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에 코로나19 위기 가세
주요 선진국 앞다퉈 ‘보호무역’ 전환
무역 의존 높은 한국, 섬세한 정책 필요
2017년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우던 ‘보호무역’ 상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자유무역 ‘리더’였던 미국은 물론, 탄생 자체가 단일 시장을 기반으로 한 유럽연합(EU)마저 ‘단호한 통상정책’이란 이름으로 무역 장벽을 높이는 중이다. 여기에 미국 경쟁자 중국까지 가세하면서 높아진 경제 장벽에 무역 국가 한국은 활동 무대가 쪼그라드는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보호무역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고삐를 당겼다. 트럼프는 미국 스스로 만들어 온 세계화 질서에서 벗어나 미국 중심주의, 보호무역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양강으로 우뚝 선 중국과 강도 높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트럼프와 반대되는 가치를 바탕으로 정권을 잡은 조 바이든 현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과 경쟁이라는 현실과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에 세계 협력을 이끄는 역할보다는 자국 안위를 먼저 선택했다.
위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을 이기적으로 만들었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가 확산할 때마다 국경을 봉쇄하기 바빴다. 국경 봉쇄로 상당수 후진국 또는 개발도상국들은 백신 수급마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국경 봉쇄로 세계 공급망이 막히자 보호무역은 강도를 높였다. 미국은 전략자원 확보라는 명분 아래 철저하게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을 요구했다. 반도체가 대표 사례다.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요구에 따라 공급망 정보를 제출해야 했다. 삼성, SK 등 국내 기업 역시 예외가 없었다. 삼성은 사실상 미국 압박에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을 미국 내 짓기로 했다.
EU는 코로나 이전부터 꾸준히 무역구제제도 개정을 추진해 왔다. 주벨기에 유럽연합대사관 상무관실에서 지난 6월 발간한 ‘유럽연합의 신(新)통상정책 공정무역인가? 보호무역인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코로나19 범유행 상황에서 단일시장 균열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다.
보고서는 “EU 회원국 간 협력과 공조를 위한 사전 논의 없이 개별 회원국들은 자국 안녕을 위해 국경 간 이동을 통제하고 회원국별 검역기준을 강화했다”며 “범유행이 지속하자 독일과 프랑스 등 일부 회원국은 마스크와 손 소독제, 방호복 등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까지 취하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 방식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유럽연합 차원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방역 정책이 무너진 것이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방역과 위생, 보건 분야뿐만 아니라, EU 내 산업 공급망이 마비되는 초유 사태를 불렀다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은 복잡한 자동차 부품 공급망, 회원국별 각각 방역 기준, 국경 통제방식 등으로 부품 물류가 더디거나 마비됐다. 결국 유럽 완성차업체들 조업 중단 상황까지 치달았다.
EU는 회원국 간 분열이 심화하자 외부와 담을 쌓아 내부 결속을 다졌다. EU는 이 과정에서 통상위협 대응조치, 기업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급망 실사 지침, 외국인 직접투자 감시제도 등 새로운 통상정책을 만들었다.
보고서는 달라진 EU 통상정책에 대해 “규정과 지침 명칭만 봐도 유럽연합 통상정책들이 얼마나 단호해(assertive)졌는지 알 수 있다”며 “EU 통상정책들은 앞으로도 공정무역이라는 명목으로 계속 추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 기간 미국과 EU 등이 경제 쇄국 정책을 펴는 가운데 중국은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공산당 체제의 중국은 경제 개방 이후 줄곧 보호무역 정책을 펼쳐왔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비판과 제재 속에도 중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자국 기업 키우기에 몰두했다.
이런 노력은 코로나19 시국에 빛을 발했다. 전국경제인연합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중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미국과 무역전쟁,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로 세계 가치사슬(value chain) 재편 등 영향으로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충격에서 중국은 가장 먼저 경제 정상화 단계를 밟았다. 중국은 2020년 1~3분기 세계 수출시장 비중은 14.5%로 증가했다. 미국이 2019년 8.8%에서 2020년 1~3분기 8.3%로 0.5%p 하락한 것과 비교된다.
중국은 그동안 반도체를 비롯한 각종 굴기 정책에 국가 권력과 재정을 모두 동원해 왔다. 전기차 분야에서는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만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제공했다. 심지어 차량 주행 기록과 카메라 영상 등을 현지에 보관하도록 하는 ‘데이터 안보법’을 만들어 외국계 기업들을 언제든지 조사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세계 경제 보호무역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상황과 세계적인 고물가(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위기도 여전해 과거와 같은 세계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 흐름에 보다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원이 부족해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는 각국 보호무역 장벽 사이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제는 우리도 더 적극적인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며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경제정책은 우리 산업과 경제를 강하게 만들었다. 또 다시 그런 정신과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는 “곧 자유무역 종말 시대를 보게 될까 우려스럽다”며 “선진국들 보호주의 속에서 우리가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자유무역 붕괴②] 세계 리더 자처하던 미국, 위기에 드러낸 ‘민낯’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