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찰풍선 배후 인물로 中 최고 항공우주학자 우저 주목
NYT “2019년 고고도 풍선 전 세계 일주 성공이 주요 근거”
中 정찰풍선, 우저 부총장 공동 설립한 EMAST와 밀접 관련
EMAST, 저렴한 고고도 풍선 통해 글로벌네트워크 구축 목표
미국과 중국 간에 첨예한 갈등을 촉발한 ‘중국 정찰풍선’의 미스터리가 서서히 풀리고 있다. 정찰풍선 개발의 주역과 개발업체 등 그 실체가 한꺼풀씩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지난 4일 격추한 중국 정찰풍선과 관련된 배후 인물로 우저(武哲·66) 둥관(東莞)이공대 부총장을 주목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3일 보도했다. NYT는 “우 부총장이 공개한 논문, 보고서 등을 보면 그가 오랫동안 해당 문제를 집중 연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 부총장이 2019년 고고도 풍선이 6만 피트(약 18.3km) 상공에서 북미 등 전 세계를 일주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점이 주요 근거”라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클라우드 체이서(Cloud Chaser)라고 이름 붙인 고고도 풍선이 북미 전역과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을 일주했다”고 밝혔다. 우 부총장의 컴퓨터 스크린에는 아시아·북아프리카·북미를 가로지르는 풍선의 경로를 표시한 빨간 선이 표시돼 있었으며, 그는 태평양 상공의 풍선을 가리키며 “여기 미국이 있다”고 말했다. NYT는 “우 부총장의 발언이 중국 정부가 군사 목적으로 고고도 풍선을 이용하려고 한 계획의 일부를 드러내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베이항(北航)대 연구원 신분으로 20년 간 비행선 분야를 파고든 우 부총장은 비행기가 지구 상공 12~62마일(19.3~99.8km)인 근거리 우주에 대해 연구하며 제트 전투기 설계, 스텔스 재료에 대한 전문지식도 쌓았다. 베이항대 교수·부총장 등을 거치며 베이징 우수교수 칭호, 육군 과학기술 진보상을 받는 등 연구·강의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NYT는 "지금은 해체된 인민해방군 총장비부의 자문위원회에도 그의 이름을 올렸다"고 전했다.
중국 정찰풍선은 우 부총장이 2004년 공동 설립한 이거스만항쿵커지(銥格斯曼航空科技·Eagles Men Aviation Science and Technology·EMAST)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MAST는 2017년 소셜미디어(SNS)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 공식계정에 고고도 풍선과 관련해 “고해상도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통신이 가능하며 정찰과 운항능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2019년에만 고고도 풍선을 날린 게 아니다. 현재 삭제된 EMAST의 홈페이지에는 2020년 중국이 보낸 풍선이 전 세계를 일주하고 안전하게 회수된 것과 이듬해에는 2개의 고고도 풍선을 동시에 띄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히 2022년에는 고고도 풍선 3개를 동시에 띄워 ‘공중네트워크’(airborne network)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EMAST는 “최소 8만 피트(약 24.3km) 높이에 떠 있는 고정된 풍선을 이용해 중국이 공중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2028년까지 글로벌 정보 네트워크를 만들겠다”고 널리 홍보했다.
EMAST의 구상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서비스 ‘스타링크’와 비슷한 개념이다. 저궤도에 위성 4000여개를 띄운 뒤 네트워크를 구축한 스타링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비용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격추된 정찰풍선도 같은 맥락이다. NYT는 “EMAST 게시물만 봐선 고고도 풍선으로 공중 네트워크를 구축했는지, 구축할 계획인지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우 부총장은 이 분야에서 중국 내 입지가 다져진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우 부총장은 2021년 EMAST를 상장할 계획도 세웠다. 그는 베이징증권거래소에 제출한 EMAST 관련 자료에서 중국군이 항공기 탐지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위장 및 스텔스 재료를 포함한 수요를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때문에 미 정부는 10일 인민해방군의 정찰풍선 프로그램에 관여한 중국 5개 기업과 1개 연구소를 수출제재 명단에 올렸다. 미 상무부 산업보안국은 "중국군의 정찰풍선 및 비행체 개발을 비롯한 군현대화에 이바지했다"며 제재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중국은 이번 사태가 미국의 정치적 농간이자 과잉 대응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제재명단에 추가된 기업과 연구소는 중국뎬즈커지(電子科技)그룹 제48연구소와 베이징난장쿵톈커지(北京南江空天科技),둥관링쿵야오간커지(東莞凌空遙感科技), EMAST, 산시이거스만항쿵커지(山西銥格斯曼航空科技), 광저우톈하이샹항쿵커지(廣州天海翔航空科技)이다.
국가 방위산업체로 전자장비와 통신장비, 산업장비, 인터넷보안 관련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중국뎬즈커지그룹 산하 48연구소는 마이크로전자와 태양전지, 광전자 재료 등을 개발 및 생산을 위한 국가급 전문기관이다. 이 연구소가 정찰풍선의 태양광 장비를 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징난장항쿵톈커지는 우주 영구 정박 비행체, 왕복 재사용 비행체, 우주항공용 로봇 등을 개발하는 회사다. 정찰풍선이 중고도에서 작동하기 위한 로봇기술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EMAST의 자회사인 산시이거스만항쿵커지는 공기주입 텐트를 제조하는 업체로 대형풍선을 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저우톈하이샹항쿵커지는 군용드론, 유인 비행체 등을 개발하는 업체다. 중국 최초로 초소형 무인 정찰기를 개발했다. 이 업체의 항공 정찰기술이 정찰풍선에 탑재된 것으로 보인다. 우 부총장이 설립에 참여한 둥관링쿵야오간커지는 항공기용 원격탐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원거리 물체를 포착해내는 기술이 정찰풍선에 적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둥관링쿵야오간커지 외에도 2개는 우 교수가 공동 설립했거나 주요 관계자로 포함된 회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제재대상 기업이 격추된 정찰풍선과 구체적으로 관련이 있는지 여부와 우 부총장의 이름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면서도 정황상 그가 그 배후에 있다고 NYT는 추정했다.
이번 정찰풍선 파문은 미국이 지난달 28일 알래스카 서쪽 알류샨 열도 상공에 진입한 중국 정찰풍선을 포착하면서 비롯됐다. 미군 당국은 이때만 해도 중국이 미국 주변 방위망을 정찰하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캐나다 쪽으로 넘어갔던 풍선이 미 북부 아이다호에 재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월 1일 몬태나주의 맘스트롬 공군기지 상공에 도달하자 미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이곳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관·운용하는 격납고 150개가 소재한 미국의 주요 군사자산이다. 미 정부는 격추를 검토했으나 잔해로 인한 지상 피해 등을 우려해 보류하기로 했다.
2일 정찰풍선의 존재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자 공화당이 파상 공세를 펼쳤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 영공 침입 7일 만에 정찰풍선을 격추한 것과 관련해 ‘늑장 대응’이라고 공격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국방과 외교정책에 관한 한 늘 그렇듯 바이든 행정부는 너무 우유부단하게 있다가 뒤늦게 대응했다. 우린 중국이 우리 영공을 무시하도록 둬서는 안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베이징 방문 이틀 전인 3일 방문 일정을 전격 연기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 정찰풍선의 존재는 미국의 주권과 국제법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무책임한 행위”라며 “현시점에서 건설적인 방중을 위한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정찰풍선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공으로 옮겨간 4일 격추작전을 실시했다. 이날 오후 미 공군 F-22 랩터 전투기가 흰색 풍선을 향해 직선에 가까운 궤도로 날아갔다. 이어 발사된 AIM-9X 공대공 미사일 한 발이 풍선을 명중했다. 터져버린 풍선은 맥도 못 추고 추락했다.
이후에도 미국에서는 ▲ 10일 알래스카주 데드호스 ▲ 11일 캐나다 유콘 ▲ 12일 미시간주 휴런호 상공에서 미확인 비행물체가 격추됐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아직 3개 물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들이 중국의 스파이 풍선 프로그램과 관련됐거나 다른 국가에서 온 정찰 기구라고 볼만한 어떤 것도 없다"고 말했다.
미 해군은 4일 격추한 정찰풍선의 잔해를 5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앞바다에서 수거했고, 이를 미 연방수사국(FBI)이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