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의 전쟁 개입 가능성으로 원유 수급 우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 발발에 국내 정유업계에도 긴장감이 돌고 있다.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며 단기적인 정제마진 개선은 예상되나 장기적으론 원유 수급 차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우려하는 분위기다. 올해 상반기 실적 부진을 겪은 국내 정유사들은 하반기 정유사들의 핵심 수익지표인 정제마진 강세로 희망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었지만, 다시금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3대 유종 중 수입량이 많은 중동산 원유를 대표하는 두바이유는 9일 종가기준 전장 대비 2.65% 상승한 88.54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59%, 브렌트유는 3.57% 올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감산 정책으로 지난 8~9월간 고공행진하던 국제유가는 이달 들어 다소 주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난 7일(현지시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전쟁이 발발하자 국제유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통상적으로 국제유가 상승은 정유업계의 이익으로 이어졌지만, 이번엔 정유업계에서도 마냥 달갑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개입으로 전쟁이 확대·장기화된다면 지정학적 요인으로 원유 도입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이번 전쟁은 산유국이 아닌 국가들의 일이기에 국제유가에 큰 영향이 있을지에 대해선 보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날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가운데 주요 산유국인 이란도 참전할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크게 수급·지정학적·금융 요인의 영향을 받는데 이렇게 되면 공급과 지정학적 요인으로 유가는 지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수급 요인에서 그동안 공급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며 “여기다 지정학적 요인이 중동지역에서 발생해 유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러시아발 전쟁으로 국내 정유업계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것과 달리 이번 전쟁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유럽향 수출을 차단했기에 국제제품가격 자체가 급등하며 국내 석유제품가격도 상승해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이 개선됐다.
지난해처럼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전쟁으로 올라간다면 국내 제품가도 오를 수 있지만, 그보다 공급 문제를 더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우디나 이란이 전쟁에 적극 개입하게 되면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빚지 않을지 지켜보고 있다.
이번 전쟁 발발로 당장 국내 석유제품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석유제품가격은 국제 제품가에 연동되는데 대략 2~3주의 격차가 있어 이번 주나 내주 초중반까지는 기존 수준을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며 석유제품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경우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장기적으로는 정유업계에 악재가 될 수 있다. 국내 주유소 휘발유·경유 가격이 1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이 소비자 수용의 임계점을 넘어설 경우 오히려 수요 급감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에 정제마진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에너지 수급 문제가 생기거나 판매 면에서도 수요가 뒷받침이 안 돼서 제품가격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나중에 다시 국제유가가 떨어졌을 때 (고유가 시절 사들인 원유와의 가격 차에 따른) 손실도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