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조사…주요국 대비 기업부채 증가 속도 빨라
"대출금리 안정화, 다양한 자금조달 길 열어줘야"
은행대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산비용 증가로 은행 대출은 늘어나지만, 고금리로 이자부담이 배로 커지며 자금난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전국 2172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최근 경제상황 관련 기업 자금사정’을 조사한 결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수단이 ‘은행·증권사 차입’(64.1%)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6일 밝혔다.
반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금을 조달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내부 유보자금’(23.9%), ‘주식·채권 발행’(7.1%) 순으로 4곳 중 1곳에 불과했다.
은행대출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해 늘어난 자금조달 수단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64.4%의 기업이 ‘은행·증권사 차입’을 선택했고, ‘내부 유보자금 활용’(32.2%), ‘정부지원금’(17.0%)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주식·채권 발행’을 꼽은 기업은 3.3%에 불과했다.
실제, 최근 회사채 발행규모는 크게 하락하고 있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일반회사채 발행 규모가 올해 1분기 12조9050억원에서 2분기 8조8975억원, 7~8월 4조6135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전년동기 대비 감소율 역시 올해 1분기 기준 13.7%, 2분기 기준 43.8%다.
설령 자금조달이 가능하더라도 높은 금리를 감당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만기 3년 BBB- 회사채 금리는 시장 불안심리 확산,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올해 1월 초 8.5%에서 10월 초 기준 11.1%로 2.6%p 상승한 상태다.
기업의 단기채무 지급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현금흐름보상비율도 인플레, 고금리 상황이 반영돼 1년 전 보다 급락했다. 대한상의가 한국평가데이터(KoDATA)와 함께 897개 제조업 상장사의 분기별 현금흐름보상비율을 분석한 결과, 올해 2분기 현금흐름보상비율은 45.6%로 작년 2분기 대비 43.8% 감소했다.
이는 영업활동 현금유입이 48조9000억원에서 31조2000억원으로 36.2% 감소한 반면, 단기차입금은 60조8000억원에서 71조4000억원으로 17.4% 늘어난 결과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매출채권까지 포함시켜 산출되는 이자보상비율에 비해 현금흐름보상비율은 실제로 지급가능한 현금을 기준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기업들의 감당여력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며 “고금리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자금운용상의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응답기업 4곳 중 3곳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부담 증가’(73.3%)를 꼽았다. 고환율로 인한 ‘외화차입 부담 증가’(25.2%), ‘자금조달 관련 규제’(18.3%)가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자금운용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는 ‘매출부진에 따른 현금흐름 제한’(63.7%), ‘생산비용 증가’(57.5%), ‘고금리 부담’(43.6%)을 꼽은 기업이 많았다.
우리기업들의 부채상황은 국제비교를 통해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9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발표한 올해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43개국 중 15위를 기록했다. 이는 2017년의 19위에서 4계단 상승한 순위이다.
지난 2017년 92.5%였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5년 사이 코로나 사태와 고비용 경제상황을 거치면서 올해 1분기 115.2%로 22.7%p 증가했고, 이는 비교 대상국 중 2위에 해당하는 증가세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지난 9월 대한상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업들이 손익분기를 고려해 감내할 수 있는 기준금리수준이 ‘2.91’이었는데 이번 금리인상 조치로 감내 수준을 넘어서게 됐다”며 “이제는 투자위축을 너머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라며 국내 경기상황을 고려한 통화정책과 단기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을 위한 정책자금 지원을 늘리고, 기준금리와 시중금리와의 갭을 줄이고, 자금조달 수단을 다양화하는 금융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