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별도의 행사·취임사도 없이 조용히 승진
악화된 대내외 환경 감안한 듯 차분한 분위기
기술 투자 및 인재 중심 경영에 힘 쏟을 것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7일 정기 이사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되며 '이재용의 삼성 시대'가 열렸다. 2012년 부회장에 취임한 지 무려 10년 만이다. 이 회장은 예상과 달리 별도의 행사를 생략하고 차분하고 조용하게 회장직에 올랐다. 별도의 취임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지난 25일 이건희 회장 2주기 당시 사장단에게 밝혔던 소회와 각오를 이날 사내게시판에 올리는 것으로 취임사를 대신했다.
27일 이 회장의 육성 취임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던 곳은 공교롭게 법정이었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했다. 그는 중간 휴정 시간에 법정을 나오면서 승진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 응원 부탁드린다"고 짤막하게 소감을 전했다. 사실상 지금까지 삼성 총수로서 활동해온 만큼 특별한 메세지는 남기지 않고 자리를 떴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날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어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경영 안정성을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 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동시에 진행된 삼성전자 실적 발표 역시 현재 삼성의 녹록지 않은 대내외 여건을 실감하게 했다. 다만 그럼에도 올해 예정된 54조원 가량의 투자는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당분간 시장경쟁력 강화를 위한 첨단 기술 투자와 더불어 인재 중심 경영에 힘을 쏟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간 삼성이 '인재제일(人材第一)' 경영철학 아래, 능력 중심의 인사를 구현하기 위해 창업 이래 지속적인 인사 제도 혁신을 추진해 왔고, 1957년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공채를 도입한 직후 지금까지도 공채 문화를 유지해오고 있는 유일무이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이 인재 경영은 타 기업들과 차별화가 뚜렷하다. 故 이건희 회장의 '여성인력 중시' 철학에 따라 1993년에는 '삼성 신경영' 일환으로 국내 최초로 대졸 여성 신입사원 공채를 신설했고, 1995년에는 입사 자격요건에서 ▲학력 ▲국적 ▲성별 ▲나이 ▲연고 등을 제외하는 파격적인 '열린 채용'을 실시한 바 있다.
이 회장 역시 최근 25일 간담회에서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며 "도전과 열정이 넘치는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인재 경영과 관련해 언급한 바 있다. 지난 6월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기술'과 '인재'를 특별히 강조했다. 앞서 지난해 故 이건희 회장 1주기 때는 '새로운 삼성'을 언급하며 새 조직 문화 구축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이재용 회장의 '조직문화 혁신' 의지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조직의 활력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직급 통폐합 등을 통한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 ▲직급별 체류 연한 폐지를 통한 조기 승진 기회 및 과감한 발탁 승진 확대 ▲평가제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인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이 회장은 핵심 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성별·학벌·국적 불문의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직후 AI분야 최고 석학인 승현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삼성리서치 소장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유연한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직원들과의 소통도 늘려가는 행보를 지속해서 확대 중이다. 올해 8월 특별사면으로 경영을 재개한 직후 화성사업장에서 반도체부문 직원들을 만난데 이어 삼성SDS·바이오 등 계열사를 찾아 임직원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중남미 출장에서도 현지 직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새로운 인사제도 개편은 이재용 회장이 이끄는 '뉴삼성' 비전을 구체화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전망하며, "회사와 직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미래지향적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