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결 투표를 종용했다가 역풍 맞아
탄원서로 구속영장 기각시킨다?
팬옵티콘 수인(囚人) 신세가 된 비명계
ⓒ데일리안 DB
교섭단체 대표 자격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불체포 권리 포기’를 공언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작 체포동의안이 제출되자 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부결시킬 것을 압박하는 SNS 메시지를 보냈다. 큰 소리 친지 3개월 만이었다. 그 새 잊어버린 탓이라면 기억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된다. 중요한 직책을 맡을 생각 같은 것은 아예 할 수가 없는 조건이다. 쉽게 식언(食言)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역시 신의를 중시해야 할 일을 맡기에는 부적격이다.
이 대표는 20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입장문을 게재했다. 21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사람이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의 글을(직접 썼든 구술했든) 작성해 올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미리 준비해둔 원고’라고 보는 게 보다 합리적 논리적인 추측이다. “검찰 독재의 폭주 기관차를 멈춰 세워주십시오”라는 제목이 풍기는 느낌부터가 그렇다.
부결 투표를 종용했다가 역풍 맞아
애초에 동기나 배경이 모호한 단식이었다. 명분도 흐릿했다. 몇 가지 요구조건을 내걸긴 했으나 야당 대표의 갑작스러운 ‘무기한 단식’ 선언의 이유로는 매우 부족했다. 검찰이 소환을 통고하고, 그로 미루어 기소 일정까지 예견되는 시점이었다. 단식 말고 다른 탈출구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무기한’이라는 말에 자극받은 당과 개딸들이 국민을 선동해서 엄청난 저항의 파도를 만들어줄 것을 기대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대표 다음의 지위, 수석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은 지난 12일 KBS 라디오에 나가 “상상을 초월한 기간 동안 단식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허풍치고도 과한 어법이다. 어차피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서 가부간에 처리되면 중단될 단식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운운은 정 의원다운 과장법이었다고 하겠다.)
‘정치 수사’에도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했던 자신의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싹 잊어버린 양 이렇게 주장했다. 그의 식언이 습관성이면서 계획적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인 글이다.
자기가 했던 말을 집어삼켜 버리려니까 이런 하나 마나 한 헛소리가 필요했던 듯하다. 비회기엔 국회 동의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이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피의자는 법원의 실질 심사받아야 한다. 그걸 거부하면 당연히 구속된다. 피의자 측이 검찰에 대해 기회를 주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심리의 바탕에는 도대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자신이 말했던 ‘불체포 권리 포기’는 비회기에만 해당한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 경우는 자신이 포기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포기 당한다.
탄원서로 구속영장 기각시킨다?
명색이 제1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말 뒤집기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공공연히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맺었던데 주객전도도 유분수다. 민주당의 대표로서, 혹은 국회의원으로서 그 책무를 다하다가 범법 시비에 걸린 것이라면야 국민의 관점에서도 재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순전히 개인 이재명의 범죄혐의에 대해 진행되는 형사사법 절차다. 민주당이 정당 차원에서 대응하고 그 소속 의원들이 집단으로 저항하고 나서는 것이야말로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가는 법질서 파괴행위 아닌가?
이 대표와 민주당 친명계의 온갖 꼼수에도 불구하고 체포동의안은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페이스북 글로 ‘부결’을 압박했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 판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행태는 갈수록 가관이다. 이 대표는 다음 날 입장문을 냈다.
자존자대, 과대망상도 이쯤 되면 병적이라고 할만하다. 이 대표의 개인적 비리·범죄 혐의에 대한 형사사법 절차에 ‘역사’를 불러내는 까닭이 뭔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질 일이지, 왜 ‘국민’을 ‘공범’으로 끌어넣으려 하는가? 유무죄는 법원이 가려줄 것이다. 유죄가 된다고 국민이 패배하는 것도, 무죄가 된다고 국민이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터무니없는 말장난 아닌가.
민주당 내 친명계와 개딸들은 주군에 대한 충성 놀이에 과도하게 몰입해 있다. 26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 작성이 한창이라고 전해진다. 100만 명의 탄원서를 영장심사 담당 판사에게 보낼 것이라고 한다. 구속을 면하게 하려는 지지자들의 충정은 알겠지만, 이들의 집요함에는 기가 질릴 지경이다. 이를 통해 소속 의원 중 표결 찬성 의원들을 가려내겠다는 계산도 있는 모양이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하는 특권)을 친명계 의원들과 극렬지지 세력이 박탈하겠다는 것인가?
팬옵티콘 수인(囚人) 신세가 된 비명계
‘옥중 공천’이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 대표가 구속되어 갇히는 일이 있다고 해도 딴생각 품지 말라는 협박이다. 대표 한 사람이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정당이라면 이미 민주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이 같은 행태는 이 대표가 ‘공천’을 무기로 소속 의원들을 인질 삼고 있다고 스스로 토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정당의 자기 포기 선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명천지 민주국가의 정당에서 이런 반이성적 반지성적 반정치적 언어가 분출하다니!
문재인 정권 초기에 그 자신을 비롯해, 정권 핵심 인사들은 ‘집단지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안다. 훈련된 집단에는 지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하긴 훈련도 필요 없다. 광장(사이버 광장을 포함)에 모인 군중은 소수 선동꾼의 아바타가 된다. 정치적, 이념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집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군중은 무리에서 배제되는 걸 두려워한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동조(同調)다. 남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는 동안 자신은 안전하다고 믿는다.
집단지성은커녕 집단 반지성이 광장을 지배하고 사회를 지배하고 나아가 국가를 지배하는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그 점에서 우리 사회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국회의원들이 당 대표와 그 측근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대표의 지배력은 ‘공천권’에서 나온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당 대표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뿐만 아니라 심리까지 투시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대표와 그 측근들은 의원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면서 그걸 지배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멀쩡한 국회의원들이 팬옵티콘(panopticon: 제러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 우리에 갇힌 신세라니! 친명계와 개딸들의 세도 자랑을 보면, 특히 비명계 인사들은 전방위적 감시체계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예비 추방자라는 인상을 털어내기 어렵다.
반지성에서 벗어나는 길은 간단하다. 당 대표에게 집중된 권력과 권위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공천 후보직과 국회의원직을 몇몇 유력자의 시혜로 얻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리라고 다짐한다면 허상에서 벗어나긴 어렵지 않다. 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특정 개인의 범죄혐의를 덮어주는 용역에 동원돼야 하는가? 왜 세비와 권한은 국민에게서 받으면서 충성은 당 대표라는 특정 개인에게 바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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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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