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 가늠자’ 中 돼지고기값 前年比 42% 급락
최대 쇼핑축제 광군제에 소비자들 지갑 열지 않아
CPI, PPI 동반 마이너스 기록해 디플레 전조 현상
중국 GDP 25% 책임지는 부동산 부문 침체 깊어
중국의 돼지고기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 현상이 뚜렷해지며 돼지고기 가격을 1년 새 무려 40%나 끌어내렸다.
중국 농업농촌부에 따르면 전국 500대 집산지(출하)시장의 돼지고기 가격은 이달 둘째 주(6~10일) ㎏당 평균 15.18위안(약 2700원)에 거래됐다. 전달보다 4.5% 떨어졌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42.1% 급락했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시장인 중국에서 돼지고기 가격은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물가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디플레)의 수렁’에 빠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복 조짐을 보이던 주요 경제지표가 다시 주춤거리고 해외 투자자들이 돈을 빼내가는 등 중국 경제회복의 성장동력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반등세를 보이던 중국 경제가 내수부진에 허덕이며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4일 보도했다. 9월 제조업구매자관리지수(PMI)가 6개월 만에 확장국면에 진입하며 경제회복을 기대했으나 4분기 들어 각종 경제수치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대 쇼핑축제인 ‘광군제’(光棍節·11월 11일)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싱글(독신자)의 날'이라는 뜻의 '광군제'는 2009년 11월 11일 e커머스업체 알리바바그룹이 처음 시작한 이후 중국 최대 쇼핑시즌이 됐다. 통상 10월 중순부터 11월 11일까지 3∼4주간 진행된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종료 이후 처음 맞는 광군제인 만큼 e커머스 업체들은 역대급 할인율을 앞세워 손님 끌기에 나섰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예년만큼 지갑을 열지 않았다. 시장조사기관인 싱투(星圖)데이터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온라인쇼핑몰 톈먀오(天猫·Tmall)과 징둥(京東)닷컴, 핀둬둬(拼多多) 등 중국 주요 e커머스 플랫폼의 이달 10일 20시부터 11일 24시까지의 총매출이 2776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9.75% 감소했다.
블룸버그는 “10월은 8일 간의 국경절 황금연휴로 시작됐음에도 1인당 관광지출은 코로나19 이전 수준보다 적었다”며 “내수가 올해 중국 경제수요를 좌우할 정도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보다 0.2% 감소하며 석 달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CPI는 7월(-0.3%) 2년5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8월(0.1%)과 9월(0%)에는 회복세를 보였다. CPI를 2~3개월 선행하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보다 2.6% 줄었다. 8월(-3.0%)에 비해서는 낙폭이 작았으나 전달(-2.5%)보다는 컸다.
CPI와 PPI가 동반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중국 경제의 디플레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PPI가 하락하면 소비자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까닭에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하면 디플레 전조(前兆)로 해석된다. 브루스 팡 존스랑라살(JLL)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수요둔화 속에 물가하락을 막는 것이 중국 정책 당국자들의 여전한 과제"라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정책적 조합과 더 많은 지원조치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이달 발표된 경제지표는 경기회복의 길이 여전히 순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중국 해관총서(海關總署·관세청)에 따르면 10월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4% 감소했다. 시장예상치(-3.3%)보다 낮다. 10월 PMI 역시 한 달 만에 49.5로 떨어졌다. 수치가 50을 넘으면 확장 국면을, 그 미만이면 위축 국면을 뜻한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물가하락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며 “디플레 전쟁의 입구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신규 대출도 대폭 감소했다. 소비가 위축되니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인민은행(人民銀行)에 따르면 중국 은행들의 10월 신규 대출 규모는 7384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9월(2조 3100억 위안)보다때 68% 급감했다. 지난해 10월(6152억 위안 )보다는 크지만, 1년 전은 코로나19로 대출 자체가 크게 위축됐던 상황이었다.
소비자심리지수 역시 하락했다.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달 17일 기준 149.5를 기록했다. 지난 2월 이후 처음으로 150 아래로 떨어졌다. 중국의 경우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으나 하락세로 반전했다는 점이 주목할 포인트다.
중국 최고 부호들의 MBA로 알려진 창장경영대학원(長江商學院·CKGSB)이 각 분야의 성공한 개인·기업을 상대로 한 민간기업 신뢰도 조사에서도 5개월째 기준치를 밑도는 결과가 나왔는데, 12년 조사 기간에 거의 없었던 일이다. 래리 후 맥쿼리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소비수요는 여전히 약한 상태이며 중국의 GDP디플레이터(국내 총생산+서비스 물가지수)도 4분기에 매달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런 불확실성에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현지의 돈을 환수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중국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측정하는 지표의 하나인 직접투자부채가 3분기에 118억 달러(약 15조원) 적자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수익을 현지에 재투자하기보다 중국에서 빼내고 있다는 뜻이다. 1998년 관련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이다.
실제로 스위스 산업장비 업체인 올리콘은 지난해에만 2억 7700만 달러의 자금을 중국에서 환수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중국이 성장둔화에 직면해 있다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해명했다. 닉 마로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수석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위험과 국내 정책의 불확실성, 성장둔화세가 기업들에 대안시장을 모색하도록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큰 걱정거리다. 10월 중국 주요 도시의 신축주택 가격 하락률(전달 대비)이 8년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16일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주요 도시 70곳의 10월 신축가격은 전달 대비 0.38% 떨어져 2015년 2월 이후 하락률이 가장 컸다. 9월 하락률은 0.3%였다.
올해 1~10월 부동산 투자 역시 전년보다 9.3% 감소했다. 이중 주거용 투자가 8.8%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상업용과 주거용주택의 판매 면적은 각각 7.8%, 6.8% 줄었다.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Country Garden) 등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와 맞물려 시장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급해진 중국은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1조 위안을 투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중국의 마을 개·보수와 저렴한 주택 프로그램에 최소 1조 위안의 저가 금융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재개발 관련 대출지원 등을 통해 주택구매를 늘리겠다는 취지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 정부는 디플레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10월 소매판매가 지난해보다 7.6% 증가했으며 시장 전망치(7%)를 웃돌고, 전달(9월) 소매판매 증가율(5.5%)보다 2.1%포인트 확대된 점을 근거로 들며 반박했다. 류아이화(劉愛華)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이런 요인은 향후 물가에 상방 압력을 주기에 디플레는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반면 이는 부분적으로 지난해 10월 중국의 많은 도시에서 코로나19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에 비교 기준이 낮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해석을 평가절하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