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리오프닝, 소비심리 급반등·관광수요 폭발·경기확장 국면에
해외 단체관광 본격 재개되면 2000억 달러 거대시장 형성할듯
코로나 봉쇄에 지갑닫고 돈모은 중국인들 소비 잠재력 ‘핵폭탄’
초과저축 보복소비 이어지면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기름 부을듯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고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의 고삐를 당기면서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리오프닝과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 효과애 힘입어 중국 소비심리의 회복수준이 예상을 뛰어넘어 오히려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3년간 국경을 봉쇄했던 중국이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전환하면서 국경을 개방함에 따라 14억명이 넘는 중국인들의 해외 관광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해외 단체관광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무려 2000억 달러(약 252조원) 이상의 거대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소속 영자지 글로벌타임스(GT)가 지난 4일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은 3년 만에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 이번 춘제 연휴 기간동안 관광수요가 대폭 늘어났다. 중국 문화관광(文化旅遊)부에 따르면 춘제 연휴기간 중국 내 관광객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1% 늘어난 3억 800만명에 달했다. 이 기간 관광수입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한 3758억 4300만 위안(약 69조 7865억원)으로 집계됐다.
출입국 인원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0.5%나 상승했다. 중국 해외뉴스 전문사이트 궈지자이셴(國際在線)은 "춘제 연휴기간의 소비 붐이 세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며 "소비가 연중 개선되고 새로운 상품의 출시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덕분에 중국의 1월 소비자물가도 대폭 올랐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상승했다. 전달(지난해 12월·1.8%)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이에 중국 각 여행사들은 해외 단체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여행상품을 쏟아냈다고 중국 인터넷매체 펑파이(澎湃)신문이 전했다. 중국 여행사이트 셰청(携程·Ctrip)에 따르면 지금까지 15개 국가를 대상으로 700개에 달하는 온라인 상품이 출시된 상태다. 첸제(陳杰) 카이사뤼예(凯撒旅業) 회장은 "수십 가지 유형의 아웃바운드(해외) 관광상품이 차례로 출시될 것"이라며 "올해 유럽으로 가는 첫 번째 여행 그룹이 7일 출발했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리오프닝은 중국 성장률 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UBS는 중국의 소비가 1%포인트 늘어날 경우 싱가포르(0.7%포인트), 태국(0.4%포인트), 한국(0.2%포인트) 등 주변국들의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에르 올리베이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서 벗어난 중국의 리오프닝이 올해 아시아 경제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IMF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세계 성장률을 2.9%로 0.2%포인트 올리고, 중국경제도 5.2%로 0.8%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중국 경기지표도 리오프닝과 춘제 효과로 확장 국면에 진입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달보다 3.1포인트 상승한 50.1을 기록했다. 전문가 예상치(49.8)를 웃돌았다. 지난해 9월(50.1)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 4개월 만에 반등한 것이다.
제조업 PMI는 전국 700여개 제조업체 구매담당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문·생산·출하·재고·고용 등 5개 분류지표를 조사해 집계한 수치다. 기준선인 50보다 위면 경기확장 국면에, 50보다 아래에 있으면 경기위축 국면에 있다고 평가한다. 서비스업(비제조업) PMI는 54.4로 전달(41.6)보다 강한 회복세를 탔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2월 29.6에서 3월 52.3으로 치솟은 이후 반등폭이 가장 크다. 전문가 예상치는 52.0이었다.
그러나 인구대국 중국의 가파른 소비심리 회복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의 적극적인 부양책이 전 세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2023년 중국의 경제 리오프닝은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봉쇄 동안 지갑을 닫았던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 잠재력은 핵폭탄급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중국 은행계좌와 소득데이터를 분석해 중국 가계의 초과저축(잉여저축)이 7200억 달러(약 908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미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초과저축 규모를 3조~4조 위안(약 557조~742조원)으로 추산했고, 중국 국유 투자은행인 국자제본공사도 1조 5000억 위안으로 추정했다.
중국인들이 저축을 대폭 늘린 것은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청년실업의 급증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여유자금을 저축으로 돌렸고, 청년실업 등으로 미래소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롭 서브바라만 노무라증권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인들이 리스크 예방 위해 저축을 늘렸다”며 “중국의 부동산 침체와 청년실업 급증이 가계저축 증가에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늘어난 천문학적 규모의 초과저축이 소비에 나설 경우 전 세계 물가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라증권은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로 억눌렸던 중국의 소비심리가 제로 코로나 정책 폐지를 계기로 보복소비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국이 전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폭탄을 퍼부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소비 활성화를 통한 성장을 경제정책의 핵심 목표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내수가 살아나면서 중국산 제품의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오르고, 원유 등 국제 원자재 수요도 커져 가격이 들썩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국제경제 정책 결정자들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총재는 “중국발 더 강한 소비수요는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중국의 리오프닝이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도 월스트리트저널(WSJ) 주최 포럼에서 “중국의 경제활동이 본격적으로 재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속화 할 수 있다”며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성장과 물가 사이에서 최선의 정책조합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고린차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긴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중앙은행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플레이션을 낮추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연준의 가장 공격적인 통화긴축 지속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 저축과잉 덕분에 소비자 지출수준이 유지됐다. 이에 반해 중국의 리오프닝은 시점상 중국 인민은행이 긴축완화 모드에 들어간 시기와 겹치게 된다. 이런 상황의 차이가 잠재적으로 중국의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의 인플레이션은 평균 2.2%로 지난해(2%)보다는 높아지겠지만, 중국 정부가 제시한 연간 목표치(3%)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국의 부동산 부문 침체가 당분간 이어지며 철강 수요가 올해 하반기까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UBS는 “중국의 소비 반등이 관광에 국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