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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이재명의 모델인가


입력 2023.10.09 07:07 수정 2023.10.09 11:13        데스크 (desk@dailian.co.kr)

강경파가 휘저어놓은 미 하원

선거 전날 허위 기사 대량 전송

국민의힘 또 정권 바치려는가

ⓒ데일리안 DB

미국 의회 역사 234년 만에 처음으로 하원의장이 해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공화당 맷 게이츠 의원이 해임 결의안을 냈고, 그를 비롯한 공화당 강경파 8명이 민주당 출석의원 208명 전원(4명은 불참)과 함께 매카시 의장을 해임해 버렸다.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개막됐던 ‘강경파의 시대’가 진면목을 보인 것이다.

강경파가 휘저어놓은 미 하원

미국 민주주의는 다르다는 신뢰는 리처드 닉슨 시대를 거치면서 퇴색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트럼프 폭풍’에까지 이르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종전까지의 대통령 리더십 덕목 또는 유형의 지표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런 것들은 더 이상 평가 지표가 될 수 없게 됐다. 오직 트럼프적인 성격, 행태, 유형이 있을 뿐이었다.


트럼프적 정치 행태의 특징은 선동이다. 그는 대표적인 선동가였고, 그걸 유감없이 과시했다. 넓게 보면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범주에 들지만 대중추수형 정치인이 아니라 대중선동형 정치인이다. 그는 대중의 불만을 자신의 영향력 득표력으로 연결시키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사실 ‘재주’라기보다는 ‘배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남들이 동의하지 않을 정치적 의제나 주장을 내지르듯 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다. 그는 자신의 말이 지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리라는 것을 언제나 확신하는 인상을 주어왔다.


그 아류가 게이츠 의원 등 공화당 강경파다. 이들의 정치적 성장은 매카시 축출을 통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당 출신 하원의장을 내쫓는 일을 주도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그들은 이미 경시할 수 없는 지위를 당과 의회에 확보했다. ‘트럼프 키즈’가 화려한 등장에 성공한 셈이다.


성공의 조건은 뻔하다. 앞뒤 가리지 않는 무모함이다. 유권자의 평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스스로 평가하고 그걸 유권자들에게 주입시킨다. 자신의 말이 진실이면 좋겠지만 반드시 진실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그 말에 진실의 색깔을 칠할 자신만 있으면 된다. 이게 선동가적 자질이다.


트럼프 이전에도 많은 선동 정치인이 있었다. 비교할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악랄했던 선동가들을 찾기도 어렵지 않다. 특히 히틀러의 경우는 천부적인 선동재주에 천부적인 악랄함을 갖춘 악마였다. 이런 유의 인간들과 트럼프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대민주주의의 본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선동가이고 선동으로 권력을 장악했다는 사실은 세계적·세기적 충격이기에 족하다. 미국 민주정치를 모델로 삼았던 수많은 민주화 도상(途上) 국가의 국민들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선동 정치의 성공은 대중이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다. 대중 가운데 일부의 극렬세력이 그런 리더를 원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힘이 있고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그들이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가? 무언가 되기를 원한다.”(위키백과)


에마뉘엘 시이예스가 팸플렛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에서 한 말이다.

선거 전날 허위 기사 대량 전송

오늘날의 대중도 무언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존재감에 목말라하는 사람일수록 그 욕망이 더 커진다. 그래서 목소리 큰 무리에 편승해서 같이 소리를 지른다. 그 순간에 자신은 위대한 과업의 동참자가 되고 리더 그룹의 일원이 된다. 자신들이 옹립하는 리더의 인성 인격주의 주장 같은 것은 따질 필요가 없다. 자신이 속한 동아리가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것 만으로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려고 한다. 공화당 내에서 지지율은 독보적이다. 지난 2000년 대선 때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지지 않았느냐고 따질 일은 아니다. 그 때 그는 지기는 했지만 변하지 않은 득표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지금도 바이든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러 송사에 얽혀 있긴 하나 ‘악재가 곧 호재’가 되는 ‘트럼프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심각한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면 셀프 사면으로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선거운동은 더 격렬해지게 마련이다.


우리 정치도 선동 시대에 들어선지 오래다. 경쟁상대를 악으로 모는 식의 대통령 선거 운동은 노무현 전 민주당 후보 때 두드러졌었다. 인터넷이라는 지지자 결집 수단이 등장해 있었다. 게다가 김대업의 거짓 폭로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이를 비롯하여 선거 직전에 잇따라 나온 허위 폭로가 그를 그로기로 몰아넣었다. 선거 후에 진위가 밝혀져 봐야 소용이 없다. 이미 대통령에 취임한 사람을 어쩌겠는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미지도 선동가다. 그 역시 당내 강경파 의원들과 ‘개딸’이라는 극렬 지지 세력에 얹혀 있다. 그는 작년 대통령 선거 전날 오전 9시 선거운동 문자로 ‘김만배-신학림 인터뷰’기사를 475만1051건 발송했다. “이재명 억울한 진실”이라는 제목이 달린 메시지였다. 선거운동 문자메시지는 건당 단문(45자) 약 10원, 장문(1000자) 약 30원으로, 최소 약 4800만원이 뉴스타파 기사 살포에 쓰인 것으로 추산된다는 언론 보도다.


그가 이 기사의 진실성을 믿어서 보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알면서도 선동용으로 뿌렸다고 보는 게 상식적 추론이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서는 당시의 이 후보만큼 세세히 잘 알고 있었을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김-신 인터뷰내용, 그걸 보도한 뉴스타파 기사의 진실성 여부를 그가 몰랐다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


그는 작년 2월 25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상대로“왜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줬느냐”고 따졌다. 뉴스타파 보도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대선 하루 전날에는 김-신 인터뷰 기사를 수백만 명에게 보냈다. 인터뷰의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태연히 상대방을 추궁할 수 있는 것이 이재명 스타일이다. 선동 정치가에게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선동의 효과만이 중요한 것이다. 아닌가?

국민의힘 또 정권 바치려는가

그런 정치 스타일이 성공하려면 선동을 뒷받침해줄 강경파 측근들과 극렬지지세력이 있어야 한다. 이 대표에겐 당내 친명계 의원들과 ‘개딸’이 있다. 이들은 이 대표의 친위대로서 반대세력에 대해 격렬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거칠게 하는 것이 이 대표에겐 힘이 된다. 그는 트럼프가 그렇듯이 이들을 믿고 있다. 비록 대선에서 실패를 했지만 윤 대통령을 0.73%포인트 차로 압박해 갔다. 이 대오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다음 대선에서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라고 확신할 법하다.


그의 정치적 생존력도 트럼프에 못지않다. 2020년에는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파기 환송으로 구해줬고, 지난달엔 영장전담 판사가 구속영장 기각을 통해 다시 그의 족쇄를 풀어줬다. 영장 기각이 무죄판결일 수 없는데도 이 대표 자신과 민주당은 ‘윤 대통령 사과, 한동훈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거대 의석과 당내 강경파 의원 및 개딸들의 힘으로 혐의의 원천무효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8일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영장 재청구와 ‘쪼개기 기소’ 가능성을 두고 “수사가 아니라 괴롭히기에 혈안이 된 정치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 당의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불기소’를 압박했다.


“검찰은 이제 그만 그릇된 집착을 버리고, 그간의 부실·조작 수사의 과오를 국민 앞에 사죄하고 깨끗하게 불기소하기 바란다. 대한민국 검찰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으로부터 ‘드라마틱하게 엑시트’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숫제 협박이다. 민주당은 ‘법 앞의 평등’을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대표를 위한 그 집단적 수사 방해권(?)을 다른 피의자들을 위해서도 행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대 정당의 대표는 개인적 범죄혐의에 대해서까지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비호를 받아가며 큰 소리 칠 수 있는데 왜 주권자로 불리는 일반 국민은 혼자 외롭게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의식을 가지고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떠드는 것은 국민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자기들 마음대로 특권계급을 만들어 군림하면서 입만 열면 ‘국민’운운하는 모습을 보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오해인가?


이재명의 트럼프 흉내 내기는 승산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국민의힘은 대통령실만 바라보고 있다. 얹혀가기 묻어가기 재주를 뽐내려는가? 이런 식으로는 민주당 이 대표의 선동적 포퓰리즘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러다 강서구청장 선거, 내년 총선에서 지면 ‘이재명 대통령’은 현실로 닥친다. 국민의힘이 스스로 정권을 넘겨주는 격이 되는 것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그러했던 것처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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