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국정원장, '자진 월북 정황' 부각 위해 직권남용·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
국정원, 고 이대준 씨 표류 사실 가장 먼저 입수…박지원 '첩보 삭제' 지시 의혹
검찰, 박지원 압수수색 등 사전 단계 마무리…서훈 조사 마무리 직후 소환 예상
박지원, 서훈과 혐의 거의 동일…文 관여 여부에 대한 직접 수사 가능성 제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청와대 사령탑으로 지목됐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되며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도 이른 시일 내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박 전 원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 사건과 관련한 첩보 등을 무단 삭제·수정하고 자진 월북 정황을 부각하기 위한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허위공문서 작성) 등을 받는다.
국정원은 이 씨가 실종됐던 2020년 9월 22일 오후 그가 북측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첩보를 통해 가장 먼저 입수했다.
이 씨는 당일 저녁 북한군의 흉탄에 맞아 숨졌다. 시신은 해상에서 불태워졌다. 밤 10시쯤 이 사실을 인지한 국가안보실은 다음 날인 23일 새벽 1시 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했다.
박 전 원장은 당시 회의에 참석한 뒤 '보안을 유지하라'는 안보실 지시에 따라 첩보 보고서와 국정원 문건 수십 건을 삭제·수정했다. 검찰은 이를 위법 행위로 보고 있다.
검찰은 사건 발생 후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정부가 이 씨를 '자진 월북'으로 몰아갔으며, 박 전 원장 역시 '월북 몰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의심한다.
10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보면 국정원은 이 씨 사망 전후 두 차례 첩보 분석에서 이 씨 월북 의사에 대해 '불분명하다'라고 분석했다. 또 이 씨 사망 이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관계 장관회의 준비 과정에서도 국정원 내부에서는 "자진 월북 판단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는 게 감사원 감사 내용이다.
하지만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한 박 전 원장은 회의에서 타 기관의 자진 월북 판단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감사원은 박 전 원장이 관계 장관회의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총격으로 이 씨 시신이 튕겨 나갔을 가능성이 있으니, 부유물만 소각한 게 아닌지 검토해보라'는 취지의 지시도 내렸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후 작성된 국정원 보고서에는 '부유물만 소각했을 소지가 있다'는 내용이 새롭게 포함됐다.
검찰은 서 전 실장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박 전 원장을 소환해 제기된 의혹을 확인할 방침이다. 이미 박 전 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등 소환 조사 사전 단계는 마무리됐다.
박 전 원장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서 전 실장과 혐의가 거의 비슷한 만큼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서해 피격 수사가 급물살을 타며 최고 결정권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에 대한 직접 수사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 전 대통령은 앞서 입장문을 통해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하며 서해 피격 사건 최종 승인자는 자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우선 서 전 실장을 상대로 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상세 보고 내용과, 이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문 전 대통령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서 전 원장을 비롯한 당시 정부 관계자들이 구속 후에도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있어 추가 조사에서 문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나 관여 여부를 파악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대장동 개발 사건 등과 관련해 소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 터라, 검찰로서는 제1야당의 전 대통령과 현직 당 대표를 모두 부르는 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파악된 대통령 지시 사항이 "정확히 사실을 확인하라", "북측에도 확인하라" 등 원론적인 수준이라 전 대통령의 출석을 요구하기엔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올린 글에서 "서훈처럼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은 다시 찾기 어렵다"라며 "그런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