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치 이슈 삼킨 나경원 행보
'친윤 단일화→대세론' 김기현 구상 차질
안철수, 金·羅 갈등 어부지리 기대하나
나경원 장고…정치권 '출마 채비' 해석
나경원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의 행보가 정치권 이슈를 모두 집어 삼키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13일 나 전 원내대표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사직서 제출을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향후 정세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먼저 친윤 그룹에서는 나 전 원내대표의 행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친윤 단일 후보'라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김기현 의원을 대세론에 태우려던 당초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친윤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불출마를 압박하는 한편, 나 전 원내대표의 사의가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비윤' 프레임에 가두려는 전략도 가동했었다.
친윤으로 분류되는 김정재 의원은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 같으면 (부위원장) 자리를 받지 말았어야 되고, 이 자리를 받았으면 충실해야 한다"며 "순간의 지지율 때문에 출마하고 싶은 유혹은 신기루"라고 날을 세웠다. "정부와 반해서 본인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예전 유승민의 길"이라고도 했다. 유상범 의원도 "초재선 그룹이 지지했던 2년 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친윤 그룹의 견제는 기본적으로 김 의원과 나 전 원내대표의 지지층이 상당 부분 겹치는 데서 기인한다. 실제 영남과 60대 이상 등 주로 전통의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두 사람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경향이 나타난다. 일례로 알앤써치가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지난달 28~30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나 전 원내대표가 보기에서 제외되자 김 의원이 단숨에 당대표 선호도 1위(23.5%)로 올라서는 결과가 나왔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수도권 대표론'을 내세워 김 의원과 대립각을 형성 중인 안철수 의원은 "출마를 했으면 좋겠다"며 나 전 원내대표를 독려하는 입장이다. 서울이 기반인 나 전 원내대표가 출마한다면, 흥행과 함께 수도권 연대의 전체 파이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판이 커질수록 인지도 높은 후보가 유리하다는 게 안 의원 측 판단이다.
무엇보다 주류 진영이 김 의원과 나 전 원내대표 둘로 나뉘어 격전을 벌일 경우, 안 의원이 중간 위치를 점하며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단 친윤 주류의 결집을 막아 결선투표로 이끈 뒤, 연대를 통해 역전을 노린다는 전형적인 '적의 적은 아군' 시나리오다.
안 의원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영우 전 의원은 "무슨 감자 캐듯이 윤심을 찾아 윤심에 기대 당대표가 되고자 하는 것은 당을 이끌 자격도 없고 바지사장이 되겠다는 것"이라며 "당내에 긴장관계나 분열이 있는 때는 오히려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집권여당으로서 하나를 만들 수 있는 당대표는 안철수"라고 강조했다.
물론 안 의원 측의 구상처럼 판이 움직여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나 전 원내대표가 안 의원이 주장하는 '수도권 대표론'에 동조해 연대할지도 의문이고 여론조사를 봐도 당내에선 나 전 원내대표의 존재감이 압도적인데, 결선투표를 위한 2강 후보에 (안 의원이) 들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이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사직서를 제출한 나 전 원내대표는 충북 단양의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를 찾았다. 천태종 총무원장 무원 스님은 이 자리에서 "무소의 뿔처럼 고고하게 부처님 진리를 새겨 고요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면 가야할 길이 보일 것"이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