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국유기업과 첨단 기술기업에 서방의 주요 회계법인들과 계약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서방 회계법인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회계감사 과정에서 첨단 기술·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재정부는 최근 국유기업과 첨단 기술기업에 세계 4대 회계법인과의 계약을 중단하고중국·홍콩 회계법인을 고용하라고 통보했다. 대상 회계법인은 영국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언스트 앤 영EY),네덜란드계 딜로이트·KPMG로 다국적 기업들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맺은 합의로 봉합된 듯했던 '미국-중국의 회계갈등'에 또다시 재연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중은 몇년 간 미 뉴욕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에 대한 회계 감독권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미국은 상장사들이 고용한 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가 다시 한번 검증하는 '이중감시 시스템'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중국에만 예외를 적용해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검증하도록 해왔다. 중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PCAOB의 감독을 거부한 까닭이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관련 협약을 폐지하자 갈등이 커졌다. 중국 당국이 고집을 꺾지 않자, 조 바이든 정부는 PCAOB의 감사를 3년 연속 거부한 외국 기업을 미 증시에서 퇴출할 수 있도록 외국회사 문책법(HFCAA)을 제정하며 압박에 나섰다. 알리바바, 징둥닷컴 등 중국 대표기업들이 미국 증시에 올라 있단 점을 노린 조치였다.
이에 중국동방항공,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페트로차이나) 등 중국 국유기업들이 미 증시에서 발을 빼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중국이 미 증시에 상장된 자국 기업의 회계감사 자료를 PCAOB가 감독하는 데 합의하며 갈등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중국 정부의 이번 지시로 상황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4대 회계법인은 PCAOB와 신뢰를 쌓아온 데 비해 정부에 우호적인 중국 회계법인들은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중국 회계법인은 기술은 물론 경험도 부족해 중국 기업들의 회계 불투명성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중국 국유기업들이 정부의 지침에 따른다면 4대 회계법인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기업들은 이들의 '큰 손'이다. 중국 재정부에 따르면 ‘글로벌 빅4 회계법인’은 지난 2021년 중국 고객사로부터 206억 위안(약 3조 8700억원) 규모의 수익을 올렸다.
그렇지만 가장 큰 '패자'는 중국 기업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블룸버그는 "중국 기업의 재무관리 상황 파악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 본 외국 투자자들이 이 기업들에서 발을 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중국 당국의 지시가 최근 미·중 간에 '정찰풍선'을 둘러싼 공방으로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점에 주목했다. 미 PCAOB와 증권거래위원회(SEC), 중국 재정부, 4대 법인 어느 곳도 관련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