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사 이어 4개월만에 양산 찾은 李에
文 "민주당, 역동성 회복해 더큰 사랑받길"
"대화라는 건 정치인에게는 의무" 발언도
정치권 "李, '영남행'으로 결집 목적 달성"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산책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민주당이 더 단합하고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강조했다. '돈봉투 사태'와 '김남국 코인 보유 사태'로 찢어질 위기에 놓인 민주당의 단합을 위해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을 찾아가 껴안기까지 하는 등 상징성 있는 '투샷'을 만들어내면서 당장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10일 오후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경남 양산을 찾아 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평산책방을 방문했다. 지난 1월 2일 신년인사를 이유로 문 전 대통령을 찾은지 약 4개월 만의 재방문이다. 책방 입구까지 나온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는 서로 끌어안았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를 향해 "퇴임 1주년에 특별한 의미로 방문해주셨다"며 환영한다는 인사를 건넸고, 이 대표도 "책방이 잘돼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이날 책방을 방문한 이들은 민주당 지도부뿐만이 아니었다. 문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임종석·노영민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영주·이인영·전해철·한정애·황희 의원 등 문 정부 당시 장관으로 근무했던 인사들도 책방을 방문했다가 이 대표 도착 직전 책방에서 걸어나오기도 했다.
사저로 이동해 이뤄진 비공개 차담에서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를 향해 "민주당이 과거의 역동성을 회복해서 젊은 층에 더 사랑받는 정당으로 변하길 바란다"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어 자신의 재임 시절인 2017년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당사를 방문한 일화를 꺼내며 "대화라는 건 정치인에게 있어 일종의 의무와도 같은 것이다. 대화가 없으면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이 대표에게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영수회담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공개 차담에 동석했던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야당과 여러 채널로 대화도 하고 야당 대표와 만남도 진행했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도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한 이후 페이스북에 "당 안에서건 당 밖에서건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이같은 문 전 대통령의 반응으로 이 대표가 '영남행'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 1월 이 대표는 성남FC 사건 등으로 검찰 소환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고,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의 "이 대표 중심으로 혼연일체로 하나가 돼 올해는 더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발언이 효과를 발휘해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단일대오 형성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이번 회동 역시 '돈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 의혹' 등으로 친명을 향한 비명의 공세가 지속되는 당내 위기 상황 와중에 성사된 만큼, 신년 방문과 비슷하게 야권의 결집을 촉구하기 위한 메시지를 이 대표가 내심 바랐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앞선 홍준표 대구시장의 예방에서도 어느 정도 원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엔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를 방문해 홍 시장과 면담을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에 대선 경쟁 상대였던 홍 시장을 만나 이 대표는 '여야 협치 복원'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완성하는데 주력했다.
이 대표는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내륙철도 특별법' 통과를 약속하며 대구시와 민주당이 정기국회 전 예산정책협의회를 열 것을 제안했다. 홍 시장은 이에 반색하며 "그러면 대구에서도 민주당 표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 대표 역시 "정치가 실종된 것 같다"는 홍 시장의 지적에 "정쟁에서 전쟁 단계로 돌입한 것 같다"며 "당연히 대화해야죠"라고 호응했다.
특히 이 대표는 홍 시장과의 대화에서 현안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홍 시장에게 "(국회가) 너무 거칠다. 국민의힘 원로이니 중앙당에도 그런 말을 해달라"고 요청자 홍 시장은 "이야기는 하는데, 당대표(김기현)가 좀 옹졸해서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답했다.
또 홍 시장은 "윤 정권에서는 대부분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실에 있다"거나 "민주당은 문제되는 사람이 즉각 탈당해 당에 부담을 덜어내는데, 우리 당은 애들이 욕심만 가득 차 있다. 당에 대한 헌신이 없다"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겸연쩍게 웃으며 "제가 남의 당 얘기를 대놓고 하기가 조금 (그렇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홍 시장과 이 대표의 회동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윤 정권은 정치를 모르고, 김기현 대표는 옹졸하다'고 해서 으레 야당 대변인의 비판 성명이려니 했는데, 우리 당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차마 믿어지지 않는다"며 "더욱이 이재명 대표를 만나서 주고받은 얘기라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다. 밖에 나가 집안 흉이나 보는 마음 꼬인 시아버지 같다. 결국 정치를 잘 아시는 홍 시장께서 이재명 대표에게 이용만 당한 꼴"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