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남북공동성명 관련 문서 공개
북측, 1973년 남북회담서 미군철수
등 군사문제 선결 요구…우리 측은
비정치·비군사부터 하자며 선그어
통일부가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합의인 7·4 남북공동성명(1972년) 전후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남북회담문서를 공개했다.
지난해 두 차례에 이어 세 번째로 공개된 이번 문서에는 북한이 7·4성명 이행을 위한 후속회담에서 군축을 요구하다 수용되지 않자 협상 테이블을 엎은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최근 북한이 핵·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해 미국과의 군축협상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상황에서 50여 년 전 북한도 사실상 같은 접근법을 모색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6일 통일부는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의 기록을 담은 '남북대화 사료집' 제7~8권을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는 1678쪽 분량으로 △7·4성명 발표 전 비밀접촉(71년 11월 20일~72년 6월 1일) △7·4성명(72년 7월 4일)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1~3차 회의(72년 10월 12일~72년 11월 30일) △남북조절위원회 1~3차 회의(72년 11월 30일~73년 6월 14일)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1~10차 회의(73년 12월 5일~75년 3월 14일) 등 총 5개 파트로 구성됐다.
남북은 1971년 11월부터 약 6개월간 실무자 비밀접촉을 총 11차례 진행한 끝에 실무급·고위급 상호방문을 진행하며 '남북 간 조절위원회' 구성·운영 필요성에 공감했다.
특히 1972년 5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서울을 각각 방문해 막바지 조율에 나섰다.
이 부장은 평양 방문 당시 김일성 당시 국가주석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회담하고, 김 주석과도 두 차례 만났다. 박 부수상은 서울에서 이 부장과 만났고,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다.
남북은 고위급 상호 비밀방문을 통해 합의한 사안을 토대로 7월 4일 오전 10시 서울과 평양에서 7·4성명을 동시 발표했다. 남북은 해당 성명을 통해 △외세 간섭 없는 자주통일 △무력 사용을 배제하는 평화통일 △사상·이념·제도를 초월한 민족의 단결 도모 등 '조국통일 3대 원칙'을 확립했다.
남북조절위 구성 필요성 등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의제 우선순위 등 각론서 이견
교집합을 마련한 남북은 7·4 성명에 따라 남북조절위원회를 신설해 후속회담을 이어갔지만 실질적 성과 도출에 이르진 못했다. 남북조절위 구성 필요성 등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의제 우선순위 등 각론에서 입장차가 뚜렷했다.
일례로 양측은 '남북조절위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통해 정치·군사·외교·경제·문화 등 5개 분과위원회 구성에 합의했지만 북한은 5개 분과 동시 발족을, 한국은 경제 및 사회·문화 2개 분과 우선 발족을 주장했다. '각 분야의 광범한 합작을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는 북한 입장과 '해결이 용이한 분야부터 협력해 협상 동력을 키우자'는 한국 입장이 충돌한 셈이다.
북한은 1973년 6월 12일부터 3일간 서울에서 진행된 남북조절위 3차 회의에서 5개 분과 동시 발족과 함께, 군비 축소 등 군사문제 선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남측은 '합의사항 준수에 대한 확신을 가질 만큼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군사문제가 자연스럽게 다뤄질 수 있다'며 선을 그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본회의에서 우리 측은 제도와 이념의 차이로 인한 마찰 및 저항 요인이 비교적 적은 비정치·비군사 분야에서 (논의를) 시작해 실적을 축적시키고, 이를 통해 이뤄지는 이해와 신뢰 증진을 바탕으로 정치·군사 분야 문제로 옮겨갈 것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공동성명이 나온 이상 남북은 서로를 신임해야 한다"며 "쌍방은 우선적으로 군사대표자회담을 열어 남북 간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방안에 합의하고, 정치·군사·외교·경제·문화 등 5개 분과위원회를 일괄 발족시키자"고 맞받았다.
평행선을 달리던 조절위 회의는 1973년 8월 28일 북한의 일방적 선언으로 중단 국면을 맞았다. 이후 남측 제안으로 추가 접촉이 이뤄졌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북측이 남북대화 정상화 조건으로 남측의 △주한미군 철수 △반공정책 중지 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북한'이 꾀했던 군축
50년 뒤 '김정은 북한'도 원해
50여 년 전 김일성 체제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체제 역시 정권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군축 등 정치·군사 분야 협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다"며 "만약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한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 등을 통해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금지, 한미 연합훈련 취소, 주한미군 철수 등을 거듭 요구해오기도 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정치군사적 환경 논의도 가능하다며 '담대한 구상'에 대한 호응을 촉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담대한 구상을 외면한 채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차기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정책 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핵보유국 지위 확보 등을 위한 협상 지렛대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형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책임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한미연합훈련 취소 같은 일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김정은 정권이 지속되는 한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며 "본인들의 군사역량을 강화해 미국과의 협상력을 확대하고 비핵화가 아닌 군축을 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