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2세의 엘리트 정치인…인도계 이민자 출신
英경제 위기·불안정한 대내외 정치적 환경 직면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영국 총리로 선출됐다. 영국 역사상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 최초의 비(非) 백인 총리가 됐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차기 총리 후보 등록마감인 24일(현지시간) 오후 2시까지 100명 이상의 지지 의원을 확보해 후보등록 요건을 맞춘 수낵 전 장관이 단일 후보가 되면서 별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리가 됐다.
수낵 전 장관은 이날 차기 총리로 확정된 후 첫 공개연설을 통해 "영국은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당과 국가를 통합하는 것이 나의 최우선적 과제이다. 우리에겐 안정과 단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성실과 겸손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수낵 전 장관은 찰스 3세 국왕의 재가를 얻어 총리에 임명된 뒤 새 내각을 구성한다.
BBC에 따르면 수낵 전 장관은 보수당 의원 375명 중 200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는 후보 등록 마감 직전 약 90명의 의원들에게 지지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경선 출마 요건인 당내 의원 100명의 지지를 채우지 못해 등록 마감 직전 불출마를 알리며 수낵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앞서 존슨 전 총리 측에서는 지지 의원 102명을 확보해서 후보등록 요건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이터 통신 등은 두 자리 숫자였다고 전한 바 있다.
수낵 전 장관은 여러 가지 타이틀을 달고 있다. 트러스 총리의 라이벌,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뒤통수를 친 배신자, 코로나 팬데믹 속 영국을 이끈 장관, 최연소 장관, 이민자 출신 등이다. 그는 총리직에 오르면서 1812년 로버트 젠킨슨 이후 210년 만에 최연소 총리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됐다.
1980년 5월생인 수낵 전 장관은 만 42세의 젊은 엘리트 정치인이다. 중산층 이상의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그는 잉글랜드 사우샘프턴(Southampton)에서 태어나 의사인 부친과 약사인 모친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일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민자 2세들과 달리 유복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명문 사립고교인 윈체스터 칼리지와 옥스퍼드대 PPE(철학·정치학·경제학) , 스탠퍼드 대학 MBA를 취득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대학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한 이력이 있으며 이후 헤지펀드 회사에서 고위 임원직까지 지낸 바 있다. 동료들과 '텔렘 파트너스'(Theleme Partners) 헤즈펀드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수낵 전 장관은 지난 2014년 잉글랜드 노스요크셔주 리치먼드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계에 입문했다. 이후 2018년 1월부터 2019년 7월까지 테리사 메이 내각에서 주택공공자치부 차관을 역임했고, 2020년 2월 보리스 존슨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며 정계에서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존슨 내각에서 재무장관직을 지낸 그는 존슨 전 총리의 이른바 '파티게이트' 논란 등이 일던 지난 7월에 제일 먼저 사임하면서 내각 몰락을 촉발한 '배신자'라는 질타도 받았다. 하지만 5개월에 불과한 짧은 장관 경험에서 적극적인 코로나19 대응이라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영국 경제가 코로나19 봉쇄로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유급휴직 등 적극적 코로나 지원 정책을 펼치면서 유권자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지지율이 오르기도 했다.
아울러 수낵 전 장관은 보수당에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수낵 전 장관은 앞서 리즈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해오며 지난 경선당시 트러스 총리가 내세운 경제개혁안을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재무장관 시절 코로나19로 늘어난 빚을 갚아야 한다며 법인세율 인상을 발표하고, 일종의 소득세인 국민보험 분담금률을 1.25% 올리기도 했다. 트러스 총리의 감세정책이 실패로 끝나면서 수낵의 판단이 결국 옳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물론 당시 인도 억만장자의 딸인 그의 부인이 영국에 거주하지 않으며 세금납부를 회피했다는 논란과 과거 헤지펀드 회사에서 고위 임원으로 지낸 점 등이 논란이 되며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40여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 기준금리 인상, 소비심리 위축, 내핍 가능성 등을 꼽으면서 영국의 경기 전망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영국의 경기 침체 속에서 수낵 전 장관은 취임되는 동시에 영국이 직면한 경제 위기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등 극도로 불안정해진 대내외 정치적 환경에 맞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