내고도 한 생을 더 살며 벌어도 못 다 갚을 선거비용 반환채무와 그로 인한 신용불량자의 삶이 나를 기다린다"며 "거짓 조각으로 진실을 조립한 검찰이 나를 사형장으로 끌고왔다"고 불안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급격한 신분 상승을 이룬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이 나락으로 다시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밤잠도 못 이루지 않겠느냐. 이재명 대표가 그런 케이스"라며 "검찰이 때만 되면 자신을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떨어뜨리려 한다는 생각에 내심 분노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원래 다양한 출신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온갖 경로를 통해 공천을 받고 선거를 이겨 모이는 곳이다. 정치권에서의 의정활동과 이합집산을 겪으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쌓는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수(選數)가 '0선'이다. 검찰총장을 그만 둔 뒤, 1년만에 대통령으로 직행했다. 이재명 대표도 지난 6월에야 보궐선거로 등원해 이제 국회의원 경력이 고작 3개월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전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처럼 정치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기도 불가능한 여건"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영수회담 제안은 명목상 유효하지만
尹-李 실제로 만날 수 있을지는 회의적
"'딜 하려 들 것' 흥정 말리고 싸움 붙여
24년 총선까지 극한대치 이어질 수도"
'대선 연장전' 3라운드는 꿈도 희망도 없는 승부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게 없다. 검찰은 백현동과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으로 이재명 대표를 조여가고,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코바나컨텐츠 직원 사적 채용 의혹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반격한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정국이) '대선 3라운드'가 될 것 같다"면서도 "국민들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찝찝한 그 기분을 계속 느끼셔야 할 것"이라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국민들로서는 이번 추석 밥상이 정말 짜증스러울 것"이라며 "대장동·백현동·성남FC·도이치모터스·코바나컨텐츠 이런 얘기가 또 나올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로를 만나서 이해를 쌓아가는 해법은 존재할까. '극한 대치'의 정국 속에서도 영수회담 제안은 명목상으로는 유효하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28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자마자 수락연설에서 "영수회담을 요청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만들겠다"며 영수회담을 요구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이틀 뒤 이 대표를 예방한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통해 성사된 통화에서 "당(국민의힘)이 안정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여야 당대표들과 좋은 자리를 만들겠다"며 에둘러 영수회담을 거절했다.
이후 축하 난(蘭)이 전달된지 열흘만에 이 대표가 기소됐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표 취임 축하 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뺨을 때린 격"이라며 "이런 정부는 처음"이라고 펄쩍 뛰었다. 민주당 분위기도 격앙을 넘어 분노가 넘실거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작 이 대표는 이날 "절차도 형식도 관계없다. 여당이 함께 하는 것도 좋다"며 "추석 직후에라도 바로 만나 지금 우리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민의 물음에 답하자"고 여전히 영수회담 제안이 유효함을 밝혔다.
영수회담은 성사될 수 있을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8·28 전당대회에서 선출되기 이전부터 일부 유튜버들은 '이 대표가 야당 대표가 되면 영수회담을 요구해서 윤 대통령과 자신의 처벌을 놓고 딜(거래)을 하려고 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극단 성향의 유튜버들로 분류되지만, 정치와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만도 할 수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중시하는 법치주의 그리고 사법의 독립을 고려할 때, 이재명 대표가 피고인 신분이 된 이상 영수회담은 불가능해진 것"이라며 "피고인이 사정기관의 최종 상급자인 대통령을 만나는 것 자체가 대통령의 수사 관여로 비쳐질 수 있고, 사법부에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도 "정치권이라는 곳이 거간꾼들이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려' 들어도 천성적으로 싸움으로 흐르는 곳인데, 하물며 '영수회담을 하면 딜을 하려고 들 것'이라고 되레 흥정을 말리고 싸움은 붙이려드니 일이 잘 풀릴 수가 없다"며 "대통령실에도 이재명 대표가 선출되자마자 영수회담을 요구해오는 것을 보고 '역시 그렇구나' 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집권 세력의 수장인 대통령과 제1야당의 대표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의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여건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나마 국민들의 투표로 승부를 끝낼 수 있었던 1라운드·2라운드와는 달리 '대선 연장전' 3라운드는 2024년 총선 때까지 수위를 높여가는 극한 대치만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