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총체적으로 타락한 시대
민주당 면죄법이라도 만들든지
헌법을 정당 이익에 종속시키나
대한민국의 정치가 오늘날처럼 타락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승만·자유당 독재, 박정희 철권정치가 민주정치의 정착과 성숙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그 양대(兩代)를 빼 버리면 지금의 한국은 (아마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가를 건설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을 지금 정치인입네 하는 사람들이 흉내라도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단히 모욕적인 평가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이나마도 아주 온건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특히 이재명의 민주당이 반정치(反政治)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정치를 확고한 공적 목표와 가치관 없이 그야말로 ‘원초적 본능’에 내맡기고 있는 인상이다. 권력과 부(富)의 획득이, 정치에 뛰어든 결정적이고 압도적인 동기였는가?
정치가 총체적으로 타락한 시대
민주당 이 대표는 비리의혹의 만물상(萬物商 혹은 萬物相)이다. 그 이전에 해괴한 행태로 ‘인성 파탄’의 한 양상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정치인, 특히 그 리더로서의 자질이 어림없이 모자란다. 그런데 잔기술(김의겸 의원의 용어를 또 빌리자면)이 대단하다. 반면에 인성은 그의 비실웃음과 흡사해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6일 대구에서 ‘가불 선진국에서 펼치는 법고전 산책 이야기’ 북콘서트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내 딸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부산의전원 입시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부인이 자녀 입학비리로 징역 4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그 자신도 공범으로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딸 조민씨는 부산의전원 입학이 취소됐다. 졸업을 하고 의사신분을 얻었지만 이게 다 원인무효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조 전 장관은 “내 딸 때문에 손해 본 사람이 있느냐”는 식으로 대응했다.
정원만큼 뽑고 나머지는 떨어뜨리는 것이 입시다. 조 전 장관의 딸이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했다면 그로 인해 억울하게 떨어진 사람이 반드시 있다. 표창장 등 그들의 비리행위가 없었더라도 합격했을 것이라는 주장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랬다고 하더라도 제도를 훼손한 잘못은 그대로 남는다. 양심이 있으면 사죄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사람은 과오를 부인하고 딸은 “떳떳하게 살았다”고 했다. 수치심, 반성, 책임의식 같은 인간의 기본적 조건이 결여된 사람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옛날식 표현으로) 총신(寵臣)이었다.
그가 승승장구할 때 차기 대통령 감으로 정권 안팎에서 공인되다시피 하는 분위기였다. 아마 그 자신도 믿어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온갖 지저분한 행태가 드러나는 바람에 국민에 의해 퇴출당하는 신세가 됐다. 그의 대통령 꿈도 접히는듯했다. 그런데 포퓰리즘 정치가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좌파진영 안에서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그의 내년 총선 출마와 관련, 응답자의 36.7%가 “찬성한다”고 응답했을 정도다(데일리안, 5월 18일). 그가 지금까지도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 특유의 모습으로 동분서주할 수 있는 힘이 거기서 나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누가 알겠는가, 그가 ‘조국의 강’을 호화요트 타고 도로 건너 귀환하게 될지.
민주당 면죄법이라도 만들든지
송영길 전 대표와 그의 조력자들은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있다. 아마 송 전 대표도 머지않아 소환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검찰의 기획수사, 정치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차라리 ‘정치인 수사금지 특별법’ 같은 것을 만드는 게 더 깔끔할 것 같은데도 그걸 시도하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 때문일까 아니면 국민적 저항이 두려워서일까?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안(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해치운 솜씨를 보면 ‘민주당 면죄법’ 제정은 일도 아닐듯한데 아직 그런 말이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국회 상임위 회의 시간에도 코인 거래에 몰두했다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김남국 의원의 태도도 다를 바 없다. 국회의원이 국가로부터 보수와 각종 혜택과 지원을 받으면서도 회의 시간에 까지 돈벌이를 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에 입건되자 ‘기획수사’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법사위에서 위원장을 향해 “이 사람아!”라고 소리 지르며 대들던 그 김 의원이, 당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피해 잽싸게 탈당하고 잠적해 버렸다. 곧 나타나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일을 안 해도, 구속돼도 세비는 꼬박꼬박 나온다. 당선무효 선고를 받더라도 재직 중에 받은 세비를 반납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게 국회의원의 또 다른 특권이다. 민주당에 자리가 위태로운 의원들이 여럿 있지만 그들은 늘 기고만장이다. 이 대표를 믿기 때문일까 이 대표를 닮아서일까?
의혹 만물상 민주당의 이 대표가 총선 승부수를 던졌다. “다음 총선에서 원포인트 개헌으로 광주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자”고 윤 대통령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그는 18일 광주에서 열린 제4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5·18 정신 헌법 수록은 대선 당시 여야할거 없이 약속했던 대국민공약”이라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이를 시도한 바 있다. 지난 2019년 3월, 5·18민주화운동을전문(前文)에 포함시킨 개헌안을 발의했었다.
헌법을 정당 이익에 종속시키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후략)”
현행 헌법 해당 부분은 이렇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후략)”
개헌안은 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됐다. 그 시도를 다시 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으로서는 이야말로 ‘게임체인저’라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텃밭 호남의 표 결집력을 강화하면서 영남지역 유권자의 지지도 이끌어낼 수 있는 묘안이라고 무릎을 쳤을 법하다. 개헌이 정치 현안이 되면 이 대표와 민주당의 사법 리스크에 쏠린 여론의 관심이 그쪽으로 전환될 테니까.
헌법 전문에 역사적 사실을 일일이 열거하는 게 옳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이런 예가 보이지 않는다. 5·18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할 수도 없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허위사실 유포금지’(제8조) 조항을 신설한데 이어 헌법 전문에까지 수록하겠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역사 단정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왜곡 처벌법’이라는 게 법으로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는 이유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가치체계로 국체와 정체를 바꾸자는 게 아니라면 서둘러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지금 다시 이를 이슈화하는 것은 정치적 난국 탈출과 총선 승리를 위해서다. 역사를 정치화하고, 헌법을 정당의 이익에 종속시키려는 의도로만 보인다. 효과가 그리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민주당이 비리 의혹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국민의힘에는 반사이익을 줄 게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게 지속적인 경향이 되지는 않는다. 여론의 향방은 아침저녁으로 달라진다.
“제21대 국회 전반기 더불어민주당의 재석률은 73.85%, 국민의힘은 65.11%로 집계됐다.”
법률전문 NGO 법률소비자연맹이 지난 15일 발표한 ‘제21대 국회 2차년도(2021.5.30~2022.5.29) 국회의원 본회의 출석·재석률 전수조사’ 결과다. 본업은 뒷전으로 하고 당직 챙기기, 줄타기 재주나 보여주는 여당 실력자들의 ‘정치하는 이유’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